[영화와 복음] 영화 〈소공녀, Microhabitat〉 - 미소는 무엇으로 사는가?
[영화와 복음] 영화 〈소공녀, Microhabitat〉 - 미소는 무엇으로 사는가?
  • 임명진 목사
  • 승인 2023.02.17 15: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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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소(이솜)는 가진 게 거의 없는 3년 차 프로 가사도우미이다. 난방도 제대로 되지 않는 작은 방에서, 여행용 가방을 책상 삼아 가계부를 기록하며 하루하루를 꾸려나간다. 그러나 한겨울에 방세 5만 원을 올려달라는 주인의 요구에 이리저리 머리를 굴려보지만 마땅한 대안을 찾을 수 없었고, 결국 집을 나와 친구들 집을 방문하며 살기로 결정한, 엉뚱한 발상의 무대책녀(?)이기도 하다.

하지만 미소의 삶은 생각보다 그리 빡빡하지 않다. 한 잔의 위스키를 마시고 한 모금의 담배 연기를 뿜고 생각에 잠기며 조그마한 행복을 느끼고 그것에 만족해한다. 소확행. ‘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미소는 그렇게 누리며 살아간다. 집도 없고 돈도 없고 변변한 직장이나 가족도 없다. 그럼에도 삶을 불안해가거나 조바심 내지 않는다. 오히려 삶을 즐길 줄 안다. 남자친구와 사랑을 나누고 싶다.

하지만, 너무 추운 방에서 거사(?)를 치르기엔 역부족이어서 내년 봄으로 미룬다. 웹툰 작가가 꿈이지만 번번이 낙방하는 공장노동자 한솔(안재홍)은 미소에겐 꼭 필요한 남자친구이다. 그래서 미소에게 행복은 ‘위스키’와 ‘담배’, 그리고 ‘남친 한솔’이면 충분하다. 많은 걸 찾고 갈망하는 이 시대에, 미소는 작지만 확실한 자신만의 행복(소확행)을 만들어간다. 미소가 삶을 살아가는 방식이다.

우리 시대 청춘들은 불행인지 다행인지, 그런 ‘소확행’을 누리며(?) 살아간다. 다 가질 수 없기에, 남들이 갖는 그것조차 나에게는 사치이기에,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걸 갈구하며 희망고문을 안고 살아가기보다는, 오히려 분명하게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는 아주 작은 것들을 누리며, 그것으로 만족하며 사는 삶이다. 우리 시대 청춘들에게 꿈을 묻는 건 더 이상 의미가 없다. 그들은 그저 하루를 살아내는 것조차 버겁다. 거창한 꿈을 꾸며 불가능한 그 꿈을 이루기 위해 현실을 포기하느니, 차라리 가진 것 없는 현재의 삶에서 나름대로 소소한 행복을 누리는 것이 훨씬 현명한 판단일지도 모른다.

영화에서 미소가 자신의 소확행을 이루기 위해 포기했던 건 누구나 갈망하며 원하는 그것, 바로 ‘집’이다. ‘집’은 21세기를 살아가는 대한민국 모든 국민이 간절히 원하는 욕망의 대상이다. 그러나 그 집을 갖기 위해 치러야 하는 대가는 너무 크고, 설사 그런 대가를 치르더라도 성취한다는 보장은 그 어디에도 없다. 갈수록 널뛰는 집값은 이미 직장인들이 평생 월급을 모아서는 구입할 수 없는 먼 곳에 있고, 이로 인해 깊어지는 빈부격차와 상대적 박탈감은 집을 포기해야만 하는 상황으로 몰고 간다. 그래서 미소는 당당히 집을 포기했고, 세상의 모든 걸 얻는다.

영화 <소공녀>의 영어 제목은 ‘Microhabitat’이다. ‘미소생물 서식지’라는 의미를 가진 단어이다. ‘미소’라는 이름도 여기서 따왔다. 아주 작고 작은 생물들, 주의를 기울여 보지 않으면 그 존재조차 인식하기 어려운 그런 생물들을 일컫는 말이다. 그들이 살아가는 공간이 미소생물 서식지이고, 이 영화에서 미소가 살아가는 공간이며 환경이고 배경이다.

그렇게 본다면, 미소의 그 ‘미소’는 아주 작고 작은 것(微少)이로되, 작은 것이 아니라(未少), 진정한 아름다움을 추구하며 세상을 향해 짓는 미소(微笑)로 변이된다. 영화 마지막, 미소는 세상을 살아가는 아주 작은 한 존재로 조그마한 공간만을 점유하고 있다. 그럼에도 오히려 크고 넓은 세상에 대해 미소 지을 수 있는, 진짜로 넓은 마음의 공간을 가진 존재로 자리매김한다. 욕망이 가득한 세상에 파묻혀 아등바등 살기보다는, 욕망을 떨쳐내고 한 걸음 떨어진 곳에서 마음껏 미소 짓는다. 버림으로 채움을 얻는 미학이다.

‘높은 산이 거친 들이~ 초막이나 들판이나, 주 예수와 동행하면~ 그 어디나 하늘나라.’

임명진 목사<br>북악하늘교회 담임<br>​​​​​​​문화사역 전문기자<br>
임명진 목사
북악하늘교회 담임
문화사역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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