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 기고] 한국교회의 이념 논쟁과 신학적 이해
[특별 기고] 한국교회의 이념 논쟁과 신학적 이해
  • 박도웅 목사
  • 승인 2023.01.19 21: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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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열 조장하는 정죄와 판단 멈추고
사랑 안에서 화목 추구해야
정죄와 판단을 멈추고,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화평을 추구해야 한다.
정죄와 판단을 멈추고,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화평을 추구해야 한다.

21세기를 살아가는 한국교회 안에서 철지난 이념논쟁이 불거지고 있다.

구소련의 붕괴와 동유럽 국가들의 민주주의 도입으로 나라 밖에서 이미 종료된 공산주의 체제가 대한민국을 곧 무너뜨릴 것처럼 과장하는 소리가 커지고 있다.

일인독재를 넘어 삼대가 절대군주로 지배하는 북한 체제가 남한에 사는 이들에게 대안이 될 수 없음은 이미 오래 전에 판명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보적 신앙을 실천하는 이들을 ‘공산주의자, 친북성향’이라고 공격하는 것은 사실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악의적 목적으로 색칠하는 것이다.

정치적 이익에 따라 이루어지는 여야의 대립 상황에서 특정 정파를 대변하는 주장은 신앙적인 정당성을 가질 수 없다. 정교분리가 완성된 현대 사회에서 개인의 정치적 선택은 존중받아야 할 권리이지만, 특정한 정치세력의 입장을 집단적으로 대변하는 모습은 적절하지 않다. “태극기 부대” 집회에서 태극기 뿐 아니라 성조기와 이스라엘 국기까지 나부끼는 광경은 집회의 성격이 무엇인지 알 수 없게 한다.

오늘의 한국교회는 건전한 진보와 보수의 경쟁이 아니라 정치적 갈등을 재생산하는 비신앙적 논쟁에 빠진 것이 아닌지 염려스럽다. 이 글에서는 이러한 이념 논쟁의 뿌리를 살피고, 기독교인의 적절한 정치적 입장 표현에 대한 신학적 이해를 제시하고자 한다.

한국교회의 친미반공주의

한국의 기독교와 교회는 세계적으로 아주 특수한 발전과정을 이루었다. 19세기 말, 국운이 기울어가는 암울한 조선 땅에 들어온 기독교는 일본의 식민지배 기간, 농촌계몽과 독립운동을 직간접적으로 지원하고, 교육과 의료 선교를 통하여 구원의 빛으로 역사하였다.

그러나 35년의 식민 지배를 견디지 못하고 대부분의 교단이 신사참배를 수용하는 어두운 역사를 가지고 있다. 해방이 되고 미국이 해방군으로 들어오면서 한국의 기독교인들과 교회는 친미반공의 최전선에 서게 되었다. 한국전쟁을 거치며 남한으로 내려온 북한의 서북지역 기독교인들이 각 교단의 실질적인 지도자들이 되면서 그러한 성격은 더욱 강화되었다.

미국은 식민지배와 전쟁을 경험한 한국에 복음과 원조 전해준 고마운 나라인 동시에 냉전시대 반공이데올로기라는 정치이념을 고착화시키는 동력이 되었다. 친일에 앞장섰던 기독교 지도자들이 친미 지도자로 변신하였고, 남한으로 내려온 북한의 기독교인들은 열렬한 반공주의자가 되었다.

역사학자 한홍구 교수(성공회대)는 한국의 기독교가 전쟁과 미국의 원조를 통하여 급속하게 성장한 것으로 본다. 미국의 원조 물자들이 교회를 통하여 분배되고, 선교사들을 통하여 미국문화와 영어를 배운 인물들이 사회 각 분야의 지도자가 되었다.

1960년대 이후 30년간 이어진 독재 권력의 근대화, 산업화 정책은 미신타파와 도시집중을 이끌었고, 농촌을 떠나 도시로 모여든 사람들 가운데 많은 이들이 기독교인이 되었다. 그러나 성장의 이면에 감추어진 인권탄압과 비민주적 경제 질서의 모순이 드러나면서 한국 기독교는 민주화 운동의 중심으로 나서게 되었다.

한국 기독교는 본질적으로 보수적인 신앙을 지켜왔지만, 70년대 폭발한 한국사회의 불의와 모순에 맞서 예언자적 목소리를 낸 것이다.

그러나 그 기간은 길지 않았다. 한국의 경제발전으로 기독교 민주화 운동에 대한 해외 지원금이 끊어지고, 1989년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이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에 대항하는 연합단체로 등장하면서 한국교회는 급격하게 보수적인 목소리를 키우게 된다. (한홍구, “여는 글: 성조기 휘날리며”, 한홍구·강석훈 편, 『한국 현대사와 개신교』)

한기총의 등장으로 본격적으로 집결한 한국교회 보수 세력은 본격적으로 정치적 입장을 드러냈다. 이들은 사회참여의 필요성을 인정하면서 정치적으로 극우적 보수파의 길을 걸었고, 이후 여러 명칭으로 개신교 보수 세력의 중심이 되었다. 이들은 미국의 기독교 반공주의자들과 신기독교 우파의 길을 걷고 있다.

도를 넘은 이념 공세

최근 한국의 보수우파 기독교인들 가운데 심각한 이념공세를 벌이는 이들이 등장하였다. 그들은 정동제일감리교회와 함께 한국교회의 모교회인 새문안장로교회의 이상학 목사를 종북 좌파로 비판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한국의 개신교 선교 140년 역사에서 선교의 첫 열매라 할 수 있는 새문안교회의 담임목사를 가리켜 좌파이며 기독교인이 아니라는 주장을 서슴없이 펼치고 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들은 이상학 목사의 지난 설교와 기록을 가져와 이념적으로 공격하였다. 이 목사가 미국 유학 시절 신영복 교수의 책을 읽고 희망을 되찾았다는 개인적인 경험을 근거로 삼아 공산주의자의 글에 감명을 받았으니 공산주의자라는 이상한 삼단논법을 구사하였다.

일부 보수우파 기독교 세력은 온라인 매체들을 통하여 새문안교회 뿐 아니라 한국교회를 대표하는 교회의 목회자들을 향하여 인본주의자, 종교다원주의자라는 딱지를 붙이고 비난하고 있다. 한국교회를 이끌고 신자들의 신앙을 이끌어가는 영적 지도자들을 너무나 쉽게 판단하고 정죄한다. 사도 바울이 고린도교회에 보낸 편지의 말씀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때가 이르기 전 곧 주께서 오시기까지 아무 것도 판단하지 말라 그가 어둠에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고 마음의 뜻을 나타내시리니 그 때에 각 사람에게 하나님으로부터 칭찬이 있으리라”(고린도전서 4:5)

이러한 공격은 교회 안에서 불편한 갈등을 불러오고, 교회 밖에 있는 이들에게 기독교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심어주게 된다.

기독교 이천년 역사에서 신앙적 차이로 인한 갈등과 대립은 늘 있어왔다. 특별히 초대교회에서 그리스도의 인성을 둘러싼 논쟁은 올바른 교리를 세우고자 했던 교부들에게 아주 민감한 문제였다. 그리스도의 완전한 인성과 완전한 신성을 교리로 정하기까지 삼백 년이 넘는 시간이 걸렸다는 것은 그만큼 양쪽의 입장 차이가 컸다는 증거이다.

그러나 325년 니케아공의회가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을 정한 후에도 논쟁을 계속되었고, 415년 칼케돈공의회에 와서야 온전한 신앙고백을 확인하고 확정하였다. 기독교의 신앙고백은 몇 백 년의 지난한 논쟁을 통해서 확정된 신적 신비이다.

“(그리스도는) 두 본성 안에서 혼합되지도 않게, 변화되지도 않게, 분리되지도 않게, 나뉘지도 않게 인식되시며...”

인간의 이성과 논리로 설명할 수 없는 하나님의 신비이기에 모순으로 보이는 표현으로 정리한 것이다.

감리교회와 장로(개혁)교회를 세운 존 웨슬리와 존 칼빈은 구원에 대한 입장이 크게 달랐다. 기본적으로 믿음을 통하여 은혜로 말미암은 구원이라는 점에 동의하였지만, 웨슬리는 선택된 자들에 대한 제한적 대속을 주장한 칼빈의 입장을 반대하였다.

웨슬리는 보편적 구원과 무제한적 대속을 주장하였다. 모든 인간을 구원으로 초대하는 하나님의 은혜가 있고, 그 은혜에 응답하는 이들이 구원을 얻는다고 보았다. 반면에 칼빈은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을 강조한 나머지, 이미 하나님이 모든 것을 예정하셨기 때문에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은 없다고 보았다.

두 사람의 신학은 많은 부분에서 차이를 보였지만 서로를 이단으로 정죄하지 않았다. 신앙과 신학에서 관점의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그리스도를 통하여 나타난 하나님의 은혜를 고백하는 신앙의 토대는 동일했기 때문이다. 그들의 신앙과 신학을 따르는 이들이 오늘의 교회를 이끌고 있다. 오늘의 한국교회는 작은 견해 차이로 근본적인 신앙고백의 토대를 부정하는 오류를 범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이념은 신앙보다 상위 개념이 아니다!

근본주의 신앙의 위험성은 성경을 문자적으로 해석하고 실천하는 것에 있지 않다. 오히려 성경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고, 다른 사람들을 판단하는데 있다. 사람을 판단하는 것은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이들을 쉽게 판단하고 정죄한다.

기독교 신앙의 근본적인 고백에 차이가 없다면 갈수록 복잡해지는 사회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현상들에 대한 다양한 “의견”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갈등과 분열로 신음하는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는 화해와 일치의 사도가 되어야 한다. 사단은 갈라지게 하고, 주님의 영은 평화를 위하여 일하게 한다. 예수님께서 산상수훈에서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마태 5:9)라고 말씀하신 이유이다.

이 땅에서 화평하게 하는 사명을 받은 교회가 세상의 이념과 정치적 견해에 사로잡혀 서로를 공격하고 비난한다면 이는 사탄이 좋아할 일이다. 사도 바울은 로마교회에 보내는 편지에서 그리스도의 몸에 속한 성도들의 다양한 은사와 헌신을 이렇게 증거하고 있다.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받은 은사가 각각 다르니 혹 예언이면 믿음의 분수대로, 혹 섬기는 일이면 섬기는 일로, 혹 가르치는 자면 가르치는 일로, 혹 위로하는 자면 위로하는 일로, 구제하는 자는 성실함으로, 다스리는 자는 부지런함으로, 긍휼을 베푸는 자는 즐거움으로 할 것이니라 사랑에는 거짓이 없나니 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하라”(로마서 12:6-9)

그는 같은 장에서 이렇게 권하고 있다.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목하라”(로마서 12:18)

기독교인의 사명은 성경의 가르침에 따라 이 땅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그리스도의 제자로 살아가는 것이다. 도를 넘은 이념 공세는 결코 기독교인의 신앙적 행동이 아니다. 우리는 주께서 오시기까지 아무 것도 판단하지 말아야 한다.

그리스도를 구주로 고백하는 신앙고백은 양보할 수 없지만, 그 외에 많은 것들은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이해하고 보듬을 수 있다. 17세기 멜데니우스가 명쾌하게 정리한 경구가 그러한 방향을 보여준다.

“본질에는 일치, 비본질엔 자유, 모든 것엔 사랑을!”(In necessariis unitas, in dubiis libertas, in omnibus caritas!)

어떠한 이념도 신앙보다 상위의 가치가 될 수 없다. 이념은 본질적인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신앙고백을 담은 교리는 일치의 마음으로 지켜야 하지만, 목회자와 신자들의 의견은 사랑으로 이해하고 받아야 한다.

오늘 한국교회는 평화의 사도로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하기 위해서 교리와 의견을 구분할 수 있는 영적 지혜를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닐까? 떼제 공동체의 규칙을 나눈다.

“이웃 사랑을 기꺼이 고백하지만 여전히 갈라져 있는 그리스도인들 사이의 분열의 수치를 결코 체념하며 받아들이지 마십시오. 그리스도의 몸의 일치를 열렬히 추구하십시오.”

박도웅 목사
동인감리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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