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칼럼 ] 감각의 과부하에서 누가 붙들어 줄 것인가?
[전문가 칼럼 ] 감각의 과부하에서 누가 붙들어 줄 것인가?
  • 백우인 목사
  • 승인 2022.12.19 14: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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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스터기 코드를 콘센트에 꼽자마자 정전이 됐다. 집안은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동굴이 됐다. 방송에서 와글거리는 소리에 정신이 분요했는데 일시에 잠잠해졌다. 가전제품은 저마다의 부하를 갖고 있다. 냉장고는 냉장고가 잘 돌아갈 수 있도록, 에어컨은 에어컨이 잘 돌아갈 수 있도록 기계 자체의 한계 능력이 있다.

갑자기 정전이 발생한 것은 정해진 소비전력 안에서 유연하게 흐르던 것에 능력 이상의 전력이 요구되었기 때문이다. 전력의 과부하가 의식하지 못했던 연속적인 일상성에 불연속성의 시공간을 만들고 있다. 암전 가운데 불의한 세상을 응시하는 틈이 생긴 것이다.

감각에도 과부하sensory overload가 있다.

뇌에 입력된 정보들을 가지런히 질서 지우기 전에 감각기관으로부터 너무나 많은 입력이 들어오는 경우가 그것이다.

한꺼번에 너무 많은 정보가 들어오면 뇌는 그때부터 어떤 감각에 몰입해야 하는지 혼란을 겪으면서 감각의 입력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어 한다. 외부의 자극이 동시다발적으로, 게다가 뇌와 감각의 부하를 넘어서는 강력한 자극이 오면 두려움만 가득한 무중력의 공간에 놓이는 것이다.

이럴 때 도움이 되는 것은 있는 힘껏 붙들어 안아주는 것이다. 압각이라는 물리적 힘이 두려움을 어느 정도 진정시켜주기 때문이다. 정의와 진실의 구심점을 놓쳐버린 지금의 사회는 거짓과 속임수와 무고한 죽음과 폭력이 난무하여 너도 나도 감각의 과부하로 정전 중이다. 누가 우리를 붙들어 잡아 줄 것인가?

정의와 진실이 사라진 사회는 암실(camera obscura)이다. 지독하게 냉기가 느껴지는 곳, 숨소리조차 동상에 걸리는 곳.

너무 부패하고 썩어 이미 악취가 나고 있는데도 의식조차 못하는 이들. 찌꺼기 같고 먼지 더껑이 같아진 영혼이 서럽게 떠는 곳.

온갖 소곤거림과 이죽거림의 입들을 보며 소름이 돋는 곳.

시퍼런 광기가 이성을 삼키고 먹이를 찾아 코를 들이대는 곳.

상처 나고 가장 약한 곳을 기어코, 혹은 억지로 만들고 찾아내 이빨을 박는 곳.

낭자한 피의 말들과 비열한 웃음이 범벅이 된 곳에 무심하고 맹렬하게 날아다니던 쇠파리 소리만 요란하다.

그러나 와글와글 무성한 소음을 내고, 격분하여 눈을 부라리며 겁을 주고 상처를 내며 위협하는 자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그들을 응시하는 자다. 그들을 응시하며 생각에 잠겨 있는 자는 소란스럽지 않고 고요하다.

응시하는 자의 눈빛은 알 수 없는 기호로, 음험하고 불온한 것들을 불안에 떨게 한다. 응시하는 자, 바라보는 자의 눈은 진실을 간파하되, 진실이 스스로 외치게 하며 되려 그들의 희번덕거리는 욕망에 상처를 낸다. 바라보는 자의 시선은 거짓과 속임수로 치장을 한 대상을 두려움에 떨게 한다.

카프카는 그의 책 <변신>에서 그레고르 잠자를 통해 인간이면서 비인간적으로 살 바에야 차라리 비인간이 되어서 인간적으로 사는 것은 어떠냐고 묻는다. 새롭게 변형된 실존으로 갑충류가 하나의 기표가 되었다면 응시하는 자들의 실존의 변형은 행동하는 자이다.

바라보는 자는 정념(affect)으로 인해 행동하는 자가 될 수밖에 없다. 정념이란 불온한 것을 탐지하는 정서들이다. 응시하는 자는 탐지된 정서들로 인해 행동한다. 이제 온갖 부정과 불합리 앞에서 더는 ‘좋은 게 좋은 것’이라는 말에 속지 않고, ‘당연한 것’들에 쉽게 동의하지 않는다.

힘을 거머쥔 자들이 보여주고 들려주는 것들에 호락호락 수긍하지 않는다. 악랄한 착취와 파렴치한 억압과 더러운 거짓의 무진장에서 진실의 무게가 드러날 때까지 사태를 응시하는 자는 모자란 진실의 값을 기어코 찾아내기 위해 횃불을 드는 자가 되는 것이다.

정념은 정서(emotion)의 급속한 방출이며 정서적 끈에 의해 관통당한 이들에게 화살이 되어 신체를 관통한다. 그리하여 자아(Moi)는 행동과 정서가 탈주체화 되어 죽음도 머뭇거리지 않는 인물이 된다. 바로 예수님이 그 예표이며 횃불을 들고 죽음에도 굴하지 않고 이 땅에 오신 분이다.

응시하는 자들, 불의에 호락호락하지 않는 자들, 이웃에게 불합리한 것들을 방치하지 않는 자들, 잃어버린 몫이 있는 자들, 이런 자들이 이제 정념으로 연대하여 일어설 시간이다. 예수님은 시대의 상실된 정의와 공의를 되찾아 몫을 잃어버린 자들에게 돌려주기 위해 2000년 전에 이미 오신 분이고 와 계시고 오고 계시다.

백우인 목사<br>감리교신학대학교 종교철학과 박사과정<br>​​​​​​​예술목회연구원 연구위원<br>
백우인 목사
감리교신학대학교 종교철학
예술목회연구원 연구위원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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