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통교회를 흔드는 실체, 근본주의를 파헤친다 (마지막 회)
정통교회를 흔드는 실체, 근본주의를 파헤친다 (마지막 회)
  • 최상현 기자
  • 승인 2022.12.02 10: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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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연대하여 답을 찾아야

사회_박진석 목사(본보 편집인)

패널_김주용 목사(연동교회), 박성철 목사(하나세정치신학연구소 소장), 옥성삼 박사(감신대 객원교수, 본보 편집위원), 이상학 목사(새문안교회), 지형은 목사(성락성결교회)

제언_안교성 교수, 정병준 교수, 한국일 교수

지난 11월 25일, 본보는 기획특집 시리즈 ‘근본주의’ 필진을 초청하여 종합 토론회를 가졌다.

시리즈의 대미를 장식한 이번 토론회를 통해 한국 교회가 나아가야 길과 구체적인 방안을 모색해보았다._편집자 주

기조발제: 일반계시의 가치를 인식해야 (지형은 목사)

사람됨과 사람다움의 기본 조건은 이성의 기능에 걸려 있다. 다른 생명체들이나 무생물로 분류되는 존재들과는 달리 사람은 이성의 기능을 갖고 문화와 문명을 일구며 살아왔다. 이성의 기능에 연결된 것이 사유와 지성, 언어와 합리성, 자유의지와 인격성 등이다. 사람에게 있는 이런 특징은 다른 피조물들과 비교하여 단계적으로 더 높은 정도가 아니다. 현재까지의 모든 지식을 종합하더라도 다른 생명체들 중 어떤 존재가 상당한 정도로 이런 능력을 갖고 있어서 시간이 흐르면 사람과 비슷한 수준이 될 것이라는 증거는 없다. 기독교의 시각으로 보면 이것이 사람이 만들어질 때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주신 하나님의 형상이다.

인류 역사에서 인간이라는 종의 의미 있는 존속에는 늘 윤리 도덕적인 가치가 연관돼 있다. 인도적 인륜도덕 말이다. 이런 가치의 중심에 늘 사람의 이성적인 기능이 전제된다. 이성적인 기능이 심각하게 약화되고 생존을 위한 이기적인 투쟁이 심해질 때 인간 사회는 야만의 상황이 된다. 이런 때는 사람도 동물적인 본능 쪽으로 움직인다. 혈연이나 지연에 따른 자기 집단의 방어를 위해서 어떤 악행도 서슴지 않는다.

적어도 한 문화권이나 또는 그보다 훨씬 더 넓은 범위에 걸쳐 전쟁, 기근, 전염병이 발생할 때는 사람의 사람됨이나 사람다움은 여지없이 파괴된다. 이런 상황에서 사람이 지켜내는 범위는 좁아진다. 혈족, 지연 집단, 종교화 된 사상이나 이념의 집단 등이다. 집단 이기주의에서 소집단 이기주의를 거쳐 개인적인 생존 이기주의로 흐르면서 인간성은 무너진다. 생존을 위한 야만적인 싸움이 난무한다.

역사에서 존중받는 이념이나 사상, 종교나 문화 집단 등은 언제나 형제자매처럼 챙겨야 한다고 인식하는 범위가 넓었다. 내가 공동 운명체로 속해 있다고 보는 집단을 가장 넓게 보는 시각이 사해동포주의(四海同胞主義), 홍익인간(弘益人間), 모든 사람이 형제자매라는 필라델피아 사상 같은 것이다. 이런 흐름의 공통점은 존재하는 모든 사람이 다 하나로 묶였다는 인식이다. 인종, 지역, 계층, 성별, 종교 등 사람을 분열시키는 모든 것을 넘어서서 인류애의 가치를 신뢰하는 믿음이다. 요즈음 많이 쓰는 말로 하면 공공선을 추구하는 것이다.

공공선을 어떻게 규정하는 것은 물론 쉽지 않다. 사람이나 집단마다 추구하는 것도 다르고 이해관계도 상충하기 때문이다. 모든 사상과 철학의 공통 관심사인 행복론도 그 내용으로 들어가면 아주 다양하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이 사람이려면 끊임없이 공공선을 추구해야 한다. 적어도 누구나가 ‘이런 것은 공공선이 아니다’ 하는 것들을 거부하는 것은 언제든 작동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기본적으로 인도적 인륜도덕이 포함돼 있다. 당시 유대교에서 이웃 개념을 동족 유대인으로 한정시킨 것에 반해서 예수님은 이웃의 개념을 종교적 구분과 인종적 한계를 넘어서 모든 사람에게 확장시키셨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사람이란 존재 모두를 형제자매로 사랑하라고 가르치셨다. 어쩔 수 없는 갈등에서 발생하는 원수까지 사랑하라고 말씀하셨다. 기독교 신앙은 인도적 인륜도덕이란 표현으로 대표할 수 있는 사람됨과 사람다움을 그 안에 포함하고 있다. 물론 이것을 넘어서는 구원의 진리를 핵심으로 믿고 선포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죽음, 부활, 승천, 성령의 강림)을 통해서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인류 구원의 결정적이고 최종적인 길을 여셨다는 것이 기독교 신앙의 내적 정체성이다.

이 정체성에 근거하여 이를 믿는 사람들, 곧 그리스도인이 현실의 삶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느냐를 묻는 것이 기독교 신앙의 사회적 연관성이다. 그 핵심이 인도적 인륜도덕이다. 이 둘, 기독교의 자기 정체성과 타자 연관성은 서로 뗄 수 없이 연결돼 있다. 신앙고백적인 자기 정체성이 얼마나 진실하고 그 힘이 넉넉한가를 알 수 있는 영역이 사회적인 삶에서 드러나는 타자 연관성이다.

십자가 사건에 터를 둔 자기 정체성과 인도적 인륜도덕에 근거한 타자 연관성을 신학적인 용어로 표현하면 특별계시와 일반계시다. 한국 교회는 특별계시에 강력한 집중력을 갖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과 연관하여 대속의 죽음과 보혈의 능력을 굳게 믿는다. 이를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영원한 형벌에서 영생을 얻는다고 믿고 선포한다. 이 가치는 한국 교회가 갖고 있는 신앙의 핵심이다. 그래서 교회를 이 가치를 전하는 기능을 중심으로 이해한다. 이런 상황에서 교회 공동체가 갖는 일반계시적인 기능이 취약하다.

조금만 생각해 보자. 그리스도인은 개인적으로는 누구나 사회의 구성원이다. 교육, 법조, 정치, 경제, 문화 등 사회의 모든 분야에서 삶의 여정을 걸어가고 있다. 그리스도인은 마땅히 그러한 사회적 일상에서 주님의 뜻을 실천해야 한다. 이것이 지금 여기에서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나라다. 한국 교회에는 이런 인식이 약하다. 한국 교회의 교회론은 자기중심적인 정체성이 강하고 타자 지향적인 사회적 관계성에서 약하다. 교회 공동체는 특별계시의 토대에 분명하게 서야 하고 그에 근거하여 일반계시의 가치를 확실하게 인식하며 사회를 이끌어가야 한다. 특별계시의 구체적인 내용은 기록된 66권 성경의 내용이다. 일반계시의 내용으로는 적어도 다음의 네 가지를 말할 수 있다. (1)인도적 인륜도덕, (2)생태적 환경윤리, (3)법치의 민주주의, (4)상생의 시장경제.

근본주의는 인류 역사에서 끊임없이 반복되고 이어져 온 ‘쉬운 길’이다. 어느 사회나 문화권에서 가장 쉬운 길은 소집단 이기주의를 충동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고 그것을 강화시키는 것이다. 사회적인 갈등이 심해질 때 이런 경향은 더욱 강해진다. 분열의 시대에는 이런 방식이 현실적으로 상당히 효율적이다. 오늘날의 세계 상황이 그렇다. 콘크리트 지지층을 중심으로 정치하는 것이 그렇고, 경제적인 동일 계층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주주 이기주의 경제 구조가 그렇다. 대중영합주의는 갈등과 분열의 시대에 늘 영악스럽게 효과적이었다. 적을 명확하게 만든다. 필요하면 외부의 적을 만들어 내부의 불만을 잠재운다. 큰 사고가 발생하면 희생양을 만든다.

인간 사회의 이런 구조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영역에서 각기 다른 이름으로 작동한다. 이런 경향이 작동하는 기본 구조는 독단성, 우월성, 배타성이다. 근본주의는 기독교란 영역에서 이런 구조로 작동하는 것에 붙은 이름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스도인이 구원의 주님으로 고백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따르면 기독교 신앙은 마태복음 7장 13-14절에 기록된 말씀대로 넓고 쉬운 길이 아니고 좁고 험한 길이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

그리스도인의 삶과 교회의 길은 특별계시를 근거로 하여 일반계시가 한데 어우러져 작동하는 길이다. 한국 교회는 성서에 기록된 일반계시에 관한 가르침을 읽을 수 있어야 한다. 원수도 사랑하는 길이며 서로 사랑하는 삶이 그것이다.

근본주의에 관한 가스펠투데이의 이번 특별기획은 한국 교회의 현재 상황과 오늘날의 세계 상황을 생각할 때 참으로 시의적절하다. 이번 기획의 과정과 그 기록이 한국 교회에 널리 알려져 한국 교회가 걸어갈 길을 진지하게 고민하며 기도하기를 바란다.


사회자: 한국 교회 부흥 발전의 원동력이 되기도 했으나 오늘날 심각한 폐단을 낳고 있는 ‘근본주의’문제. 이번 기회에 솔직하게 토론하고 여러 측면에서 접근하고 싶다.

박성철: 우리는 기독교에 대한 비판에 다소 소극적인 반응을 보여 왔다. 특히 근본주의와 관련된 문제는 한국 사회의 유익을 해칠 수 있다는 시각을 가져야 대응이 가능하다. 예컨대 이슬람 원리주의가 이슬람을 대표할 수 없으며, 나아가 원리주의는 ‘이슬람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이다. 원리주의가 이슬람 본래의 정신을 왜곡할 수 있다는 견해가 나와야 정치적 측면에서의 비판이 가능해진다. 그런데 교회는 근본주의 문제를 ‘신학적 문제’로 국한시켜 인식하다보니 어쩌면 근본주의가 기독교 정신을 왜곡할 수 있다, 혹은 그것이 기독교가 아닐 수 있다는 신랄한 비판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것이다. 그 이유는 내부의 힘이 없어서 그렇다. 일반적으로 내부의 힘이 없을 때는 외부의 연대를 찾아서 해결점을 모색하는데 이러한 실질적 대응이 필요하다. 2020년을 기점으로 ‘태극기 부대’라는 기독교 근본주의에 기반을 둔 정치 운동이 나왔다는 것은 한국교회가 이슬람 원리주의와 같은 문제를 앓고 있다고 봐야 한다.

이상학: 이미 서구사회는 복음주의자들이 근본주의와 차별성을 두기 위한 작업을 진행했다. 존 스토트는 근본주의와 복음주의 차이를 8가지 주제로 정리했으며 빌리 그레이엄도 이 작업을 진행한 바 있다. 그런데 한국 교회 안에서는 근본주의가 복음주의의 옷을 입고 횡행하고 있어도 영적 분별을 하지 못하고 있어 그 폐해가 심히 크다. 따라서 복음주의와 근본주의가 어떻게 다른지 이야기하면서 분리해 내는 작업을 교회가 해낼 필요가 있다.

지형은: 근본주의를 연구함에 있어서 교회사학자들의 작업이 반드시 필요하다. 가스펠투데이에 게재된 근본주의 시리즈에서 역사학자들은 해방이전과 해방이후의 한국 교회 모습을 다루며 근본주의의 뿌리를 탐구했다. 1900년대 초기에 있었던 한국의 대부흥운동은 근본주의와 직접적 연관이 없는 것이었고, 어떤 이들은 초기 한국 교회의 부흥운동과 1970년대에 일어난 부흥을 연결하려는 시도를 하는데 사실 그것은 결이 다르다고 보아야 한다. 1970년대의 부흥운동에는 근본주의의 색채가 진하게 묻어있다. 그래서 이 부분을 두고 교회사학자들이 면밀하게 검증할 필요가 있다.

옥성삼: 사회과학적 측면에서 바라볼 때, 한국 교회는 이미 정치적이다. 그 이유는 처음부터 분파적 성장을 해왔기 때문이다. 근본주의자들은 분명한 실체가 있고 무엇보다 ‘운동력’이 있다. 그래서 어쩌면 근본주의와 복음주의가 다르다는 논의를 일으킬 때 논의를 시도한 쪽이 더욱 큰 피해를 입을 가능성을 생각해야 한다. 그래서 투 트랙이 필요하다. 교회 안의 작업과 다학제 간의 작업을 동시에 진행하는 것이다.

김주용: 한 가지 우려되는 점은, 건강한 가치관을 가진 성도들이 2022년 오늘 얼마나 남아있느냐다. 과거 7080세대, 복음주의 신앙으로 부흥을 일으킨 이들의 뒤에는 사회적 균형을 이루기 위해 진력한 이들이 버티고 있었다. 하지만 오늘날, 그런 세대가 얼마나 남이 있을까? 어쩌면 근본주의를 구분해낼 역량을 가진 이들은 이미 가나안 성도가 되어버렸을지 모른다. 정치적 공론의 장에 자주 오르내리는 특정 목회자의 이슈를 두고, 사실 교회 밖에 사람들은 냉소적으로 보고 있다. ‘저것은 교회의 문제고, 저들은 항상 저렇다’는 평가다. 이런 상황에서 깨어있는 교회는 변호할 기회조차 박탈당한다. 이에 반해서 근본주의에 서 있는 사람들은 전선을 형성하고 대오를 이루어 하나의 목소리를 만들어 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현장 목회자들이 건강한 목소리를 만들어 낼 수 있을지 염려가 앞서는 것도 사실이다.

지형은: 사실 근본주의의 신앙적 태도, 신학적 구조는 개교회에서 목회를 하는데 매우 유리하다. 신자들이 신앙과 신학의 세계를 보는 태도를 단순하게 하며, 프로파간다(선전, 선동) 성향으로 인해 명백하고. 심플하다. 때문에 근본주의는 굉장한 효율성을 갖고 있다. 또한 기독교 역사를 살펴보면 유교가 조선시대의 정치적 헤게모니와 깊게 연관되어 있었듯이 기독교는 반공 이데올로기에 강한 목소리를 내었고, 오늘날에는 동성애, 특정 극우 목회자 등과 함께 정치적 이슈화됐다. 그래서 더더욱 근본주의를 정치, 사회학적 맥락에서 풀어내는 작업이 필수적이다.

옥성삼: 교회가 초갈등사회의 동력원이 되고 있는 이유는 패러다임 쉬프트를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세상이 변하고 있는데 한국 교회가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한국 교회 내에는 이미 자정능력을 잃었다고 본다. 2년 전 ‘한목협’은 포스트 프로테스탄트를 준비해야 한다고 발표했다. 학자들은 ‘사회적 목회론’, 그리고 ‘미셔널 처치’를 말했다. 방향성과 의미에는 공감했으나 교회의 정치 체제, 교회의 존재하는 방식에 대한 구체적 대안은 제시하지 못한 것 같다. 이제 선언적 제시에서 나아가 사회적 교회론을 말해야 하고, 한국 교회의 문제를 다시 바라보아야 한다. 교회는 사회공동체의 일원으로서, 현실에서 빛과 소금이 되기 위해 사회적 교회의 모델을 구상해야 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이제 거시사회의 구조적 변화를 준비해야 한다. 최근 한 대형교회를 컨설팅 하면서 분석해보니 65세 이상의 성도가 70%이상을 차지하고 있었다. 시니어 목회를 어떻게 준비할 것인지, 10년 20년 후에는 어떻게 할 것인지 대안이 전무한 상황이었다. 코로나가 끝났으니 다시 기도회를 열심히 하면 될 문제일까? 본격적으로, 거시적 방향을 찾아야 한다. 우리가 근본주의를 살펴봄에 있어서 ‘싸우려고 준비된 사람’과 ‘합리적으로 해결하려는 사람’이 부딪히면 반드시 후자가 깨진다. 목회자들의 경우 보수적인 스탠스를 취할 수밖에 없는 경우가 많다. 신학자들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기독교공동학회에 소속된 2천여 명의 신학자들은 개별적인 의지는 갖고 있지만 쉽사리 나설 수가 없다. 돌을 맞는 것이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이 함께 연대하여 공동으로 연구하고 보고서를 내놓으면 가능할 것이라 본다. 때문에 앞서 나온 견해들처럼 교회 안의 목소리와 교회 밖의 목소리가 함께하는, 투 트랙으로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 좋다.

사회자: 이번 기획시리즈를 준비할 때 우려의 목소리도 있었다. 공격을 받으면 어떻게 할 것이냐는 질문이었다. 언론기관도 표적이 될 수 있는 현실 속에서, 과연 교회가 이런 시도를 할 수 있을까?

김주용: 개인적으로 괴리를 느끼는 순간들이 있다. 정치적 이슈에 자주 오르내리는 소위 극우 목회자가 ‘본회퍼’를 말한다. 이처럼 현실 속에는 ‘아이러니나 딜레마’라고도 표현할 수 없는 기괴한 구조들이 있다. 우리가 자정 능력을 갖고 거시적인 측면에서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지 회의적인 생각이 드는 것도 이 때문이다. 목회자들이 왜곡된 부분들을 발견하고, 그것을 타파해야 한다고 전하면 반발에 부딪힌다. 그래서 미시적인 문제들을 목회자가 어떻게 반응하고 행동해야 할지 고민하는 이들이 많다. 때문에 공론의 장이 열리고, 공론화가 쌓여 나가야 한다. 현실적 괴리와 이상 사이에서 다리를 놓는 이 작업은 폭넓게 일어나야 한다.

박성철: 우리가 한국 교회를 바라보는 모습과 교회 밖에서 우리를 바라보는 모습이 같을까? 다소 부정적으로 말한다면 한국 교회는 프로파간다 성향이 강하다. 또한 사회적 이데올로기에 종속되어 있다는 생각이 든다. 1990년대 미국 개신교인은 인구의 90%에 달했다. 그리고 2007년에는 78%, 2020년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는 60%로 나타났다. 그리스도인 인구가 급속도로 줄어든 그 시기는 트럼피즘, 즉 기독교 근본주의가 대중에게 목소리를 내면서 미국사회에서 부정적인 영향을 나타낼 무렵이었다. 근본주의 운동이 강해지면 그 세대는 먹고 살지 모르나 그들이 떠나고 나면 몰락한다. 프로파간다는 이러한 점을 보지 못하게 하는데, 이런 현상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한국 리서치가 종교인 조사를 할 때 20%가 그리스도인으로 나타났고, 같은 해 한국 갤럽은 17%라고 발표했으나 신천지와 이단이 모두 포함되었기 때문에 사실상 15%라고 봐야 할 것이다. 또한 각 교단에서 중복된 수치를 감안한다면 13-15%사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교회가 크게 성장하는 7-80년과 달리 2000년 이후로는 성장할 수 없었고, 부정적 인식이 강화되며 교회가 위태로워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이 사실을 말하려 하지 않고 공론화 시키지 않는다. 단정적으로 말하자면 근본주의가 강해지면 한국 교회는 망할 수밖에 없다. 향후 10년 뒤에는 어떻게 될지 모른다. 매년 13만 명의 기독교인이 줄어들고 있는데 10년 후면 어떻겠는가? 문제를 지적하지 못하는 이유는 한국 교회가 현실을 인정하지 못해서가 아니다. 극우 이데올로기에 종속되어 현실을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어떤 형태로든 원리주의, 근본주의가 득세해서 그 종교가 잘 된 적이 없다는 것이 학자들의 객관적인 견해이며 자료가 말하고 있다. 한편, 부정적으로만 보지 않을 수 있는 이유는 지금 이러한 논의가 나온다는 것 자체가 변화의 첫 걸음이기 때문이다. 자정능력이 부족하다면 외부의 힘과 얼마든지 연대할 수 있다. 중독 상태인 사람이 스스로 벗어나지 못하듯, 우리 또한 일종의 중독에 빠져 있다면 외부의 도움과 연대해 풀어가야 한다.

지형은: 목소리를 내는 것은 일단 교회 내에서 시작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또한 외부와 연대한다면 1차적으로는 신학계, 구체적으로는 학회이나 교회사학회의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근본주의를 테마로 학자들이 논문을 발표하고 토론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신학자들이 학문적인 접근을 하는 것이 대중적 파급력은 약할지 모르나 그 자체로 베이스가 되어 현장 활동가들이 움직일 수 있는 근거가 된다. 둘째, 일반학자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종교사회학자, 정치사회학자들이 바라보는 관점을 통해 방안을 찾는 것이다. 나는 교회가 자정능력을 완전히 상실했다고는 보지 않는다. 지금 이 자리에도 ‘장감성(장로교, 감리교, 성결교)’이 모였는데, 함께 머리를 맞대고 길을 모색하면서 극우 이데올로기를 분석하고 있기에 희망이 있다고 본다. 이러한 시도와 함께 학계가 함께 한다면 왜곡된 현상들을 약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이상학: 부족한 자정능력을 극복하기 위해 연대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최근에는 보수 신앙과 보수적 정치색을 가졌던 분들이 특정 근본주의 극우세력이 안고 있는 문제를 인지하기 시작하면서 스스로 차별화 하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런 점에서 근본주의 안에서도 결이 다른 부분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일종의 정치적 극우와 신학적 근본주의가 구분되어지는 흐름이 있는 것이다. 국민일보가 올해 진행한 ‘한국 기독교인 의식조사’에 의하면 한국교회 교인들이 보는 중요한 개혁과 갱신의 과제는 ‘탈정치화’라고 발표했다. 이를 통해 한국교회 안에서 근본주의와 일정 거리를 두고 있는 이념적 중립지대에 있는 분들과 연대를 형성할 수 있는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다.

사회자: 목회 현장에서 이 과제를 시도할 수 있는 그룹, 대안적인 활동을 할 사람을 찾는 것이 중요해 보인다.

지형은: 이러한 시도는 충분히 시뮬레이션 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리고 길게 잡아야 한다. 짧게 잡아도 10년, 어쩌면 우리가 은퇴할 때까지 이어져야할 장기과제로 봐야 한다. 목회 지침은 어떻게 할 것인지, 매뉴얼은 무엇인지, 또한 거기까지 가는 프로세스는 어떻게 진척시켜 나갈 것인지 종합적인 디자인을 준비해야 한다. 한국 기독교 역사신학회, 조직신학회, 윤리학회 등의 신학적 그룹을 포함하여, 비신학 사회학계와 함께 현상을 분석한 자료가 뒷받침되어야 할 것이다. 그래야만 정치적 극우 활동을 하는 일부 목회자에게 동질감을 느끼던 사람들이 이탈, 분리되기 시작할 것이다.

김주용: 이런 자리들이 참 유익하다. 교회 안의 문화도 변해서 성도들과 함께 자유롭게 이런 대화를 나누는 자리가 마련되길 희망한다. 한국교회 안에 나타나는 근본주의 현상들은 오늘 패널분들의 말씀처럼 ‘반문화적 현상’이라고 본다. 정반합의 관점에서 볼 때 건강한 판단력을 가진 그리스도인들이 이러한 어려움을 잘 극복할 수 있지 않을까? 비록 전망은 어둡지만 빛을 발견할 것이라 믿는다. 교회 안에서 이러한 토론의 장을 마련하여 지도자들이 머리를 맞대고 대화를 이어간다면 반드시 대안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박성철: 근본주의 문제는 신학적 문제로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 사회적 문제와 함께 가야 한다. 그 전통이 개신교 내에서도 충분히 있다고 본다. 사실 개신교의 태동을 살펴보면, 루터는 신학적, 사회적, 영적, 세속적인 것을 구분하지 않았다. 루터 또한 제후들과 연대하여 종교개혁을 이룩했고, 교회 안에서 해결할 수 없는 것을 사회적 연대를 통해 극복했다. 연대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것은 목회자 중심의 힘으로는 해결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만약 할 수 있었다면 이미 변화를 만들어냈을 것이다. 개혁적 생각을 가진 성도들, 가나안 성도들, 마음을 합한 사람들과 연대하여 변화를 추구해 나야 한다. 루터처럼 새로운 변화를 위한 길을 찾아보자.

옥성삼: 7개 교회든 12개 교회든 이 일을 할 수 있는 작은 연대를 만들자. 신학자, 목회자, 사회학자들이 함께 자리를 만들어보자. 개별적으로 움직인다면 반발과 공격을 버티지 못할 것이다. 브레인 그룹, 싱크탱크를 만들어 개신교계의 다보스포럼을 만든다면 목소리를 내는 행위 또한 가벼워질 것이다. 아울러 평신도 연대를 늘여가는 것도 좋다.

이상학: 가스펠투데이가 허브 역할을 해주길 바란다. 싱크탱크 그룹에서 지속적 성과물이 나오면 크게 유익할 것이다.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이 든다. 오늘날 이 문제가 과연 한국교회의 뇌관이 맞을까? 만일 그러하다면 우리가 힘을 다해서 해결하려 노력해야 하지 않겠는가?

지형은: 뇌관이 맞느냐는 성찰에 깊이 공감한다. 이러한 문제를 두고 여러 단체, 학회의 문을 두드릴 예정이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함께 모색해보자.


<시리즈를 마무리하며 남기는 제언>

1. 안교성 교수(장로회신학대학교 역사신학/교회사)

1) 한국교회는 한국과 한국교회에 대한 바른 정체성 의식을 가져야 한다. 한국은 기독교 국가가 아닌 세속국가이다. 따라서 기독교는 국교가 아니고, 한국에 필요한 것은 교회와 국가(Church and State)의 건전한 관계 곧 견제와 균형을 이루는 관계이다. 한국교회 중 일부는 시대착오적으로 서구 중세의 기독교권(Christendom)의 국교 모델을 주장하거나, 미국식의 준국교 모델을 주장한다.

2) 한국은 현재 시민사회로 이행하고 있다. 따라서 한국교회는 이전의 사회 지도자 역할을 자임하는 정치신학 모델을 사용할 수 없다. 현재 한국교회가 한국사회와 소통하고 협력이 가능한 것은 공공신학 모델이다. 공공신학은 공공 담론의 일부로, 공공 담론에 참여하려면, 상대방과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인정하고, 상이한 의견 조정의 훈련이 필요하다.

3) 한국은 후기근대주의 시대로 진입하고 있고, 특히 신세대들이 새로운 인식론의 성향을 강하게 나타내고 있다. 따라서 한국교회는 전근대적, 근대적 패러다임을 고집하지 말고, 새로운 후기 근대적 패러다임에 전향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이상의 세 가지 사항의 공통점은 자유로운 대화의 공간을 전제한다는 것이다. 근본주의는 전형적인 폐쇄적 대화 형태다. 한국교회는 국가와 사회, 타종교와 기독교 내의 타 종파와의 대화에 성숙된 모습을 보여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영향력을 상실하거나 감소하는 것을 넘어서, 아예 소외될 수 있다.

안교성 목사<br>장로회신학대학교 교회사<br>역사신학 교수
안교성 목사
장로회신학대학교 교회사
역사신학 교수

2. 정병준 교수(서울장신대학교)

가스펠투데이를 통해 발표된 여섯 편의 글에서 나타난 내용을 종합하여 다음과 같이 제안을 드린다.

1) 한국장로교회의 정체성이 근본주의 신학이 아님을 분명하게 교육하고 가르쳐야 한다. 한국에서 보수적인 장로교단들은 근본주의 신학을 ‘구 프린스턴 신학’의 계승, 혹은 칼빈주의 정통주의, 보수적 개혁주의 등으로 미화했고, 그 결과 근본주의 신학의 문제점이 잘 드러나지 않았다. 한국의 초기 장로교 선교사들이 근본주의 신학에 근거하여 선교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역사적으로 분명하게 밝히고, 근본주의 신학은 1925년 이후 미국의 현대주의-근본주의 논쟁 이후 한국에 들어온 미국의 아류 신학이라는 점을 분명하게 가르쳐야 한다. 그리고 마펫과 언더우드의 전통과 근본주의를 함께 묶어서 한국장로교의 보수주의라고 주장하는 일부 보수장로교회 역사학자들의 주장을 부정할 필요가 있다.

2) 임희국 교수님의 글의 취지를 더 구체화하고 연구해서 한국장로교회 통합측이 지닌 복음주의-에큐메니칼 전통이 한국장로교회의 초기 전통을 계승하는 것임을 밝힐 필요가 있다.

3) 김주용 목사님의 글은 목회 현장에서 나타난 근본주의 신학의 폐해를 아주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그러한 사례가 더 연구되어서 교회의 교인들에게 근본주의 신학이 한국교회 안에서 어떤 피해를 주고 있는지 알리고, 스스로 깨닫고 조심하도록 하는 지침이 개발되었으면 좋겠다.

4) 이상학 목사님의 글은 근본주의가 영성 형성에 얼마나 부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는지 깨닫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건강한 영성과 근본주의 영성의 차이점을 비교할 수 있는 도표가 만들어지면 신학생들과 의식 있는 교인들에게 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5) 이상의 발표된 글들이 더 발전된 형태로 출판되어서 신학교의 교재와 신학생들의 필독서로 사용될 수 있기를 바란다.

정병준 교수
정병준 교수

3. 한국일 교수(장로회신학대학교 은퇴교수, 선교학)

근본주의를 넘어서 진정한 하나님 나라와 선교적 교회를 회복하는 길

한국교회를 지배하고 있는 근본주의적 성향을 극복해야 하는 이유는 이러한 신앙과 사고가 성경을 편협하게 그리고 왜곡된 해석과 적용으로 시대와 소통하지 못하는 절대적 교리로 받아들여 수많은 교파분열과 배타적 태도가 사회적으로 공신력을 약화시키는 원인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근본주의 신앙은 현실사회와 적절한 관계를 설명하지 못하기 때문에 교회생활과 사회생활을 분리하는 이중적 신앙을 형성해왔다. 선교 초기에 한국사회에 희망을 주었던 강력한 신앙이 교회와 선교에 활력으로 작용하였지만, 이제는 그 역기능이 너무 심하게 부정적으로 작용한다. 오늘의 상황에 선교적 교회와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서는 위에서 언급한 편협하고 배타주의적 근본주의 신앙을 극복하고 새로운 개신교의 정체성과 선교관을 정립해야 한다.

하나님 나라 신앙회복

선교의 목표는 예수의 복음선포(막1:15)에서 드러난 것과 같이 하나님 나라이다. 구원은 하나님 나라를 향해 출발하는 시작이다. 그런데 한국교회는 평생 구원을 얻기 위해 신앙생활을 하는 것 같다. 구원론 중심에서 종말론적 완성을 향하여 현재적 삶을 하나님 나라를 살아가는 것이 필요하다. 선교는 하나님이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베푸신 사랑을 전하고 그것에 응답하는 삶을 모든 그리스도인이 일상에서 실천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구원의 특별한 사건을 온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보편적 사랑(요3:16)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아야 한다.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을 믿을 뿐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실현하는 사람으로서 정의와 평화, 생명존중을 실천하며 특히 약자와 동일시하신 예수를 구원자로 믿고 또한 그의 삶을 따르는 사람이다.

공교회 회복과 교회론의 확장

한국교회의 문제는 축소주의적 신앙관과 교회론에 있다. 교회론은 신앙의 넓이와 깊이를 결정한다. 편협한 교회론은 신앙의 범위를 제한한다. 한국교회는 교파주의와 개교회주의로 출발하였기 때문에 개교회가 강화되었지만 공교회 이해가 부족하다. 교회의 우주성, 즉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며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는 그리스도의 충만함이 교회가 서 있는 토대이다(엡1:23). 선교는 근본적으로 하나님의 선교이며 교회는 자신의 인식과 경험보다 더 크고 넓은 하나님의 선교에 참여하도록 부름을 받은 공동체다. 교회의 사명은 교회 자체에 있지 않고 세상의 변화에 있다. 세상 속에서 하나님 나라를 증거하고 변화를 실현하는 것이 선교적 사명이다.

메시지와 메신저가 일치하는 선교

한국교회는 복음의 불모지에서 시작하였기 때문에 복음을 들려주는 것을 전도와 선교에서 중요한 활동으로 인식하고 실천하였다. 복음을 전하는 그리스도인과 교회공동체의 사회적 공신력은 선교를 실현하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한 인프라다. 전도와 선교를 주로 교회의 특별한 활동으로 수행해온 기존의 선교방식에 전환이 와야 한다. 이제는 복음을 말로 전할 뿐 아니라 삶으로 보여주어야 한다. 그동안 교회의 활동으로 전도하였다면, 이제는 지역사회와 직장과 사회의 각 분야에서 일상의 삶을 통해서 복음의 실현을 보여주어야 한다. 사회의 이런 요구는 우리 시대에 적합한 선교방식일 뿐 아니라 교회와 성도들의 성숙함을 이루는 계기가 된다.

다종교 사회에서 평화로운 공존에 근거하여 사랑과 관용을 품고 실천하는 선교

한국사회는 다종교사회이며 다양한 가치관이 공존하는 다문화사회이기도 하다. 더욱이 점점 우리 사회에 이주민이 증가하면서 다민족 사회로 이전하고 있다. 이런 현상은 시간이 갈수록 더욱 증대될 것이다. 한국교회는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다종교사회에서 기독교의 정체성을 지키면서 선교하는 방식을 배우지 못하였다. 이런 점에서 한국 개신교는 다종교에 대하여 공존하기를 어려워하며 특히 선교관이나 정책에 그대로 드러난다. 한국교회는 다종교사회에서 평화로운 공존에 바탕을 둔 선교를 실천해야 한다.

전도와 선교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패러다임의 전환이 요구된다

한국교회는 70-80년대 경이적인 성장을 할 수 있었다. 하나님의 은혜이며 목회자와 성도들의 헌신의 결과이다. 그러나 그 성장은 시대적 특징으로 제한되는 산업화와 도시화와 같은 시대적 요인들이 긍정적으로 작용하였으나 지금은 다른 시대를 맞이하면서 시대적 조건들이 효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즉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한 시기이다. 전도방식에도 변화가 있어야 한다. 사영리와 같은 단기간에 열매를 얻고자 하는 단순한 개인전도 방식보다 지역사회 안에서 일상적인 삶을 통해 증거하는 이웃과의 관계형성이 중요하다.

성장이 아니라 활성화다

과거의 성장의 기준으로 보면 모든 교회들은 패배자가 된다. 한국사회도 경제적으로 급성장하다가 어느 수준에 이르러 속도가 늦어지는 것처럼 교회 역시 성장을 촉진시키는 조건들을 충족하면 성장속도가 느려지거나 정체되게 마련이다. 이것은 신앙적 이유도 있겠지만 다양한 사회적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이런 시점에 교회의 본질을 주목하고 유기적 생명체로서 양적 성장이나 크기보다는 역동적인 생명의 활성화(Revitalization)를 목표로 삼아야 한다. 생명은 양적으로만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와 사회적 요구에 맞추어 다양한 방향으로 나타난다.

담임목회자 중심이 아니라 평신도와 동역 관계에서 목회를 해야 한다

교회성장 시대와 교회는 담임 목회자의 위치와 지도력에 의존해 있다. 교회의 방향이나 의사결정과정이 대부분 담임 목회자 개인의 결단에 의해 좌우된다. 성도는 단지 담임 목회자의 지시에 순종하는 일만 요구된다. 교회가 나가야 할 방향은 담임 목회자가 제시하되 교회 운영과 실천 과정에는 민주적이며 합리적 절차가 있어야 한다. 담임 목회자의 리더십이 CEO 형태에서 교회와 하나님 나라를 위한 성도와의 동역자 개념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개교회 성장이 아니라 지역의 복음화다

한국교회는 개교회주의 바탕에서 성장하였다. 적자생존, 무한경쟁, 시장논리와 같은 자본주의, 신자유주의 원리가 교회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개교회가 아니라 성장시대에 상실하였던 지역교회 개념을 회복해야 한다. 개교회 부흥과 성장에서 지역복음화를 위해 지역의 교회들이 협력관계를 형성해야 한다.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론을 구축하고 지역사회를 하나님 나라로 변화시키는 일에 지역의 교회와 성도들이 연합하는 협력 체제를 구축해야 한다.

교회자체의 관심이 아니라 세상의 변화다

한국교회는 공교회 개념의 회복이 있어야 한다. 개교회로는 지엽적인 문제만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 나라의 거시적 차원에서 교회의 공적 책임을 수행하려면 개교회가 공교회 개념에 기초하여 있어야 한다. 세상을 향한 공적 영성은 이러한 공교회에 대한 인식으로부터 나온다. 교회가 공적 영역에서 빛을 드러내지 못한다면 자연히 사회로부터 신뢰를 상실하고 배척당하게 된다. 대형교회가 가진 잠재력을 긍정적 차원에서 고려한다면 지역사회뿐만 아니라 한 국가를 위해, 더 나아가 세계의 다른 교회들을 위해 적지 않은 영향력을 수행할 수 있다. 그것을 위해 대형교회는 공적 신학과 공적 영성에 기초한 공적 책임성을 가져야 한다.

십자가 영성 회복해야

한국 개신교는 강하고 힘 있는 종교에서 자기를 비우는 예수의 십자가의 영성과 삶을 본받아야 한다. 한국교회 초기에 교회는 사회적으로 소수자에 머물렀지만 성장과정을 거치면서 사회 전반에 적지 않은 영향력을 미치는 세력이 되었다. 이러한 영향력을 특권의식이나 기득권층과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다. 한국교회는 전투적인 십자군의 영성에서 십자가의 영성으로 전환해야 한다. 참된 기독교 영성 회복은 십자가의 영성에 대한 바른 이해로부터 주어진다. 근본주의 신앙은 힘 있는 기독교를 만들어 내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복음의 참된 힘은 교회 내적으로 형성되어야 하며, 사회와 타인에 대하여는 사랑과 겸손, 관용의 표현으로 나타나야 한다. 정교가 분리된 세속사회와 다종교사회에서 복음을 증거하고 실천하는 일에 있어서 가장 바른 영성은 십자가의 영성이다. 그것은 물질적 탐욕과 세상적 인기와 권력의 유혹으로부터 벗어나서 하나님 안에서 강하지만 세상을 향해서는 연약함으로 섬기며 증인으로 살아가는 “연약함의 신학”, “십자가의 영성”을 회복해야 한다. 그래서 진정한 선교는 공생애 중에 가난한 자, 소외된 자들과 함께하며 십자가에서 보여주신 사랑과 희생을 담당하는 예수의 삶을 실천하며 증거하는 것이다.

한국일 교수<br>장로회신학대학교 은퇴교수<br>​​​​​​​선교학
한국일 교수
장로회신학대학교 은퇴교수
선교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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