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의 힘은 날카로운 비판으로부터 나온다. 비판 없는 언론을 죽은 언론이라고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상대가 아무리 크고 거대한 권력이라도 흔들림 없는 비판의 칼날을 멈추지 않는 언론을 살아있는 언론이라 부른다. 특히 정치권력을 향한 언론의 비판은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근본이 된다.
일찍이 미국 제3대 대통령 제퍼슨은 ‘신문 없는 정부보다 정부 없는 신문’을 택하겠다는 말로 신문의 권력에 대한 비판정신을 강조한 바 있다. 언론의 비판은 사건과 사안에 대한 문제의식을 기본으로 한다. 무조건적인 비난이나 부정적인 접근이 아닌 본질에 대한 분명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다가가는 자세이다.
그런 만큼 언론의 비판은 근거와 논리가 분명해야 하고 그 다음으로는 용기와 의지가 뒤따라야 한다. 위험과 위협에 맞서야 할 경우도 있고 때로는 고통과 손해를 감수해야 할 때도 있다. 언론인을 일반 회사원과는 다른 다소 ‘특별한’ 직군으로 기대하는 심리도 바로 여기에서 비롯된다.
‘바람보다 일찍 눕는 언론’이란 말로 줏대 없는 언론의 모습을 비꼰 책의 제목을 본 적이 있다. 권력의 향방에 따라 언론의 논조가 재빠르게 바뀌는 그야말로 권력에 아부하는 언론을 가리키는 말이다. 사안이나 사건은 그대로인데 이를 보도하고 해석하는 방식이 권력의 입맛에 따라 급격히 변하는 경우이다.
정치권력 뿐 아니라 경제 권력에 대한 언론의 비판도 이와 다르지 않다. 오늘날에는 정치권력보다도 경제 권력에 의한 언론의 통제나 영향력이 더 커지고 있기 때문에 이에 대한 언론의 비판적 기사나 보도에 소극적인 경향도 나타나고 있다.
특정 언론을 소유한 기업이나 재벌에 대한 비판적 기사가 줄고, 막대한 자금으로 광고비를 지출하는 회사나 기업에 대한 비판적 기사를 용기 있게 게재하기는 사실상 어려운 경우도 적지 않은게 현실이다. 언론다운 언론의 부재나 기자정신의 상실을 지적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아무리 언론 환경이 변해도 언론이나 기자의 비판적 역할이라는 존재 이유를 망각하고는 언론의 존재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숭고한 언론의 비판정신을 특정 진영을 위한 일방적인 선전 도구로 전락시키는 안타까운 일이 벌어지고 있다. 이미 사건이나 사안의 방향을 정해놓고 자기 진영의 이익이나 견해에 입각해서 이를 보도하는 기사가 넘쳐나고 있다. 특정 신문이나 방송 특히 최근에는 범람하는 유튜브를 비롯한 각종 유사 언론에 이르기 까기 ‘진영언론’ 현상이 판을 치고 있다.
특정 진영에 속한 사람들을 겨냥한 명백한 편파, 편향 언론이 공정하고 정직한 정통 언론의 존재를 위협하고 있다. 저급하고 유치한 언어 사용은 말할 것도 없고 아예 노골적인 욕설이나 공격적인 언사들이 아무런 제재 없이 쏟아지고 있다. 신문이 우리 국민 글쓰기 교육의 지침이 되고 방송이 전 국민의 말하기 교과서라는 말이 무색해진지 오래이다.
물론 언론의 범주를 규정하기도 어려울 정도로 다양한 사회적 소통 방식이나 도구들이 늘어난 현실에서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언론 기능이나 역할을 논하는 게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이 건강해지기 위해서는 건강한 언론이 필요하다는 당위를 포기할 수는 없다.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언론의 올바른 비판기능이 작동해야 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