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와 복음] 영화 〈내일을 위한 시간〉 - ‘을(乙)’들의 전쟁을 부추기는 신자유주의의 허상
[영화와 복음] 영화 〈내일을 위한 시간〉 - ‘을(乙)’들의 전쟁을 부추기는 신자유주의의 허상
  • 임명진 목사
  • 승인 2022.10.06 13: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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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직을 며칠 앞두고 한가로운 금요일 오후를 즐기던 산드라(마리옹 꼬띠아르)는 한 통의 전화에 화들짝 놀란다. 회사 동료들이 산드라의 복직에 대한 찬반투표를 실시했고, 그 결과 보너스 1,000유로를 받는 대신 그녀의 일자리를 없애는 데 동의했다는 연락을 받았기 때문이다. 황당하고 갑작스러운 소식에 산드라는 친한 동료와 통화를 통해, 이 투표에 작업반장을 통한 부정이 개입되었음을 발견한다. 급하게 사장을 만나 월요일 아침 재투표 약속을 받아낸다. 이제 남은 시간은 단 이틀의 주말과 휴일뿐. 동료 줄리엣으로부터 직원들 연락처를 받아든 산드라는 남편과 함께 동료 직원들을 한 명씩 찾아가 자신의 사정을 이야기하고 지지를 호소한다.

하지만 쉽지 않다. 일단 누군가를 찾아가 아쉬운 말을 하는 그 자체가 부담이다. 미안하고 염치가 없다. 귀찮다는 생각도 든다. 더구나 이렇게 구차하게 동료들을 설득해야만 하는 자존심의 손상과 인격의 붕괴를 경험한다. 산드라와 만난 동료 중 일부는 개인 사정으로 거절의 뜻을 밝힌다. 올라간 집세를 내야하고, 공사대금을 치러야 하고, 생활비를 충당해야 한다. 빚도 갚아야 한다. 보너스 1,000유로가 필요한 이유도 다들 절박하다. 하지만, 산드라와 인간적인 관계에 양심의 가책을 느낀 일부 동료들은 지지 의사를 표명하기도 한다. 특히 계약직의 불안정한 고용상태로 언제 해고될지 모르는 상황임에도 자신을 위해 투표하겠다는 청년의 말에 위안을 얻기도 한다. 이 모든 과정이 진행되면서 산드라는 때로는 언쟁으로 때로는 공감으로 인간이기에 가능한 여러 감정을 경험한다.

영화는 산드라의 동료를 향한 반복적인 회유 행위에 초점을 두지만, 언뜻언뜻 사장과 작업반장의 태도도 의도적으로 내비친다. 그들은 최대한 중립적으로 말하고 행동하듯 보였지만 속내는 달랐다. 사장은 동료 직원들의 결정이기에 자신은 책임이 없다고 말하지만, 진짜 문제는 ‘보너스’와 ‘타인의 해고’라는 옵션을 직원들에게 제시한 자신이라는 사실을 감춘다. 반장도 마찬가지다. 겉으로는 중간자적 입장이지만, 뒤로 몰래 고용이 불안정하거나 새로 입사한 직원들에게 전화를 걸어 협박 아닌 협박을 한다. 산드라 자체가 갖는 가벼운 존재감도 한몫한다. 산드라가 없는 동안 16명의 직원은 산드라의 몫까지 충분히 일을 수행했고, 아무런 문제도 발생하지 않았다. “16명이면 되는데, 왜 널 복직시키겠어?”라는 한 동료의 말은 개인 산드라의 존재감이 어떤지를 대변한다.

우리 사회 구석진 곳에 존재하는 불안정하고 소외된 사람들의 문제를 바깥으로 끄집어내 함께 아파하고 풀어나가야 함을 주창하는 다르덴 형제(장 피에르 다르덴, 뤽 다르덴)는 영화 〈내일을 위한 시간〉에서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허약한 상태와 이를 악용하여 노동력을 착취하는 세력들의 부조리를 고발한다. 일반적으로 회사의 대립 구도는 사측과 노조의 관계에 있다. 일리 있는 말이다. 하지만 항상 그렇지는 않다. 기업을 운영하는 사람은 이익에 밝고 영리하다. 그들은 항상 자신의 얼굴을 선한 이미지로 포장한다. 대외 홍보뿐 아니라 회사 내 종업원과 노동자들을 대할 때도 중립적이고 자상한 면을 부각한다. 기획되고 가공된 면모이다. 친절하고 다정하게 아이를 안아주고 보듬어 주는 선한 인품의 사장님 사진으로 제작된다. 하지만, 노동자의 권익 보호나 임금인상에는 한 치의 양보도 없다.

그래서 신자유주의를 만끽하는 자본가들은 특히 ‘을(乙)’들의 전쟁을 부추긴다. 그들은 옵션으로 위장한다. ‘한 명의 직원이냐, 보너스냐?’ 하지만 이는 애초부터 없어야 할 상황이다. 그 안에서 ‘을(乙)’끼리 서로 싸우고 대립하여 반목이 생겨 분열을 일으키려는 것이 목적이다. 비단 기업만 그럴까? 종종 연휴와 명절을 맞아 대통령이 무료급식소에 가서 자원봉사를 하고 군인들을 찾아 위로하며 서민 편인 양 코스프레를 한다. 하지만 진짜 서민복지를 위한 공공주택이나 공익 일자리 관련 예산은 삭감한다. 보이는 게 진실이 아니다. 숨겨놓은 진실을 봐야 한다. 모자라게 만들고 자기들끼리 싸우게 만드는 게 전략이다. 연대(solidarity)가 필요한 이유이다. 지금 당장 조금 손해 보는 듯해도 연합하여 하나의 목소리를 낼 때 진정한 힘이 발휘되어 궁극적으로 모두가 생존할 수 있다. 반대로, 당장의 이익 때문에 연대를 포기하면 재앙은 나중에 어떤 모습으로 내게 닥칠지 모른다. 근시안보다는 원시안으로, 표면보다는 본질을 봐야 할 이유이다.

임명진 목사<br>북악하늘교회 담임<br>​​​​​​​문화사역 전문기자<br>
임명진 목사
북악하늘교회 담임
본보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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