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레이오스] 피할 것인가? 가까이 다가 갈 것인가?
[텔레이오스] 피할 것인가? 가까이 다가 갈 것인가?
  • 손은정 목사
  • 승인 2022.08.25 10: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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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_손은정 목사(영등포산업선교회 총무)

 

몸이 아픈 사람을 한 두어 시간 정도 병문안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하루 이틀 같이 지내며 돌보고 나면, 이것이 보통 일이 아니란 소리가 절로 나온다. 하물며 급히 볼 일을 보기 위해 길을 가다가, 쓰러진 사람을 보면 어떠한가? 흉악한 일을 당했는지 옷은 다 벗겨지고 피를 흘리며 쓰러져 신음하는 사람을 보았다면 어떠한가? 일단 놀라고 겁이 나고 어찌해야 할지 몰라 주춤거린다.

안타까운 마음이야 가득하지만 혼자서 어찌해볼 도리가 없다는 현실적인 판단과 함께, 가던 목적지를 향해 떠나면서 일단 그 자리와 그 사람을 피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누가복음 10장 사마리아인 비유에 나오는 제사장과 레위인도 이 점에서 다르지 않았다. 아프고 어려운 사람을 돌보는 일에 있어서 누구보다 앞장서야 할 역할을 맡은 이들이었다. 나는 이들을 비난하고 싶지 않다. 많은 사람이 그렇게 선택하고, 나 역시 그랬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떤 사마리아 사람은 달랐다. 그는 갑자기 만난 그 상처 입은 사람을 피하여 가지 않았다. 가까이 다가갔고 응급 처방을 했다. 그리고 안전한 곳으로 이동시켜서 하룻밤을 함께 지내며 돌보았다. 그리고 가던 길을 나서며 여관 주인에게 지금으로 보면 이십만 원 정도의 돈을 주고, 더 들면 돌아오는 길에 들러서 지불하겠다고 후속조치도 취했다.

최근에 사마리아인 비유를 묵상하면서 새겨지고 남겨진 질문은 이것이다. “피할 것인가? 가까이 다가갈 것인가?”

필자가 속한 선교회는 소득 3만 불 시대에도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얼마나 헐값에 팔리고 있는지, 비정규직과 하청노동자들의 차별의 현실과 개선할 수 있는 길을 주목하고 찾아가고 있다.

현재 한국사회 2500만 노동인구 가운데, 1100만 명이 비정규직이다. 그 가운데 특수고용노동자 240만 명, 플랫폼 노동자는 53만 명, 영세한 1인 자영업자 403만 명에 이른다. 노동권의 보장을 받지 못하는 사각지대에 놓인 노동자가 약 945만명, 제도적 차별이 용인되는 노동자 수는 약 1799만 명에 달한다.

각자 묵묵히 열심히 일하며 살아가는 것 같지만, 그 속에는 참 많은 아픔과 고통과 한숨들이 숨어 있다. 최근의 노동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준 거제 조선소 하청노동자들의 고공 농성과 0.3평 유최안씨의 옥쇄 투쟁을 떠올려 보라. 허리도 펼 수 없고 일어 설 수도 없는 0.3평 공간에 자신을 가두고 ‘이대로 살 순 없지 않습니까?’라는 팻말을 붙이고 한 달여간 농성하며 우리 교회와 사회의 양심의 문을 두드렸다.

지난 수년 간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수도 없이 하늘 고공으로 올라가서 차별과 배제의 현실을 바꾸어갈 것을 요구하며 농성했다. 땅에서 아무리 개선을 요구해도 듣지 않으니, 하늘에 호소하는 수밖에 없어서 노동자들은 기어코 아슬아슬한 난간을 타고 고공으로 올라가고 있다고 봐야 하지 않겠는가? 기술의 발전으로 무인자동화시스템이 확산되는 작금의 상황에서도 대기업정규직 노동자들을 제외하고는 우리 곁의 노동자들은 여전히 위험하고 지루하고 고통스런 노동환경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앞으로 인공지능 기술의 발전은 편리하고 화려한 미래를 약속하지만, 다른 측면에서 예상되는 혼란은 크고 심각하다. 킬러로봇, 슈퍼인간 생산 가능성, 알고리즘 통제, 불안정 일자리, 일자리 소멸이 예상되고 있다. 다수의 사람들은 쓸모없는 사람들이 되며 불평등은 더욱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우리 그리스도인의 신앙을 더 심각하게 위협할 것이다.

이뿐인가? 하나님의 집인 온 세계가 이번 여름에도 지구온난화로 인해 기록적인 폭우와 가뭄을 동반하며 비상상황임을 알려주고 있다. 우리는 이 지구 환경과 법의 사각지대에 방치된 수많은 노동자들이 상처입고 쓰러진 강도만난 이웃임을 자각한다.

그러나 선택은 열려있다. 지금 나는 강도 만난 자연과 상처입고 쓰러진 이웃을 피할 것인가? 가까이 다가갈 것인가? 우리 교회는 이 이웃들의 신음 소리를 피할 것인가? 가까이 다가갈 것인가? 가까이 다가가는 것은 한걸음에서 시작된다. 일단, 한 걸음!

손은정 목사<br>(영등포산업선교회 총무)<br>
손은정 목사
영등포산업선교회 총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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