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칼럼] 위반違反에 빚진 자(1)
[전문가 칼럼] 위반違反에 빚진 자(1)
  • 백우인 목사
  • 승인 2022.08.10 15: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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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_백우인(예술목회 연구원, 감리교 신학대학교 종교철학 박사과정, 작가)

나는위반자들을 알고 있다.

위반은 법률, 명령, 약속 따위를 지키지 않고 어기는 것이라고 규정한다. 이 규정에 합당한 이들은 모두 위반자다.

법과 명령과 약속. 이것은 ‘몰적인 힘’이다. 막강한 덩어리의 힘이며 현재에 작동할 뿐만 아니라 미래에까지 영향력을 행사하는 거시적인 힘이다. 이것은 외적인 것들과 철저하게 경계를 그어서 주변의 것들은 한낱 부스러기로 만든다. 반면에 위반은 분자적 힘이다. 분자적 힘은 결정화되고 교량화되기 전의 헐거운 낱개적 힘이다. 그러나 이 분자적 힘들의 불규칙한 운동과 그로 인한 충돌과 침투와 포획은 또 다른 몰적인 힘으로 성장한다. 몰적과 분자적이라는 화학 용어를 위반을 말하기 위해 끌어다 쓰고 있는 나도 역시 위반자다.

소위 전문가와 전공 혹은 전문이라는 선이 그어진 영역에서 그들이 사용하는 언어는 천상계와 지상계를 구분짓는 에테르와 다르지 않다. ‘아무나 함부로 사용하지 말라’는 눈에 보이지 않는 법과 명령과 약속을 나는 마음대로 침범해서 내 경계 밖의 언어들을 사용하고 있으니 말이다. 들뢰즈는 음악과 미술과 생물학과 물리학과 영화 등의 개념과 용어를 차용함으로써 학문의 경계선을 넘는다고 비판을 받았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사유와 논리를 펼치기 위해 감각은 물론이거니와 그의 모든 지식과 학문의 지평에서 무엇이든 사용하려 했고, 사용했다. 단연코 차용borrow이 아니라 사용use이다.

필자가 보기에 언어를 기반으로 한 학문의 개념일진대 그리고 현상을 재현하거나 묘사하고 기술하고 해석하기 위한 언어일진대 이러한 언어에 라벨이 붙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언어에는 왕좌도 성벽도 없으므로 차용이라는 표현은 타당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착화된 전문가의 세계에서 추상 같은 사상가들의 사상을 짧게 요약해 버리며 그들을 점조직 삼고 내 영역 밖의 용어들을 맘대로 휘젓고 다니면서 내 사유의 논리를 끌어가는 나는, 위반의 혐의를 벗을 수는 없을 것이기에 위반자다.

기억을 더듬어 보자.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코페르니쿠스, 브루노, 갈릴레이, 케플러, 뉴턴, 데카르트, 스피노자, 니체, 들뢰즈, 푸코, 라캉 등등 시대를 가로지르며 이들을 하나로 묶는 교집합은 무엇인가. 모두 인류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로 관성적 사고를 흔들어 위반을 가한 자들이다. 다시 말해, 당대가 약속하고 지키고 의심을 금기시한 것들 그리하여 당연한 것으로 고착화 된 이불을, 막대기를 들어 때리고 흔들어 이불의 먼지를 털어냈던 위반자들이다.

예컨대, 민주정 체제의 우물 속에서 난무하는 억견과 그것으로 획득한 권력들이 고여갈 때, 우물을 휘저어 앙금들을 출몰시켜 그곳을 혼탁하게 한 위반. 동굴 같은 우물 속에서 우상들의 실체를 바로 보아야 한다고 말하며, 몸을 입고 살고 있는 물질세계의 이 땅은 부패한고로 천상으로 눈을 돌리게끔 하는 위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부패한 지상에서 행복을 추구하기 위해 의지를 곧추세워야 한다는 위반. 수학과 천문학으로 천체를 설명한 위반. 종교의 영역에 과학을 들이민 위반. 원하지 않았지만 결과적으로 신의 자리를 밀어낸 위반. 회의주의를 회의함으로써 주체를 깨워낸 위반. 자연이 신이라고 말한 위반. 공고한 이성의 탑을 망치로 내려친 위반. 자기 스타일로 학문 간의 영역을 넘나들며 언어를 탈 영토화 시킨 위반. 인간의 사라짐을 주장하는 위반.

언급되지 않은 수많은 위반들이 점처럼 편재해 있고 이 점들의 배치와 연결은 다채로운 별자리로 연결되어 이념을 생산한다. 산발적인 위반들은 은연중에 다공성의 암석에서 생명이 출현하듯이 또 다른 위반을 낳았으며 쉼 없이 새로운 위반을 잉태하고 출산한다.

최초의 위반, 그것은 어디서부터일까?

백우인 목사<br>감리교신학대학교 종교철학과 박사과정<br>​​​​​​​예술목회연구원 연구위원<br>
백우인 목사
예술목회 연구원
감리교 신학대학교 종교철학 박사과정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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