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와 복음] 영화 〈시니바나〉 - 죽음 같은 삶인가, 죽음을 초월한 삶인가?
[영화와 복음] 영화 〈시니바나〉 - 죽음 같은 삶인가, 죽음을 초월한 삶인가?
  • 임명진 목사
  • 승인 2022.07.14 10: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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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례식을 위해 겐다가 미리 준비해 놓은 관속에 누워 본 키쿠는 예상외로 편안하고 포근한 느낌에 죽어도 괜찮겠다는 생각에 살며시 눈을 감아본다. 하지만 죽음을 생각하고 그 의미를 음미할 틈도 없이, 동료 노인들이 이제 내 차례니 나오라고 종용한다. 잠시 들어가 본 관속에서, 키쿠는 죽으려 했을까 잠이 들려 했을까? 잠과 죽음의 차이는 무엇일까? 단지 일정한 시간이 지나 이 세상에서 깨어나면 잠이고, 저세상으로 가버리면 죽음일까? 삶과 죽음의 경계를 가르는 것은 무엇이며, 죽음 앞에 삶은 어떤 의미로 남아있을까?

우리에겐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로 유명한 이누도 잇신 감독의 영화 〈시니바나〉는 삶과 죽음의 묘한 대비를 이루는 두 예식을 통해, 점점 늙어 가는 우리 시대 노년의 문제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영화의 배경은 고급 유료 요양원인 라꾸라꾸 장수원이다. 이곳은 부유한 노인들이 편안한 시설에서 삶의 마지막을 준비하는 곳이다. 하지만 그들의 삶은 무료하다. 죽음을 앞둔 삶은 그런 것일까? 어느 날, 아오키의 백수(白壽) 축하연이 저녁에 열린다. 요양원에서 함께 생활하는 동료와 후배들이 축하하며 모여든다. 아오키는 생일을 상징하는 옷을 입고 축하에 답례 인사를 하려 하지만, 다리에 힘이 없어 제대로 일어서질 못한다. 가까스로 주위의 도움으로 일어서긴 했으나 말도 내뱉지 못하고 주저앉고 만다. 생일축하 케이크도 촛불을 불 힘조차 없어 실패하고 만다. 이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겐다는 생각에 잠긴다.

시간이 흘러 겐다의 장례식. 얼마 전까지 월척을 낚으며 건강하게 생활했던 겐다의 갑작스러운 죽음. 그런데 장례식이 수상하다. 장례식장에 행사 진행요원이 등장하고, 초대된 요양원의 동료들을 대상으로 축하공연이 펼쳐진다. 고급 음식과 술이 준비되고 멋진 음악이 흘러나온다. 영상 속에 살아있는 겐다가 등장해 자신의 장례식을 축하공연으로 인도한다. “인생은 즐기기 위해 있는 것이다. 괴로움은 단지 조미료일 뿐이다.”라는 전설적인 가수 빙 크로스비의 말을 인용하여 선언하고 직접 노래한다. 이에 참여한 모든 조문객은 음악에 맞춰 춤을 춘다.

생일과 장례식. 삶과 죽음에 있어 가장 대조되는 두 행사는 그것을 맞이하는 사람이 어떤 생각과 상황에 있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이제 나이 들었으니 조용히 죽음을 맞이해야 할까? 단지 연명만 하는 삶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 어느새 고독사와 안락사는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닌 우리 앞에 닥친 실존의 문제이다.

죽기 전에 겐다는 친구들에게 ‘시니바나(死に花)’라는 유언장을 남긴다. ‘죽음 뒤의 명예’라는 뜻의 유언장에는 동료들을 위한 발칙하고 유쾌한 계획이 치밀하게 기록되어 있다. 사쿠람보 은행 털기. 겐다가 유언으로 남긴 이 얼토당토않은 계획에 맞춰 동료 노인들은 일생의 희열을 맛보며 은행을 턴다. 삶의 기력조차 없던 그들이 ‘은행 털기’라는 전대미문의 이벤트에 생기가 솟고 피가 끓는다.

산다는 건 의미를 창조하는 일이다. 삶에 활력이 있고 눈에 불이 날 때는 무언가 보람되고 의미 있는 일을 위해 매진해나갈 때이다. 그것은 나이와 상관없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하지만 그 죽음의 공포와 무게에 짓눌려 마지못해 맞이할지, 적극적으로 준비하며 죽음을 초월한 생생한 삶을 살아갈지는 오롯이 자신의 선택에 달려있다. 영화의 황당하고 작위적인 설정에 실소를 금치 못함에도 그런 엉뚱한 발상이 마냥 싫지만은 않은 건, 100세 시대가 이미 코앞에 닥친 우리 현실에서 한 줄기 희망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죽음 같은 삶인가, 죽음을 초월한 삶인가? 어쩌면 ‘아모르파티’(Amor Fati)는 죽음을 초월한 진짜 삶을 안겨준 예수님의 모토였는지도 모른다.

임명진 목사<br>북악하늘교회 담임<br>​​​​​​​문화사역 전문기자<br>
임명진 목사
북악하늘교회 담임
본보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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