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자흐스탄 선교 30년, 위기와 회복 (2)
카자흐스탄 선교 30년, 위기와 회복 (2)
  • 김상길 선교사
  • 승인 2022.06.28 15: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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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마띠 시온교회.

1. 교회 건축, 활기를 띠기 시작한 사역

교회건축은 사역의 공간과 시간을 확보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홀을 빌려서 사역을 할 때는 늘 무엇을 계획하더라도 공간과 시간의 제약을 받았었다. 그러나 교회가 지어짐으로 이러한 문제가 해결되니 자연히 사역은 힘을 얻게 되었다. 여러 가지 모임들이 수시로 가능하게 되었고 특히 성경 공부와 기도 시간을 확보할 수 있었다. 그동안 일요일 외의 모임은 여기저기 장소를 찾아다니며 모임을 가졌다. 특히 특별 기도모임은 사나토리(휴양소)를 찾아다녔고 성경 공부는 사무실에서 소모임으로 모였다. 그러나 건축 후 기도 모임은 새벽기도와 금요일 저녁 모임을 고정으로 가지게 되었고 수요일과 주일 오후는 성경 공부 모임으로 고정화되었다. 아울러 각종 부서 모임이 활성화되었다. 아동부서, 청년부서, 성가대와 경로대학이 열리게 되었다. 한마디로 모이기에 힘쓰는 교회가 된 것이다. 자연히 많은 교인들이 참여를 하게 되었고 교회의 기틀을 마련하는 계기가 되었다.

특히 경로대학을 열게 된 것은 교회 내적인 사역이라기보다는 지역사회 봉사의 차원에서 시작을 하였다. 교인이든 아니든 상관없이 노인들을 섬기는 차원에서 사역을 펼치기 시작하였다. 많은 노인들이 참여를 하게 되었고 다양한 프로그램들이 만들어졌다. 교회 안에서 만의 프로그램이 아니라 교회 외적인 부분에서도 프로그램들이 만들어지고 여러 곳에 위문 공연도 다니게 되었다. 경로대학의 재정은 교회의 재정에서 시작을 하였지만 뜻이 좋다고 생각한 한 기업가가 재정을 전적으로 후원하여 더욱 활기를 얻었다. 경로대학을 통하여 교회가 복음 전도 사역만 아니라 지역사회와 함께 하는 한마디로 봉사하는 교회가 되었다.

아동부서도 활기를 띠게 되어 각종 프로그램과 교사 교육 프로그램들을 통하여 교회 내의 사역만이 아니라 여러 교회들의 아동부서를 위한 사역이 펼쳐지게 되었고 특히 교사교육에 더욱 헌신하게 되었다. 이 일들은 전적으로 이성숙 선교사의 전문 사역이 되어 많은 성과를 이루어 내었다. 교회를 건축한 후에도 몇 년 동안 아동들을 향한 선교에 제약이 없었다. 하지만 2000년도 새로운 종교법이 생기면서 아동부 사역에 제약이 가해졌다. 가두 전도를 할 수 없었고 부모의 동의서가 없으면 아이들을 모을 수가 없었다. 18세 이하의 아이들에게는 종교 교육을 시킬 수 없었다. 종교법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게 되었지만 교회 내적으로는 여전히 사역이 활발하게 진행 되었다. 그것은 그만큼 교회 건축을 통하여 공간과 시간을 확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2. 위기와 갈등, 그리고 회복

선교사역은 신뢰 관계에서 이루어지는 종합적 사역이다. 후원하는 교회와 행정을 뒷받침하는 파송하는 총회와 파송을 받아 현장으로 나아가는 선교사가 서로 신뢰 관계를 가지면 선교는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 중에 어느 하나라도 신뢰 관계가 깨어지면 사역은 어려워지게 된다. 2002년 1월 27일은 교회 창립 10주년을 맞이하는 때에 교회는 10주년 행사를 그 어느 때보다 성대하게 하였다. 사실 이 때가 교회적으로 가장 활발하게 움직일 때라 성대하게 거행한 것이다. 미국 ㅇㅇ교회와 부천 ㅇㅇ교회 중창단까지 참여하는 행사였다.

그러나 이것은 또 하나의 문제를 일으키는 씨앗이 되었다. 어찌 보면 선교의 주도권의 문제라고 생각이 든다. 사실 이러한 문제를 조금은 느끼고 있었지만 이렇게 표면화 할 것이라고 생각을 못하였다. 이로 인하여 후원교회인 미국 ㅇㅇ교회와 조그마한 갈등이 일게 되었고 그것은 결국 후원 중단이라는 사태까지 이르렀다. 나는 새로운 후원교회를 찾기 위하여 한국에 들어오게 되었고 이것은 또 하나의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되었다. 나는 다른 교회를 찾는 가운데 부천 흰돌교회로부터 담임 목사가 되어 달라는 청빙을 받았고 이것은 나를 향한 하나님의 새로운 계획처럼 들렸다. 사실 선교지에서 10년을 있다 보면 갈등이 오게 되어 있는 것 같았다.

더구나 일찍이 선교사로 헌신한 선교사도 아니고 또 그동안 겪었던 많은 일들이 나를 떠나게 만드는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결국 그 청빙을 받아들이기로 하였다. 한 달 만에 모든 것을 정리하고 모든 사역지와 집을 후임에게 물려주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이것은 나의 과오였고 교회적으로는 큰 어려움에 빠지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후임 선교사와 현지 교인들 간에 갈등이 일게 되었고 그것은 걷잡을 수 없는 상황까지 이르렀다. 알마띠를 들러 상황을 확인해보니 수습할 수 없는 지경이었다. 가장 심각한 것은 설교하는 선교사와 통역이 갈등 관계에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무슨 영적 은혜가 있을 수 있겠는가? 나는 다시 고민을 하게 되었고 결국 흰돌 교회의 양해를 얻어 2003년 8월에 다시 돌아오게 되었다. 떠난 지 꼭 일 년 만이었고 돌아왔을 때 후임 선교사는 이미 교회를 떠난 상태였다.

나는 마음에 많은 상처를 받았고 교인들은 이미 많이 흩어져 있었다. 총회는 일 년 만에 되돌아가는 나를 재파송을 해 줄 수 없다고 하여 결국 파송을 받지 못하고 돌아온 것이다. 현지로 돌아온 후 일 년은 내게 참으로 힘든 시기였다. 내 자신을 감당할 수 없어 심한 우울증을 겪었다. 힘든 시간들이 지나면서 교회는 점점 안정을 되찾았고 나도 회복되기 시작했다. 감사하게도 여수 영락교회가 현장을 답사한 후 총회 파송과 상관없이 3년 간 일부 후원하기로 결정 해주셨다. 그리고 우연한 기회를 통해 2004년 11월, 알마띠로 돌아온 지 1년 반 만에 총회로부터 재파송을 받게 되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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