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칼럼] 선녀는 참지 않았다, 전래동화 뒤집기
[전문가 칼럼] 선녀는 참지 않았다, 전래동화 뒤집기
  • 최병학 목사
  • 승인 2022.06.24 01: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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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동과 선화공주』, 『선녀와 나무꾼』, 『처용』, 『우렁각시』, 『장화홍련전』, 『혹부리 영감』, 『콩쥐팥쥐전』, 『박씨전』, 『반쪽이』, 『바리데기』 등 제가 어릴 적에 읽었거나, 들었던 전래동화는 지금도 아이들이 읽고 있습니다. 이러한 전래동화는 우리들 무의식에 자리 잡아, 한 사람의 인식에 막대한 영향을 미침에도 불구하고, 그 속에 담긴 성차별적 요소에 관해서는 지금껏 충분한 고찰이 이루어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함께 깨닫다’라는 이름 아래, 대학생들이 주축이 되어 2015년부터 함께 읽고, 쓰고, 생각을 나누는 독서토론 모임인 ‘구오(俱悟)’는 『선녀는 참지 않았다: 고정관념 차별 혐오 없이 다시 쓴 페미니즘 전래동화』 (위즈덤하우스, 2019)이렇게 말합니다.

“전래동화나 전통 설화를 읽으면서 다들 한 번쯤은 가져보았던 의문들이 있을 것이다. ‘선녀를 아내로 삼은 나무꾼은 범죄자가 아닌가?’, ‘왜 계모는 항상 못됐는가?’, ‘왜 딸들은 남성 영웅의 포상이 되는가?’

우리는 유년 시절부터 끊임없이 전래동화를 접하고 자라면서 그 주제와 내용으로부터 무의식적으로 영향을 받는다. 어린 시절 경험한 전래동화에 대한 기억은 하나의 문화적 원형을 이루어 성인이 된 이후에도 우리의 사고, 깊은 곳에 자리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독서모임 구오는 이러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각종 성범죄와 차별, 혐오가 난무한 한국의 전래동화를 페미니즘 시각에서 다시 썼습니다. 그 결과 앞서 언급한 10편의 전래동화가 해롭지 않은 새로운 이야기로 재탄생되었습니다. 이 책은 모든 등장인물들이 고정된 성역할과 편견에서 벗어나, 원전보다 훨씬 입체적이고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표제작인 ‘선녀와 나무꾼: 선녀는 참지 않았다’만 살펴볼까요? 이야기는 이렇습니다. 나무꾼은 숲에서 사냥꾼에게 쫓기던 사슴을 수풀에 숨겼습니다. 사슴이 은혜를 갚는다며 나무꾼에게 소원을 물어보니, “예쁜 아내를 얻어 장가나 가고 싶다.”라고 말합니다. 사슴은 선녀들이 목욕을 하러 내려오는 고개 너머 폭포로 나무꾼을 데려갔고, 나무꾼은 사슴의 조언에 따라 마음에 드는 선녀의 옷을 바위틈에 숨깁니다. ‘지금쯤이면 옷이 없어진 걸 알고 큰일 났다며 울고 있겠지?’ 나무꾼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벌거벗은 선녀가 나무꾼을 찾아냈습니다. 그리고 크게 호통을 칩니다. “왜 옷을 훔쳐 갔냐고? 도둑놈이냐고!” 그렇습니다. 선녀는 참지 않았던 것입니다.

사실 사회는 변하고, 사회가 요청하는 정의의 모습 역시 변합니다. 어릴 적에 ‘선녀와 나무꾼’을 읽으면서 남편을 버리고, 하늘나라로 다시 돌아가는 선녀가 ‘매정하다’라고 느낀 적이 있었는데, 지금은, ‘데이트 폭력’과 ‘불법 촬영’이 범죄인 시대입니다. 따라서 선녀의 꾸지람은 당연한 것입니다. 어디서 감히 옷을 숨기고, 이렇게 폭력적으로 데이트를 신청하다니요! 나무꾼은 꾸지람을 받아도 쌉니다. 원작에서는 ‘은혜 갚은 사슴의 신의’와 ‘선행을 베푼 나무꾼의 고운 심성’만을 칭찬할 뿐, 선녀들을 훔쳐보다 옷을 숨기고 갈 곳 없도록 상황을 꾸며 아내로 취하는 것은 전혀 이상하지 않은 행동처럼 묘사되었습니다. 따라서 선녀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됩니다. 그러면 이 전래동화가 얼마나 남성 중심 가부장적 사회의 이데올로기 산물인지 제대로 보일 것입니다.

추천의 글에서 여성학자 정희진 선생은 이렇게 말합니다.

“어느 시대나 지배 세력이 가장 두려워하는 현상은 피지배 세력이 자기 위치와 구조의 부당함을 깨닫고 이전처럼 살기를 거부하는 것이다. 흑인이 노예 노동을 거부하고 여성이 희생과 자기 비하에서 벗어난다면, 우리가 더 이상 서구 사회에 콤플렉스를 느끼지 않는다면, 세상은 보다 살 만한 곳이 될 것이다. 그래서 동화는 미래 세대인 어린이를 훈육, 세뇌하는 가장 효과적인 이데올로기이다. 동화에 대한 개입, 재해석이 중요한 사회적 과제인 이유다. 동화도 다른 담론처럼 치열한 정치적 경합의 장이다.”

성서가 고대 근동, 강압적인 제국들 사이의 지배 담론의 장에서 살아남아(물론, 하나님의 말씀이기에 당연하겠지만), 오늘 우리들에게 전해지기까지는, 다시 교회와 교권, 교리의 강압에 눌려 성서 자체의 목소리를 잃고 왜곡된 지 오래입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은 참지 않아야 합니다!”, 성서를 제대로 읽어야 합니다. 따라서 이 책 『선녀는 참지 않았다』는 고정관념과 차별, 혐오 없이 다시 성서를 읽어야 한다는 통찰도 그리스도인들에게 전해줍니다.

최병학 목사<br>남부산용호교회<br>​​​​​​​동아대학교 철학생명의료윤리학과<br>전)경성대학교 사회과학연구소 학술연구교수<br>​​​​​​​예술목회연구원 연구위원<br>
최병학 목사
동아대학교 교수
예술목회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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