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칼럼] 치유와 성장의 매체로서 그림책
[전문가 칼럼] 치유와 성장의 매체로서 그림책
  • 이영식 목사
  • 승인 2022.06.09 13: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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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_이영식 목사

그림책은 글과 그림이라는 두 개의 날개로 날아오르는 새와 같다. 왼쪽 날개는 문자로 구성되고 오른쪽 날개는 그림으로 구성된다. 독자들은 좌익(左翼)과 우익(右翼) 두 종류의 정보를 마음속에서 통합하여 최종적인 내용을 구성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림책의 최종적인 메시지는 책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읽는 사람의 상상력이 가미된 심리적 가상공간에 존재한다.

영어권에서는 ‘그림책’(picture book)과 ‘삽화가 있는 책’(lustrated book)을 구별하여 개념을 사용한다. 전자는 전문적인 의미에서 그림책을 가리키며 글과 그림이 상호 보완적으로 내용을 전달하기 때문에 그림의 역할이 필수적이다. 그에 비해 후자는 문자만으로 메시지를 충분히 전달할 수 있기 때문에 그림이 필수적 요소는 아니다. 여기서 그림책의 가장 중요한 원리가 도출되는 데 “글과 그림 사이에 여백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즉 그림이 글을 반복하지 않으면서 때로는 상보적(相補的)으로 때로는 상반적(相反的)으로 내용을 전개한다.

그림이 글에서 말하지 않는 내용을 분담해서 전개하는 상보적 역할의 사례는 영국의 그림책 작가 엔서니 브라운의 작품들이 잘 보여준다. <공원에서 일어난 이야기>라는 작품이나 <돼지 책>에서 그림을 자세히 살펴보면 글에서 말하지 않는 수많은 메시지가 숨겨져 있다. 대부분의 어른들은 그림책을 읽으면서도 그림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 반대로 아이들은 글은 어른들이 읽어주는 것을 듣고 눈은 그림을 보면서 다양한 이야기를 찾아낸다. 우리가 지도하는 독서 모임에서 <돼지 책>에 얼마나 많은 돼지들이 숨어 있는지 처음 찾아낸 것도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들이었다. 한편 토미 웅거러((1931-2019)라는 그림책 작가는 평생 동안 인류의 평화와 나눔, 소통과 같은 인류 보편적 가치를 주제로 다루었다. <개와 고양이의 영웅, 플릭스>나 <엄마 뽀뽀는 딱 한 번만>과 같은 수많은 작품에서 파이프를 그려 넣음으로 이 주제를 은유적으로 표현한다.

그림책에서 그림이 상반적 내용을 전달하는 사례를 들어보자. 일본인 작가 고미 타로의 <나하고 놀자>라는 그림책이 있다. 어느 날 작은 새 한 마리가 목이 긴 기린을 찾아와 “나하고 놀자”라고 말한다. 기린은 “싫어!”라고 대꾸하면서 고개를 숙인다. 작은 새는 포기하지 않고 함께 놀자고 조른다. 그때마다 기린은 싫다며 머리를 이리저리 숨기고 새는 따라다니며 기린의 머리가 있는 곳을 찾아낸다. 한참을 그렇게 하다가 작은 새는 내일도 또 놀자며 푸르르 날아가는데 기린은 “싫어!”라고 대답한다. 문자서사에서 기린은 분명코 작은 새와 놀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그림은 기린과 새가 지금까지 ‘놀자-싫어’놀이를 했음을 장난스럽게 보여준다. 이처럼 그림책에서 그림은 문자 서사의 내용을 보충하기도 하고 교대로 전달하거나 완전히 반대되는 내용을 전개하면서 이야기를 구성한다. 그림책은 글과 그림 사이의 여백을 독자 자신의 경험과 상상, 연상, 느낌, 무의식적 투사로 채워가며 읽게 되며 여기에 그림책의 놀라운 힘이 있다.

책읽기를 통해서 사람들의 성장과 치유를 촉진하는 독서치료에 입문했을 1998년 당시 필자는 자기조력도서(self-help book)에 심취해 있었다. 자기조력도서는 심리·정서적 문제나 대인관계문제, 생활상에서 겪는 여러 가지 부적응의 문제 해결을 주제로 다루는 자기 개발서의 일종이다. 이 책들은 대부분 저자의 오랜 연구와 경험을 통해서 검증된 정보를 전달하기 때문에 읽고 적용하면 효과를 볼 수 있다. 하지만 현장에 적용하는 데 몇 가지 문제점을 발견하였다. 첫 번째 책이 너무 두껍고 내용이 어렵다는 점이고 두 번째는 문학이 아니기에 지루하다는 것이다. 세 번째로 두꺼운 자기 조력도서를 읽어내어 실생활에 적용할 힘이 없는 이들이 많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함께 토론하는 데 부담 없이 읽을 수 있고 재미있으면서 삶의 다양한 문제들을 주제로 다루는 매체가 필요했는데 그때 그림책을 만났다. 그림책은 가독성이 뛰어나서 어린이부터 어른까지 읽어낼 수 있다. 최근의 그림책은 남녀노소(男女老少) 모든 성과 모든 세대의 삶의 문제를 주제로 다룬다. 즉 모든 세대를 위한 책이 되었다. 거기다 뛰어난 문학성으로 재미있기까지 하니 치유와 성장을 위한 독서 모임에서 자신의 내면세계를 비춰보는 거울로서(거울독서), 자기 이야기를 끌어내는 마중물로서(마중물독서) 훌륭하게 기능하는 것을 확인 할 수 있었다. 성장과 치유를 주제로 다루는 그림책 목록에 관심이 있는 분들은 그림책 박물관 홈페이지(http://www.picturebook-museum.com)를 참고하시기를 바란다.

나의 삶에 있어서 40대 초반 그림책과의 만남은 커다란 축복이었다. 그림책을 거울삼아 나의 내면세계를 들여다보고 그림책을 마중물 삼아 많은 그룹에서 다양한 사람들과 속마음을 털어놓고 진솔한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더 나가서 작은 그림책 형태로 자신의 삶을 설계하는 활동도 수많은 사람들에게 소개하였다. 나는 세월이 흐를수록 그림책의 힘을 체감한다. 나이가 들면서 두꺼운 책을 읽어내는 데 시력과 집중력이 따라주지 않는데 그림책에 더욱 마음이 간다. 나는 죽을 때까지 그림책을 가지고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이영식 목사 한국독서치료학회 영남지회 대표비전교회 담임목사예술목회연구원 연구위원
이영식 목사
한국독서치료학회 영남지회 대표
비전교회 담임목사
예술목회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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