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자흐스탄 선교(알마띠 시온교회) 30주년
카자흐스탄 선교(알마띠 시온교회) 30주년
  • 김상길 선교사
  • 승인 2022.06.10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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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_김상길 선교사
김상길 선교사(우)와 이성숙 사모(좌).

1) 알마띠 시온교회 개척

1991년 9-10월에 걸쳐 총회에서 실시하는 선교사 훈련을 받고 1991년 12월 29일 부천 참된교회에서 선교사 파송예배를 드렸다. 사실 주 후원교회가 미국 워싱톤 시온교회였기에 국내에서 파송 예배를 드릴 곳이 없었지만 부천 참된교회 박창하 목사님의 배려로 아무런 연관이 없는 곳이었지만 그곳에서 파송예배를 드렸다. 그리고 온 식구들이 1992년 1월 18일 김포공항에서 대한항공을 타고 모스크바로 향하였다. 내 나이 40이었다. 아내와 두 아이를 데리고 겁도 없이 선교를 시작한 것이다.

1992년 1월 26일, 알마띠에 들어온 지 일주일 만에 교회를 시작하기로 하고 우리 집 네 식구와 강 에드와르드 식구 세 사람(강 에드와르드, 텐 지나이다, 이라)이 아파트 응접실에서 예배를 드렸다. 이것이 시온교회의 시작이다. 그 다음 주에는 아이들의 언어 과외 선생님 엘레나 바실리에브나, 옆집에 살던 고려인 식구들, 에드와르드의 아들 이글이 함께 참여했다. 사람들은 늘어났고 삼 개월 만에 삼십 명 정도의 사람들이 모여 더 이상 집에서 모일 수가 없었다.

그래서 아바야 자로꼬바에 있는 인스띠뚜뜨의 강당을 빌려 예배를 드렸고 그 후 몇 차례 장소를 옮겨 다니며 아바야 소피아까발렙스까에 있는 인스띠뚜뜨 고르나바 젤라의 강당을 빌려 교회 건축을 완성하기까지 그곳에서 예배를 드렸다. 1992년에 이미 교회는 국가에 등록을 하였고 법인을 허가 받았다. 당시는 교인 열 명만 동의를 하면 법인을 열수 있었다. 물론 행정적인 일은 쉽지 않았지만 강 에드와르드 바실리비치가 수고해주었다.

2) 까스껠렌 약속교회 개척과 이양

1992년 법인을 취득한 후 정관에 따라 지교회를 열 수 있었기에 매 주 토요일 마다 알마띠에서 약 30km 떨어져 있는 위성도시인 까스껠렌으로 다니며 예배를 드렸다. 처음에는 까스껠렌 중심에 있는 도서관을 빌려 예배를 드렸다. 어린 나이의 한나가 매주 아빠를 따라다니며 반주를 하였고 종성이가 따라다니며 예배를 드리기 위한 궂은일을 맡았다. 나의 선교의 많은 부분은 사실 아이들이 담당하였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알마띠 시온교회나 가스껠렌 시온교회도 아이들이 대부분이었고 아이들의 부모들이 함께 모이는 교회였다. 그 후 가스껠렌 시온교회는 도서관에서 학교 강당으로 옮겨 예배를 드렸다.

약 3년간을 그렇게 토요일 마다 예배를 드리다가 타 교단의 오(모) 선교사님이 새롭게 오셔서 사역을 잡지 못하고 있다가 그 교회를 자기에게 넘겨주면 안 되겠냐고 하여 그 선교사님에게로 넘겼다. 계속 토요일 예배를 드리는 것도 부담스러웠고 또 전적으로 일을 할 수 있는 선교사님이 생겼기에 넘기는 것이 합당하다고 생각하여 넘긴 것이다. 그 교회는 그 후 오(모) 선교사님이 현지 지도자에게로 넘기고 지금은 빅또르라는 현지 목사님이 사역하고 있는 자베뜨(약속)교회가 되어 사역을 활발하게 하고 있다. 더구나 빅또르 목사는 알마띠 신학 아카데미에서 공부를 마치고 계속 연결하여 사역하고 있다.

3) 선교사 위기와 이후에 받은 은혜

모든 선교지가 마찬가지이겠지만 선교사에게 가장 힘든 일 중에 하나는 비자를 받는 일이다. 사실 선교사가 선교지에 들어와 현지에 도움을 주는 측면도 있지만 갈등을 일으키는 부분도 있다. 현지인들이 가지고 있는 전통과 문화가 때로는 우리가 전하고자 하는 복음과 대치되는 부분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국가적 차원에서는 이들을 관리하기 위하여 조절하는 부분이 비자를 가지고 조정하는 것이다. 초창기 구소련 선교는 모두 조직이 중앙 집권적으로 되어 있었기에 각 나라의 비자를 받을 필요가 없었다. 러시아 비자를 받으면 구소련권 지역은 어디든 다닐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각 나라들이 독립한 후 얼마 있지 않아 각 나라는 따로 비자를 받게 하였고 그것은 선교사들에게는 힘든 과정 중의 하나가 되었다. 처음에는 조금 느슨하던 비자 과정이 점점 까다로워지기 시작하더니만 기간이 짧아지고 행정적으로 요구하는 서류들이 많아지며 거치는 과정들이 복잡하여 갔다. 3년쯤 지난 후 비자를 받으러 서류를 준비하여 오빌(비자를 관장하는 관청)을 갔더니만 서류를 보지도 아니하고 바닥에 던지며 있을 만큼 있었으니 이제 나가라는 것이었다.

많은 사람들 앞에서 수모를 당하며 서류를 집어 들고 집으로 와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울며 원망하며 기도를 하였다. 내가 왜 이런 수모를 당하여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사실 처음부터 선교사로 헌신하여 준비된 선교사가 아니었기에 이런 상황이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실컷 울고 나니 속이 좀 후련해지는 것 같아 그 다음 날 다시 서류를 들고 갔더니만 그 전날 있었던 일이 조금 미안하였는지 슬쩍 웃으며 비자 서류에 도장을 찍어 주었다. 그리고 조건을 적어 놓았는데 한 달 기한의 비자를 준다는 것이었다. 너무나 황당하여 말을 할 수 없었다.

그런데 그 때가 처음 국가적으로는 준 영주권제도(여권의 기한까지만 허락하는 제도)를 마련하여 시행하는 시기였다. 먼저 온 김(모) 선교사가 그것을 신청을 하였고 그 일을 우리 교회 사무장이었던 강 에드와르드 바실리비치가 준비하는 중이었다. 나도 곧바로 서류를 준비하여 신청을 하였고 그것은 참으로 어려운 과정이었지만 6개월이 지난 후 영주권을 받게 되었다. 비자가 안정이 되니 모든 사역들이 안정감을 찾을 수 있었다.

그때부터 교회는 사역을 더욱 확충할 수 있었다. 특히 어린이 사역과 장학금 사역이 활기를 띠어 많은 학생들에게 교회에서 장학금을 줄 수 있었고 그 학생들이 30년이 지난 지금도 교회에 일꾼으로 남아 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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