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에서 수류탄 사고로 오른손을 잃었지만 KTF 부사장 역임하고 마케팅계 거목이 된 조서환 장로의 영화같은 인생스토리(2)
군에서 수류탄 사고로 오른손을 잃었지만 KTF 부사장 역임하고 마케팅계 거목이 된 조서환 장로의 영화같은 인생스토리(2)
  • 엄무환 국장
  • 승인 2022.06.08 21: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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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장로의 인생에 또다시 몰아닥친 위기와 반전의 삶 그리고 역경의 인생을 바꾼 정신, 책임감과 도전의식

(지난 호에 이어) “하지만 가슴이 터질 것 같은 기쁨도 잠시, 정신을 차리고 나니 ‘이건 너무 이기적이다. 오른손잡이가 왼손 하나만 가지고 이 예쁜 사람을 행복하고 유복하게 해줄 수 없을 텐데. 진짜 사랑한다면 가난에 찌들어 살게 할 수 없다. 이제 그만 이 예쁜 사람을 보내줘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병실 침대에 누운 채로 “‘난 당신 사랑할 수 없어. 그러니 얼굴 봤으면 이걸로 정리하고 끝내자’라고 거짓말을 했다. 그러자 여자친구는 눈시울이 빨개지면서 울먹이는 목소리로 차분하게 이렇게 말하는 거다. ‘지금까지는 당신한테 내가 필요 없었는지 몰라요. 그런데 지금부터는 당신 곁에 내가 있어야 해요’ 그 말을 듣는 순간 좀전의 행복에 버금가는 커다란 행복감이 다시 밀려오기 시작했다”

이처럼 조서환 소위는 군에서 수류탄 사고로 오른손을 잃고 삶의 희망이 송두리째 날아갈 위기의 상황에서 10여 년 동안 사귀었던 여자친구로 인해 삶의 반전을 갖게 됐다.

조서환 장로가 인터뷰 중에 자신의 오른손 의수를 들어보여주었다
조서환 장로가 인터뷰 중에 자신의 오른손 의수를 들어보여 주었다

“당시 여자친구의 말을 듣고 어떻겠든 이 사람을 행복하게 해줘야겠다는 생각이 가슴 저 깊은 곳에서부터 태산만큼 큰 파도처럼 밀어닥쳤다. 그리고 그때부터 ‘내 안에 잠들어 있던 거인’이 깨어났다”.

그는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지금은 아내가 된 여자친구가 그때 직장을 그만두고 병원 옆에 방을 얻어 하루종일 저를 간호했다. 얼마나 지극정성이었는지, 나중에 들으니 제가 간호장교와 결혼했다는 소문이 날 정도였다”고 당시 상황을 회상하며 환한 얼굴로 말한다.

그렇게 여자친구의 간호를 받으며 조 장로는 병원 침실에서 대학 영문학과 편입시험 공부를 했다. 그리고 왼손으로 글쓰기 훈련을 시도했다. 그러나 링거 꽂은 손으로 펜을 잡고 글씨를 쓴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시험을 필기로 치르기 때문에 영어를 깡그리 암기하는 것보다 글 쓰는 일이 더 시급한 상황이었다.

“삐뚤삐뚤한 글을 보면서 이걸 언제 연습해서 능숙하게 쓰나 싶어 답답한 생각이 들었지만 그래도 이렇게 글을 쓸 수 있는 왼손이 있다는 사실에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릅니다”

조서환 장로의 인생에 또다시 몰아닥친 위기와 반전의 삶

그러나 산 넘어 산이라고 조 장로에게 또 한차례 태풍이 몰아닥치는 인생의 위기가 밀려왔다. 여자친구의 아버지 즉 장인어른이 병실로 찾아온 일이 그러했다.

“장인어른이 병실에 와서 보니 육군 소위가 수류탄 사고로 몸이 완전 산산조각이 나서 화상 입은 사람처럼 온몸에 하얀 붕대를 휘감고 있는 데다, 팔 역시 붕대로 칭칭 감아 침대에 묶인 채 움직이지도 못하고 있으니 어떤 심정이었겠어요. 한마디로 기가 막힌 일이지요. 더 기가 막힌 것은 당신의 스물둘 살짜리 예쁜 딸이 그런 놈을 간호하고 있다는 사실이 아니었을까 싶어요. 그래선지 눈 앞에 펼쳐진 상황에 눈이 뒤집힌 사람처럼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시고 여자친구에게 ‘가자’고 명령하신 후 끌다시피 데리고 나가셨어요. 순간 눈앞이 캄캄해지며 마치 하늘의 해달별이 떨어지는 듯한 인생의 위기감이 엄습함을 온몸으로 느꼈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도 여자친구로 인해 또다시 반전이 일어났다. “억지로 아버지를 따라 나간 여자친구가 차 안에서 아버지를 설득했어요. ‘아버지, 좋은 예는 아니지만 만일 엄마하고 아버지하고 행복하게 잘 지내시다가 아버지가 어쩌다 손을 다치셨다면 아버지는 엄마가 어떻게 했으면 좋으시겠어요? 엄마가 아버지를 버리고 떠난다면 아버지는 어떠시겠어요? 나는 그 사람 전부를 사랑했지 오른손을 사랑한 것이 아니에요. 그 사람은 정신이 건강한 사람이에요. 내가 지금까지 본 그 사람은 반드시 일어날 사람이에요’라고.”

하지만 조 장로의 장인어른은 딸의 말을 듣지 않았다. 오히려 딸이 끝까지 고집을 피우자 “내 딸을 할지, 나가서 그 녀석 아내를 할지‘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했다.

“여자친구가 아버지를 설득하다 지친 나머지 저를 선택해 집을 나왔어요” 그러면서 조 장로가 하는 말, “그때 제가 여자친구를 설득해서 돌려보내는 것이 옳았는지 모른다. 하지만 제 욕심이건 하나님께서 아내를 보내셨건 저는 돌려보내지 않았다. 기적처럼 사랑이 내게로 왔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때 확신이 생겼다. 사랑도 성공도 놓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그리고 다시 한번 마음으로 굳게 다짐했다. 여자친구를 세상에서 최고로 행복하게 만들어주겠다고.”

이 대목에서 잠시 숨 고르기를 한 조 장로는 “이것이 제 삶의 목표가 되었고, 지치지 않는 삶의 활력소가 되었다”며 아내 자랑을 조금도 주저치 않았다. “아내는 부모님 보살피는 일부터 집안 대소사에 이르기까지 항상 즐거운 마음으로 일을 다해냈다. 내가 보기에도 안타까울 정도였다. 뿐만 아니라 아내의 지혜로움 또한 대단하다. 다른 어떤 사람, 어느 누구에게서도 해답을 찾지 못하는 고민들을 아내에게 상의하고 의견을 구하면 기막힌 정답을 제공해준다. 아내가 시키는 대로 하면 틀림없다. 그런 의미에서 아내는 제 개인 컨설턴트이자 개인 멘토요 어드바이저다. 아내는 품성이 착하고 온화한 그야말로 타고난 모티베이터임에 틀림없다.”

조서환 장로 부부
조서환 장로 부부
특강을 하고 있는 조서환 장로
특강을 하고 있는 조서환 장로

조서환 장로의 역경의 인생을 바꾼 정신, 책임감과 도전의식

조 장로는 대학교 2학년 때 결혼했다. 그리고 그해에 딸을 낳았고 이듬해에 아들을 낳았다. 4학년이 되기 전 두 아이의 아빠가 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가장(家長)으로서 가정경제를 책임져야만 하는 입장이 되었다. 상황이 그러다보니 대학 졸업 후 교수가 되기 위해 유학을 가려고 계획했지만 꿈을 포기하고 취직을 위해 입사원서를 낼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됐다.

하지만 서류전형에 합격해도 면접에서 번번이 떨어졌다. “벌써 아내도 있고 자식도 둘이나 되는데 왜 그렇게 결혼을 일찍 했느냐”, “학생이 벌이도 없는데 어떻게 애들 둘에 부인까지 부양하느냐”는 등의 질문에 수류탄 사고로 오른손을 잃었다고 말하면 그 순간 면접이 중단됐다. 떨어진 것이다.

“그때만 해도 영문과를 졸업하면 10월 전에 80~90퍼센트가 거의 취직을 했고, 10~11월에 취직하는 사람들은 가장 늦은 축에 속했어요. 모두들 진로를 정했는데 나만 취직이 안돼서 속이 타들어가던 중, 11월에 애경에서 영문과에 한 사람 추천의뢰가 들어왔어요.”

면접에서 오른손이 의족이라는 사실 때문에 번번이 떨어졌기 때문에 우선은 면접이라도 제대로 보자는 생각에 손 다친 사실을 숨기고자 입사원서에 국가유공자라는 표시를 하지 않았고 국가유공자 증명서도 내지 않았다. 국가유공자임을 증명하면 입사시험에서 가산점수를 받지만 오른손이 의족임을 감추기 위해서였다. 다행히 서류전형에 통과되어 면접을 보게 됐다. 그러나 문제는 서류에 있는 가족난이었다. 가족난은 속일 수가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한 면접관이 “벌써 아내도 있고 자식도 둘이나 되는데 왜 그렇게 결혼을 일찍 했느냐”며 정곡을 찌르는 질문을 했다. 그래서 숨기려고 했던 진실을 이야기할 수밖에 없었다. 오른손이 의수(義手)라고 고백한 것이다.

“그때의 상황을 지금도 잊을 수 없어요. 제가 오른손이 의수라고 말하자마자 일제히 그 자리에 있던 면접관 예닐곱 명의 눈이 제 오른손으로 쏠린 장면을... 좌불안석이라고 그 시선이 너무 따가워 빨리 일어나고 싶은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상처받은 자존심과 굴욕감은 물론이고 이런 설움을 살아 있는 동안 계속 당하면서 사회의 오만과 편견 속에서 살아나갈 수 있을까 생각하니 끔찍하기까지 했다.”

면접이 중단됐다. 더 이상 아무도 말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자 상황을 종료시켜야겠다고 생각했는지 면접관 중 여성 한 분이 입을 열었다. 조 장로가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애경그룹의 장영신 회장이었다.

“아까 누가 도와준다고 했어요?” “형제들이 도와줍니다”

그러자 몇 가지 가족관계를 묻더니 “집에 가서 부모님 모시고 편하게 살아요”라고 말했다. 정중히 집에 가서 애나 보라는 말이었다.

“그렇게 면접이 끝나고 전철을 타러 갔다. 뚜벅뚜벅 전철역을 향해 걸어가는데 속된 말로 뚜껑이 열리기 시작했다. 집에서 기다리고 있을 아이들과 나를 사랑하는 아내가 떠오르는데 도저히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누군가 나에게 무책임한 나쁜 놈이라고 혼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죽으려면 미리 죽든지 왜 애들까지 낳아놓고 그 예쁜 사람을 고생시켜 놓고 죽느냐고 혼내는 것 같았다. 그냥 집으로 갈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마켓팅그룹 최고위과정 개강식
마켓팅그룹 최고위과정 개강식

가장으로서의 책임감이 그의 마음을 사로잡으면서 그로 하여금 현실의 벽을 뛰어넘어야겠다는 도전의식이 마음 깊은 곳에서 솟아난 것이다. 그러자 조 장로는 전철이 승강장에 들어오는 것을 보면서 전철 표를 철로 위에다 확 던져버리고 다시 면접을 봤던 애경 회사를 향해 뛰어갔다. 조 장로가 지금의 ㈜조서환 마케팅그룹 회장이라는 자리에 서게된 결정적인 순간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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