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에서 수류탄 사고로 오른손을 잃었지만 KTF 부사장 역임하고 마케팅계 거목이 된 조서환 장로의 영화같은 인생스토리(1)
군에서 수류탄 사고로 오른손을 잃었지만 KTF 부사장 역임하고 마케팅계 거목이 된 조서환 장로의 영화같은 인생스토리(1)
  • 엄무환 국장
  • 승인 2022.05.25 20: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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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서환 장로의 인생을 빚어낸 운명적 사건 스토리는 마치 잘 짜여진 각본대로 연출된 한 편의 영화를 보는 것 같다

군에서 수류탄 사고로 오른손을 잃고 머리에 24개의 파편이 박히는 등 죽음의 사선까지 갔었지만 재기하여 애경-영국 유니레버 마케팅 전략팀장과 미국 다이알사 마케팅 이사, 스위스 로슈사 마케팅 이사를 거쳐, 다시 애경산업으로 돌아가 마케팅 상무를 역임한 후 KTF 마케팅 전략 실장을 거쳐 부사장까지 지냈으며, 글로벌기업 세라젬그룹의 CEO를 역임하고 현재 대한민국에서 가장 공격적인 문무겸장 마케터로 ‘마케팅의 달인’, ‘마케팅의 살아 있는 전설’, ‘마케팅의 귀재’, ‘마케팅의 대가’ 등으로 불려질 만큼 마케팅계의 거목이 된 (주)조서환 마케팅그룹 대표 조서환 장로(서초성결교회).

조서환마케팅그룹이 지난 3월에 개강한 마케팅경영최고위과정 입학생들 단체기념사진
조서환마케팅그룹이 지난 3월에 개강한 마케팅경영최고위과정 입학생들 단체기념사진

직전 육군사관학교장인 김정수 장군(예비역 중장)의 소개로 서울 서초동에 소재한 더케이호텔 커피숍에서 만난 조 장로는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조금의 망설임 없이 마치 실타래 풀 듯 지나온 삶의 스토리를 풀어냈다.

“저는 충청남도 청양에서 태어났다. 어머니가 10명을 낳으셨는데 두 명이 죽고 8명 중에서 제가 다섯 번째다. 척박하게 살았지만 어렸을 때부터 성격이 외향적이어서 초등학교 때 반장을 하고 고등학교 땐 학생회장을 했다. 그리고 어려서부터 장군감이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또래들보다 키도 크고 덩치도 커서 그랬던 것 같다. 말이 씨앗이 되었는지 마음속에서 뭔지는 모르겠지만 ‘장군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조 장로는 “고등학교 때 학생회장으로 활동하다 보니 공부를 충실히 하지 못해 육군사관학교 시험에 떨어져 3사관학교에 들어갔고, 1978년에 소위로 임관했다”며 “3사관학교는 2년제여서 앞으로 군대 생활을 하려면 필히 4년제 대학을 나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주경야독했다. 뿐만 아니라 윗사람(상관)으로부터 인정을 받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새벽 일찍 나와 태권도 가르치고, 소위 때 커피 따라주면서 관계 맺기를 했다. 그러다보니 부대 안에서 ‘똑 소위’라는 별명까지 들었다. 하지만 그게 제 운명을 바꿨다”고 말한다.

아니 ‘똑 소위’라는 별명을 들을 만큼 맡은 업무를 확실하게 소화했던 그것이 오히려 운명을 바꾸게 했다니 이게 무슨 말인가 싶어 더욱 귀를 쫑긋했다.

“37사단에 근무했을 때 한O수 대대장님이 저를 엄청 신뢰하셨다. 그래서 대간첩작전훈련에 ROTC 16기 출신의 소위가 나가야 하는데 대대장님이 저더러 대신 나가라고 하셨다. 그런데 이 훈련에서 일어난 사건이 제 운명을 바꿨다. 수류탄 폭발사고가 그것이다. 수류탄을 살펴보니 옛날 꺼라 녹도 슬고, 핀도 잘 빠지지 않았다. 그래서 그냥 멀리 던지려고 오른손으로 수류탄을 집어 머리 위로 올리는 순간 수류탄이 터져버렸다. 이미 핀이 빠져 있었음을 몰랐던 거다. 만약 이때 수류탄이 가슴 부위에서 터졌다면 몸이 산산조각났을 것이다. 지금 생각해도 아찔하다”

그러나 오른손의 대동맥이 끊어져 엄청난 출혈이 났다. 이때의 상황에 대해 조 장로는 자신의 저서인 <모티베이터(동기를 부여하는 사람)>(위즈덤하우스, 2011년)라는 제목의 책에서 다음과 같이 밝혔다.

조서환 장로와 그의 저서들
조서환 장로와 그의 저서들

『나는 혈기 넘치던 스물세 살의 나이에 육군 소위 신분으로 부대에서 사고로 오른손을 잃었다. 내가 쓰러졌던 순간도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들 것이 있는 곳까지 가는데 환장할 지경이었다. 피가 “팍”하고 터져 나오면서, 머리는 깡통 찌그러지듯이 마구 오그라들고, 목이 지지직 타들어가는 것이 정말 죽을 것 같았다.

“물…물…물….” 정신없이 물을 찾자 누군가 내 입술에 제 침을 발라줬다. ‘더럽게 왜 침을 바르나’라고 생각하면서도 그것을 빨아먹었다. 차는 전속력으로 달려가고, 헬리콥터는 막 뜨려고 들썩들썩하는데, 거기서 하얀 천사들이 내려오는 모습까지 보고 의식을 잃었다.

사고 후 얼마나 지났을까. 의식이 깨어난 순간 누가 “눈 떴어요”라고 말하는 소리를 들었다. 눈을 딱 뜨니 아버지가 울면서 병실로 들어오시는데, 그냥 눈물을 뚝뚝 흘리는 것이 아니라 “아이고 이놈아, 으흐흐…으흐흐…” 이러시면서 반쯤 뒤집어지신 것 같았다.

“아버지, 군인 생활은 더 못하겠지만 저 살아 있지 않습니까” 나는 깨어나자마자 아버지의 눈물을 보고 아버지를 위로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대학에 들어가서 공부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꺼냈다. 그랬더니 아버지는 “내가 전 재산 다 팔아서라도 너 뒤 대줄테니까 제발 제대로 좀 살아다오”라고 말씀하셨다. 자살을 할까봐 걱정하신 것이다. 그래서 “반드시 멋지게 살 테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아버지”라고 아버지를 위로했다』

지난날을 회고하며 담담히 말하는 것 같았는데 휴지로 눈물을 훔쳤다. 이처럼 수류탄 폭발사고가 조 장로의 인생을 바꿨다. 장군이 되고 싶다는 마음의 열망으로 군 생활을 시작했지만 자신의 의도와 무관하게 더 이상 군 생활을 할 수 없도록 종지부를 찍게 한 것이다. 그런데 조 장로의 인생에 또 한 번의 운명적 사건이 생겼으니, 여자친구와의 결혼이 그것이다.

조서환 장로 부부
조서환 장로 부부

마지막 남은 용기를 짜내어 겨우 입을 열었다 ‘아직도…나…사랑해?’ 그랬더니...

“여자친구와는 초등학교 1학년 1반 때 만나 사귀었으니까 사귄 햇수로만 해도 10년의 세월이 훨씬 넘었어요. 그런데 여자친구는 4대째 모태신앙이었지만 전 그때까지만 해도 신앙생활을 전혀 안했어요. 더욱이 제가 오른손을 잃어버린 지체장애자가 되었잖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자친구가 저를 버리지 않고 저와 결혼했어요. 그래서 그때 제 마음에 깊은 곳에서부터 ‘어떻게든 이 사람을 행복하게 해줘야겠다’는 생각이 태산만큼 큰 파도처럼 밀어닥쳤습니다”

조 장로의 운명을 가른 수류탄 사고와 여자친구와의 결혼, 특히 조 장로는 그가 쓴 책에서 사고를 당한 후 여자친구와의 관계에 대한 자신의 솔직한 심정을 다음과 같이 서술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고 고통에도 어느 정도 익숙해지자 애인 생각이 났다. 머리며 팔에 붕대를 칭칭 감고 누워 있는 미라 같은 모습을 보여주려니 갑자기 겁이 덜컥 났다. 한 달 전 면회 왔을 때만 해도 오른손이 있었는데, 한 손이 없는 상태로 그녀를 어떻게 만날지 걱정이 되기 시작한 것이다. 사고 소식을 들으면 세 가지 중 하나일 것이다. 내 머릿속에는 세 가지의 시나리오가 그림처럼 그려졌다. 첫째, 나를 본 순간 놀라서 도망칠 것이다. 둘째, 나를 본 순간 이게 웬 날벼락이냐고 엉엉 울 것이다. 셋째, 하도 기가 막혀 그냥 멍하니 말문이 막힌 채 서 있을 것이다. 하지만 세 가지 중 어떤 것이 맞든지 내 가슴은 미어질 것이었다. 연락하자니 두렵고, 안 하자니 보고 싶고, 자존심이라면 자존심이고 사랑이라면 사랑인데, 나의 다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지금까지 살면서 유일하게 두려운 일이었다. 그러다가 내 가슴은 그녀가 보고 싶어서 거의 미칠 지경이 됐다. 결국 힘들게 연락해서 그녀가 왔다. 그때 나는 왼손에는 링거를 꽂고, 오른팔은 붕대로 칭칭 감아 공중에 매단 채 누워서 어머니가 떠먹여주는 밥을 먹고 있었다. 고향 뒷산에 흐드러지게 핀 산도라지 꽃 빛깔의 코트를 입은 하얀 얼굴의 그녀가 통합병원 문을 열고 들어서는데, 그 모습이 눈부시게 예뻤다. 그렇게 예쁜 그녀가 내 모습을 보자 아무말 못하고 그냥 우두커니 서 있는데 가슴이 미어졌다. 세 번째 시나리오가 맞은 것이다. 그녀는 나를 본 순간 멍해져서 우두커니 서 있기만 했다. 병실 안 분위기가 갑자기 어색해졌다. 어머니는 밥을 먹여주시다가 멈췄고, 병실에 있던 몇몇 사람들은 우리 두 사람을 위해 슬슬 자리를 피해줬다. 나는 속으로 간절히 아직도 나를 사랑하는지 묻고 싶었다. 그것도 정말 급히 묻고 싶었다. 하지만 자존심 때문에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자존심보다 더한 것은 두려움이었다. 만일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하면 어쩌나. 한 달 전에는 물론 나를 사랑한다고 했지만 지금은 상황이 전혀 달라졌다. 괜히 물어봤다가 아니라고 하면 어쩌나. 두려움이 엄습했다. 나는 아무 말도 못하고 그저 입을 굳게 다문 채 그녀를 쳐다보고만 있었다. 아니 어쩌면 그녀가 쉽게 대답하지 않도록 시간을 주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사람들이 나간 뒤 오랫동안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그 사람은 우두커니 서서 계속 날 바라보고 있었고, 나는 내 처지보다 그녀가 왜 그렇게 안타깝고 딱해 보이는지, 마음이 너무 아팠다. 날 사랑하는지 묻고 싶다가도 이 사람을 보내줘야 하는데 나랑 헤어지면 누가 사랑해줄까 싶기도 하고, 그 짧은 시간에 별별 생각이 다 머릿속을 오갔다. 그렇게 말없이 서로 바라만 보다가 한 30분쯤 지났을까 마지막 남은 용기를 짜내어 겨우 입을 열었다. “아직도…나…사랑해?” 그랬더니 그녀는 말없이 고개를 크게 두 번 끄덕였다.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이 얼마나 예쁜지 꼭 천사같았다. 세상을 다 얻어도 그보다 기쁠 것 같지 않았다. 기쁨과 행복으로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불행의 깊이만큼 행복을 느낀다고 하지만, 정말 그때 느꼈던 행복감은 말로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 모습은 지금도 앞으로도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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