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거인〉 - 주체적인 결정마저 사치인 인생에게
영화 〈거인〉 - 주체적인 결정마저 사치인 인생에게
  • 임명진 목사
  • 승인 2022.05.11 13: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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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분석학자 라깡에 의하면, 인간의 ‘주체(subject)’는 항상 결여 혹은 결핍된 상태에 있다. 이 결핍된 주체는 누군가(대타자, Other)에게 무언가를 요구한다. 그 부족한 부분을 채우기 위함이다. 그때 ‘대타자’는 그에게 무언가를 준다. 하지만 그 무언가는 완벽하게 채워지지 않는다. 채워지는 것 같지만 지속적으로 욕망이 발생한다. 더불어, 주체는 그 대타자를 만족시키기 위해 애쓴다. 그래야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채울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보자. 아이는 배고프면 엄마한테 울음으로 그것을 표현한다. ‘울음’이라는 언어를 통해 자신의 필요를 채워달라고 요구(demand)하는 것이다. 그러면 엄마는 배고픔을 채워주기 위해 젖이나 우유를 준다. 생리적 욕구(need)의 해결이다. 하지만 아이의 배고픔의 울음은 단지 우유나 젖을 먹는 것에서 그치지 않는다. 따스한 엄마의 품에서, 누군가가 자신을 안아주는 것을 통해서, 자기를 돌봐주는 사람의 관심과 사랑 속에서 우유나 젖을 먹기 원한다. 그걸 욕망(desire)이라고 한다. 아이는 엄마의 품 안에서 젖을 먹으며 아주 만족스러운 미소를 보여준다. 대타자인 엄마를 만족시키는 행위이다. 하지만 욕망은 결코 끝이 없고 만족이 없다. 엄마의 사랑은 단지 한번 받았다고 완전히 충족되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끊임없이 갈망한다.

김태용 감독의 영화 〈거인〉은 라깡식으로 표현하면, 엄청난 결여를 가진 영재(최우식)가 생존을 위해 자신의 대타자인 성당에서 운영하는 ‘이삭의 집’ 돌보는 사람들과의 관계성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결여가 많은 영재는 살아남아야 한다. 그런데 자신을 돌봐줄 사람은 이삭의 집을 운영하는 부부다. 그들에게 잘 보여야 쫓겨나지 않고 생활할 수 있다. 고등학교 나이가 되면 이삭의 집을 나오는 것이 불문율이지만, 막상 나오면 영재는 마땅히 갈 곳이 없다. 그래서 영재는 그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 자신이 정말 원하는 것이 아님에도 ‘신부님’이 되겠다고 선언한다. 그들이 기뻐하고 좋아할 만한 답변을 해주어야 자신이 사랑받고 살아남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영재의 이중적인 모습은 이에 기인한다. 이삭의 집과 성당 사람들 앞에서는 한없이 착하고 공손하고 예의 바른 학생이지만, 막상 학교(사회)에 가면 몰래 훔친 신발을 팔아 용돈을 챙긴다.

우리는 종종 자녀들에게 주체적인 생각과 태도로 살라는 말을 한다. 다른 누군가에 의해 행사된 주권이 아니라, 자신이 스스로 결정한 주권이 중요하다는 의미이다. 그런데 심한 결여를 가진 사람일수록 주체적인 결정은 힘들어진다. 자신에게 강한 영향력을 미치는 대타자(부모, 사회, 주위의 시선)에게 인정받아야 하기에, 자신이 진짜 원하는 것보다는 대타자가 원하는 것을 행하기 마련이다. 심한 결여를 가진 영재는 주체적인 결정을 시도하는 것조차 사치다. 그가 살아남는 방법은 오직 한 가지, 자신을 돌봐주는 이삭의 집과 성당 사람들이 원하는 행동을 통해 그들을 만족시키는 것뿐이다.

영재에게 희망은 없을까? 사회나 인간으로서의 ‘대타자’를 만족시키기 위한 삶은 결코 완전할 수 없다. 그 대타자 자체도 불완전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에겐 영원한 대타자 하나님이 계신다. 그분은 인간처럼 결여나 실수가 있는 분이 아니다. 무한한 사랑과 관심으로 우리를 지켜보신다. 더욱이 그분은 우리가 누군가를 만족시키는 삶을 원하지도 않는다. 다만 주어진 것을 누리며 즐겁게 살아가길 바랄 뿐이다. 영재가 진짜 성숙한 믿음 안에서 생활한다면, 그에게 영원한 욕망의 공급자인 하나님 안에서 조금 더 자유로울 수 있을 것이다. 하나님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수이기 때문이다. (요4:14)

임명진 목사<br>북악하늘교회 담임<br>​​​​​​​문화사역 전문기자<br>
임명진 목사
북악하늘교회 담임
본보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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