팝송 속의 그리스도교 신앙과 영성
팝송 속의 그리스도교 신앙과 영성
  • 박혁순 목사
  • 승인 2022.04.22 14: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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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_박혁순 목사 (조직신학, 한일장신대 객원교수)
엘비스 프레슬리 음반 재킷

한국전쟁과 근대화와 더불어 국내로 급속히 유입된 팝송(팝뮤직)은 이제 우리 대중들의 취미, 여가 생활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에 깊숙이 침투해 있다. 그리하여 교인들의 자제라 하더라도 그들이 아이팟을 귀에 꼽고 비속한 언어와 욕설을 가미한 힙합을 즐기고 따라 부르는 것을 막기란 쉽지 않다.

자칫 미국의 저급한 대중문화의 대표로 여길만한 팝송이겠지만, 사실 그 기원과 의미를 따지자면 그렇게 단순하게 비판하고 격하할 음악 장르가 아니다. 팝송의 바탕에는 면면히 흐르는 그리스도교 신앙, 영성, 세계관이 투영되어 있음도 간과할 수 없기 때문이다. 

팝송은 현재 영어권 음악의 한 장르로 굳어진 상태이지만 본래 순수음악에 상대되는 개념으로서 대중의 인기에 영합한 음악으로 일컬어졌다. 그러나 작금의 팝송에 예술성이나 심미성이 없다고 단정할 평론가는 거의 없다. 북미와 영국에 걸친 팝이라는 대중음악은 순수음악의 속성을 계속해서 흡수해오면서 예술성과 심미성을 얻어왔기 때문이다. 

팝음악은 기원상 크게 몇 가지 큰 줄기를 지닌다. 가령 흑인들의 한 서린 외침으로 시작된 블루스(Blues)가 미시시피 늪지대에서 태동하였고, 군항으로서 번화했던 남부 뉴올리언스에서는 재즈가 싹을 틔워 발전해왔다.

중남부 테네시주 내쉬빌에서는 전원지대 백인들에게 사랑받은 민요적인 대중음악, 즉 컨트리 뮤직(Country Music)이 발전하여 또 한 흐름을 형성했고 그와 함께 동부의 대도시 뉴욕에서는 그리니치 빌리지를 거점으로 포크 뮤직(Folk Music)이 사람들을 사로잡았다. 뉴욕의 맨해튼 브로드웨이 극장가에서는 뮤지컬(Musical)이 크게 발전했고 거기에 백인 취향의 빅 밴드 재즈가 크게 일어나 팝의 지류를 형성했다. 

그런데 이 모든 조류와 더불어 간과하지 말아야 할 중요한 사회문화적 환경이 있다. 그것은 18세기 중반부터 미국사회를 뒤흔든 개신교계의 ‘대각성 운동’이 그것이다.

개인의 회심과 성령 체험을 강조했던 개신교의 연이은 부흥회 열풍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것은 외적으로 보자면 야외 집회, 천막 집회, 대규모 홀 등을 이용한 열광적인 문화운동이기도 했다. 대중들은 이를 통해 유럽의 정적이고 소극적인 예배(미사) 참여 형식을 벗어나, 울고 웃고, 박수 치며 찬양하고, 떠들며 춤추는 새로운 교회문화를 형성하고 향유할 수 있었다.

특히 흑인 영가(Afro-American Spiritual)로 대표되는 아프리카 흑인의 감성적 음악과 영성이 더해져, 근엄한 청교도 전통이 독특한 집회문화로 변모했던 것이다. 

팝의 형성기에 교회음악의 영향이 크다는 사실을 간과하면 안 된다. 개인의 회개와 성령 체험을 돕는 고백조의 감수성 짙은 복음성가, 흥겹고 빠른 템포의 반주 등은 교회 울타리를 넘어 영미권 대중들과 함께 나눌 수 있었다.

아마도 그러한 형식은 유럽대륙으로부터 자유한 북미의 독특한 문화적 환경과 시대적 정서가 작용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아무튼 당대의 교회음악은 팝뮤직의 기본적 틀을 형성하는 데에 있어 일종의 음악적 클리셰(Cliché)로 기여했다.

그런데 필자는 지금 팝송이 교회 복음성사로부터 기원했다는 주장을 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의 형성에 있어서 엄청난 시대적 분위기와 정신으로 기여했던 엄연한 역사를 환기하고자 할 뿐이다. 결국 무엇이 먼저라고 할 것 없이, 북미의 교회음악과 대중음악은 전례 없이 밀접하게 상응하면서 발전했다고 보는 것이 온당할 것이다.

초기 팝 음악에는 기독교적 내용이 녹아 있었고, 대중 또한 이질감 없이 받아들이고 향유했던 특징이 있다. 그 가장 대표적인 곡이 미국의 국민가요라 할 수 있는 ‘어메이징 그레이스’(Amaging Grace)다. 이러한 분위기는 1960년대 초까지 가능했다.

다시 말해, 미국의 대중가요에 기독교적 소재나 고백을 섞더라도 대중들은 의례 반감 없이 크리스찬과 더불어 향유하곤 했던 것이다. 그러한 단적인 예는 짐 리브스(Jim Reeves)나 심지어 로큰롤의 황제 엘비스 프레슬리(Elvis Presley)의 노래에서 쉽게 찾아보게 된다. 

여기 짐 리스브의 유명곡 <나의 세계로 오세요>(Welcome To My World)의 가사를 보자. 이 노래는 1980년대에 우리나라 모 항공회사의 TV 광고에 쓰여서 제법 알려진 곡이다. 

“나의 세계로 오세요. / 어서 오지 않으시겠어요. / 나는 기적을 짐작한답니다. / 그것이 내 가슴속에 스며듭니다. / 걱정 버리고 당신을 위해 만들어 놓은 나의 세계로 오세요. / 두드리면 열릴 겁니다. / 찾으면 발견할 겁니다. / 원한다면 주어질 겁니다. / 나의 세계로 들어오는 열쇠가 이곳에서 기다리고 있어요. / 나의 두 팔을 펼쳐 당신을 기다리겠어요. / 나의 세계로 오세요.”

그리스도인이라면, 이 가사 중에 산상수훈 일부가 삽입되어 있고, 또 일종의 전도 메시지라는 점을 어렵지 않게 간파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식으로 20세기의 중반까지 팝송들이 ‘직접적으로’ 기독교 색채를 띤 것이 적지 않다. 2021년 한국 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의 입장에서는 사뭇 이채롭지 않을 수 없는 사례다.

엘비스 프레슬리는 어떠한가? 사뭇 많은 사람들이 그를 음탕한 로큰롤 스타로 오인하는 데 그치지만, 실제로 그의 삶은 그렇지 않았다. 그는 매우 감성적이고 신실한 그리스도인이었고, 검소하고 친절한 인품의 소유자이기도 했다. 엘비스가 취입하고 발매한 노래 중에는 다음처럼 다수의 곡들이 가스펠송이었다. 

우드스탁 페스티벌

그런데 베트남전이 한창 진행되고 프랑스에서 68혁명이 일어난 이듬해, 기성세대가 만들어 놓은 세계에 모순을 느끼던 수많은 젊은이들이 1969년 8월 미국 뉴욕시 교외의 우드스탁(Woodstock)에 운집해 야외에서 3일 이상 록(Rock) 음악을 즐긴 역사적 사건이 일어난다.

이것이 바로 히피 문화의 정점으로 평가되곤 하는 ‘우드스탁 페스티벌’이다. 내용을 보자면 우드스탁 페스티벌은 역사발전의 정체(停滯)와 불공평, 그리고 전쟁에 대항하는 젊은이들의 거대한 함성이기도 했다. 

일부 대중문화 평론가들과 교계 인사들은 이를 두고 반사회적인 저항문화일뿐만 아니라 당시 반기독교적 문화의 정점을 찍은 사건으로 해석하곤 한다. 이들의 구호 가운데에는 노골적인 반기독교적 것들도 있었으니 말이다.

그리하여 당대 정신적, 정치적, 경제적, 종교적 위기 상황에서 그들이 부르짖었던 가치가 자유, 사랑, 평화, 반전 등이었다는 점에 대해 깊이 동감하지 않으려는 비평가들이 적지 않다. 마약과 섹스에 취한 일탈적 젊은이들의 몽상이었다는 식으로 이해하려 드니 말이다.

물론 우드스탁 페스티벌이나 그 후에 펼쳐진 몇 가지 사건, 사고들은 교회의 입장에서 부정적으로 평가하기에 충분하다. 그런데 나는 록음악의 개화를 알린 이 현상에서 ‘데칼코마니’처럼 북미 기독교 음악 문화가 남긴 유산과 흔적들을 본다. 곧 그것은 야외 집회, 열광적 음악, 참석자들의 연대, 카리스마 넘치는 인도자, 부흥회와 컬트(cult)의 유사성 등등이다.

독자들은 하버드 대학교의 신학자 하비 콕스(Harvey Cox)의 <영성, 음악, 여성>(Fire from Heaven)이라는 저작을 참고하자면 이러한 점을 더욱 포괄적으로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혹자는 같은 어휘를 쓸지라도 그 동기나 지향점이 다르기 때문에, 아무리 그럴싸해도 60년대 이후의 팝의 언어를 교회의 언어로 수용하기 어렵다고 한다. 그러한 경계심에 대해 나 또한 충분히 이해한다. 그러나 자유, 사랑, 평화와 같은 숭고한 언어를 누가 왜 노천 집회에서 목놓아 외치고 부르게 만들었는지 종교적, 문화적 진단이 우선이 되어야 할 것이다. 

한국에서는 교회음악도 아닌 <You raise me up>과 같은 노래가 주일 낮예배 성가대에서 불려진다. 여기서 ‘You’가 ‘주’나 ‘하나님’이라는 중의적 의미로 수용되기 때문이다. 어째서 그게 가능할까? 2000년대에 이르기까지 팝송에는 그리스도교의 정신적 유산이 어느 정도 습합되어 있기 때문이다.

조금 더 꼽아보자면, 사랑, 자유, 평화뿐만이 아니라, 가족애와 고향에 대한 향수, 낙천적이고 긍정적인 인생관, 고난 속의 도전과 의지, 기품 있는 사랑, 인생의 열정 등등이다.

때문에 나는 개인적으로 프랭크 시나트라나 페리 코모의 ‘유행가’를 나직이 흥얼거릴 땐 까닭 모를 ‘은혜’를 느끼곤 한다. 옛 팝송을 듣고 자란 독자들은 아니 그러신가?

박혁순 교수<br>한일장신대 초빙교수<br>
박혁순 목사
한일장신대 객원교수
조직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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