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울어진 역사의 마당에서 중심을 잡아준 선지자”
“기울어진 역사의 마당에서 중심을 잡아준 선지자”
  • 류명 기자
  • 승인 2022.04.10 19: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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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김용복 목사, 하나님께 돌아가다
 김용복 목사(1938.11.1-2022-4.7)

우리나라 1세대 민중 신학자이자 1988년 발표된 ‘민족의 통일과 평화에 대한 한국기독교회 선언’(88선언)의 초안자 중 한 명인 김용복 목사가 7일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8일 오전 서울 신촌 세브란스 병원에 빈소가 마련된 가운데 ‘고 김용복 목사 에큐메니칼 장례위원회'도 꾸려졌는데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이홍정 총무, 한국기독교민주화운동 안재웅 이사장이 장례위원회 공동위원장을 맡았다.

이홍정 총무는 고 김 목사를 "평생 민중과 생명이란 화두를 붙들고 한반도가 겪은 고난의 세월을 믿음으로 승리한 분“으로 회고하며 “고 김 목사님은 모든 생명이 잔치를 벌이는 세상을 만들고자 꿈꾸고 실천하고, 믿음으로 정진했다”고 추모했다.

이어 “명예나 부를 탐하기보다 민중의 자리에서 시작해 그 자리로 돌아간, 실천의 삶을 사셧다”고 말을 이으며 “고 김 교수를 역사 속 선물로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그 분의 제자도를 따라 살겠다"고 약속했다.

안재웅 이사장은 “김 목사가 민중신학자였다”는 것을 강조하면서 ”민중신학에 상당한 영향을 준. 한국뿐만 아니라 아시아 에큐메니칼 운동의 방향성을 늘 전해줬던 선지자인 그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며 그를 기렸다.

9일 서울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서 열린 에큐메니칼위원회(위원장 이순창 목사/예장통합 부총회장)의  ‘고 김용복 목사 추모 및 위로 예배’에서 류영모 예장 통합 총회장은 “김용복 목사님은 기울어진 역사의 마당에서 중심을 잡아준 선지자셨다”고 추모하며 권력 앞에서도 민중이 역사의 주체임을 당당하게 외쳤던 고인을 회고했다.

류 총회장은 “60년대 70년대 80년대 지금까지 지내오면서 번영신학 성공신학 물질주의, 교회성장 지상주의, 개 교회주의에 빠져서 복음주의와 에큐메니칼이라는 두 기둥이 흔들리고 있었다”면서 “이 때 민중신학과 민중신학자들이 중심을 바로잡아 주었다”고 고인의 업적을 강조했다.

이어 성경본문을 언급하며 “열왕기서는 여러 왕들의 이야기인 것 같지만 사실은 열왕기상은 엘리야가 주인공이고 열왕기하는 엘리사가 주인공이다”고 정의내린 후, “엘리야는 하나님의 우주적인 통치를 증거했고 엘리사는 양극화시대에 가진 자의 약탈로부터 가난한 여인들을 돌보고 가련한 민중들을 돌보았던 민중신학자였다”라고 고인의 지난 삶을 빗대어 말씀을 전했다.

조사는 박성원 경안대학원대 총장이 전했다. 박 총장은 “고 김 박사님은 세계 신학자들을 다 모아도 비교할 수 없는 세계적 신학자이며 시대적인 신학자였다”는 것과 “천재적인 발상과 개념으로 민중신학, 생명신학 분야뿐만 아니라 사회학과 역사학으로 학문의 지평을 넓힌 분이였다”고 회고하며 그에 대한 존경을 표했다.

한일장신대 채은하 총장은 추모사를 통해 “김용복 총장님이 민중신학자라는 이유로 어느 이사님이 문제를 제기하자, 김용복 총장님은 “신학교육은 교회를 위한 봉사의 학문이다”라고 대답해 인선위원들을 만족시켰다“는 일화를 소개했다. 이어 ”김총장님은 당신의 민중신학을 ‘밑으로 내려가는 삶’에 초점을 맞추고, 지방의 조그마한 신학교에 부임하게 된 것을 하나님이 주신 소명으로 알고 순종하셨다“고 회고했다.

조성기 목사는 대표기도를 통해 깊은 신학세계와 세계 교회와 한국 교회에 남긴 높은 뜻을 기리며 늘 명쾌하며 웃음 넘치시던 김 목사님을 떠올렸다. 이날 예배는 위원장 이순창 목사의 인도로 진행됐으면 마침은 증경총회장 이성희 목사의 축도로 마쳤다.

고인은 1938년 전북 김제에서 태어났으며 1961년 연세대 철학과를 졸업한 뒤 미국 프린스턴신학교와 프린스턴신학대학원에서 신학박사학위를 받은 이후 1970년 귀국해 민중신학을 알리는 데 큰 기여를 했다.

한국기독교학회 회장과 한국민중신학회 회장을 역임했으며 아시아기독교협의회(CCA) 세계교회협의회(WCC) 상임연구원과 아시아태평양생명학연구원 이사장, 한국YMCA생명평화센터 고문 등을 역임했다.

예장통합에서는 새문안·용산교회 부목사, 산돌교회 담임목사, 장로회신학대 제3세계교회지도자 훈련원 부원장, 총회 21세기 교단발전 전문위원, 한일장신대 총장으로 봉사했다.

주요 저서로는 ‘한국 민중과 기독교’ ‘한국 민중의 사회전기’ 등이 있으며. 2018년에는 김 목사의 팔순을 축하하는 기념논문집 ‘민중과 생명’이 발간되기도 했다.

고인의 소천에 국제 기독교 기구에서도 많은 조전을 보내왔다.

세계선교협의회(CWM)은 “1977년 CWM 시작부터 우리의 비전과 사역에 지대한 공헌을 했고 2016년 제주에서 열린 총회에서 외치신 평화와 생명의 메아리를 오래도록 기억하겠다”면서 “CWM과 아시아 에큐메니컬 공동체는 꿈꾸는 소년을 떠나보냈다”고 그의 소천을 아쉬워했다.

세계개혁교회커뮤니언(WCRC)는 “주변인이 주체가 되는 WCRC의 선교적 관심은 김 목사님의 끼친 영향의 결과”라고 그를 기억하며 “그가 남긴 공헌이 계속 이어질 것”이라고 기원했다.

이하 설교 전문


<추모 예식 설교 전문> 류영모 목사

에큐메니칼계에 영적 거인이신 고 김용복 박사님 추모예식에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되어서 큰 두려움과 떨림이 있습니다.

우리 교단의 신학은 통전적인 신학 중심에 서는 신앙입니다.

복음주의와 에큐메니칼이라는 두 기둥 위에 굳건히 서 있는 교단입니다.

우리에게 복음을 전해준 모든 해외 교단들은 이 신앙의 동의를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60년대 70년대 80년대 지금까지 지내오면서 잘 살아보세 번영신학 성공신학 물질주의, 교회성장 지상주의, 개 교회주의에 빠져서 이 두 기둥은 흔들거리고 있었습니다.

우리 사회와 신학의 이 기둥이 기울어질 때에 중심을 잡아주는 사람들이 있어서 한국교회는 굳건한 말씀 위에 든든히 서서 지금까지 성장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 중심에 민중신학, 민중신학자들이 있었습니다. 아쉽게도 부족한 사람은 김용복 박사님과 함께 사역을 하거나 또 직접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없었습니다. 내 생애게 커다란 아쉬움이 될 것입니다. 저의 지나친 보수성을 어떻게 하면 극복할 수 있을까? 몸부림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1977년 대학원에서 공부를 할 때에 마침 서남동 교수님께서 강의를 오셨습니다. 1년동안 서남동 교수님의 연구실을 찾아다니면서 민중신학을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 짤막한 시간은 제가 중심에 서는 목회, 중심에 서는 사역을 할 수 있는 큰 축복된 시간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에 엘리사 선지자가 등장합니다.

열왕기서는 여러 왕들의 이야기인 것 같지만 사실은 열왕기상은 엘리야가 주인공이고 열왕기하는 엘리사가 주인공입니다. 엘리야가 하나님의 우주적인 통치를 증거했다고 한다면 엘리사는 양극화시대에 가진 자의 약탈로부터 가난한 여인들을 돌보고 가련한 민중들을 돌보았던 민중신학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 이스라엘 연합군이 모압과 한판 전쟁을 벌이다가 물을 만나지 못합니다. 그래서 왕들이 엘리사 선지자를 찾아가지요. 이 타락한 시대에 그래도 위기에 부딪혔을 때에 하나님의 사람을 찾아갈 수 있었던 시대, 하나님의 말씀을 찾아갈 수 있었던 시대라고 하는 데에 오늘보다는 그래도 낫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왕들이 근엄한 복장을 하고 선지가 앞에 들어섰을 때에 엘리사 선지자는 그들을 두려워할 만도한데 당당하기만 합니다. 왕들이 일개 촌부였던 나를 찾아왔구나 흥분할만도 한데 그런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들과의 정치적인 결탁을 하며 민원을 넣을 만도 한데 추호도 그런 마음이 없어 보입니다. 영적 품위를 잃지 않고 있습니다. 적어도 우리가 주의 종이라면 이런 자세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말합니다. 거문고 탈 자를 불러오소서. 그리고 거문고가 연주되기 전에 성경에는 기록되지 않았지만 아마 퉁퉁거리며 조율하는 시간이 있었을 것입니다. 선지자도 왕들도 군인들도 거기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거문고 조율하고 거문고가 연주되는 것을 아마 들었을 것입니다.

30:05

중심을 잡는 시간입니다. 표준음에 자신의 영성을 맞추는 시간이었을 것입니다.

주의 종, 선지자,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목사라고 한다면 비뚤어진 역사를 조율하고 바로 세우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역사의 마당이 기울어져 갈 때에 중심을 잡아주는 사람이 그 시대에 선지자입니다.

권력과 타협할 마음도 없고, 약자들을 얕잡아 볼 추호의 마음도 없어 보입니다.

고 김용복 박사님, 그분은 우리 시대에 선지자였습니다. 기울이진 역사 마당에 중심을 잡아주는 인물로 저는 그분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가진 자, 높은 자, 기득권층이 역사의 주인이 아니다. 역사의 주인은 오직 하나님이시다.

그렇다고 한다면 그 가장 밑바닥에 민중이, 역사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고 웅변하던 선지자였습니다. 그분은 이 성경적인 사상을 위해서 강단없이(?) 몸부림을 해왔고 또 글을 쓰고 함께 활동을 하셨습니다. 그분은 역사의 중심축을 붙들고 살다가 우리 곁을 떠나간 우리 시대의 선지자입니다.

그는 지금 죽어서도 선지자로 외치고 있습니다. 역사의 주인은 오직 하나님이시다. 이 시대에 민중들이 역사가 되는 그날을 위해서 우리가 함께 살아야 한다고 외치고 있습니다.

오늘 한국교회가 그리고 유족들이 오늘 우리 교단에 에큐메니칼 위원회가 오늘 큰 위로를 받는 다시 한번 중심의 축을 붙드는 귀한 장례기간 또 그분을 추모하고 기억하는 모든 사람들의 영적인 양식이 되리라고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조사: 김용복 박사님을 추모하며(경안대학원대학교 박성원 총장)

사랑하고 존경하는 김 박사님, 이렇게 부르면 금방이라도 환한 미소를 지으시면서 나타나실 것 같은데...오늘 우리가 이렇게 김 박사님 영정 앞에 모이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황망한데 남겨진 사모님이랑 가족들은 얼마나 허망하시겠습니까?

우리는 아직 김 박사님 떠나보낼 준비가 안 됐습니다. 세계 도처에서 김 박사님을 멘토로, 에큐메니칼 지도자로, 혁명적 신학자로, 그리고 정다운 에큐메니칼 친구로 존경해 왔던 수많은 동지들이 ‘큰 기둥을 잃어버린 듯한 허망함’에 잠겨있습니다. 돌아가시지 말고 다시 돌아오시면 안 될까요?

김 박사님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명실공히 세계적인 신학자이셨습니다. 저의 선친, 박석규 목사님은 생전에 “한국 신학자 다 모아봐라, 김용복 박사 하나 당하는가!” 하셨는데 김 박사님은 정말 ‘신학천재’였습니다. 세계 신학자 다 모아도 당신의 신학의 깊이와 넓이를 따라가기가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 ‘신학천재’를 잃어버리고 이제 우리는 누구에게 배우고 물어야 합니까? 당신의 그 지성의 샘물은 퍼내고 퍼내도 그 끝은 볼 수가 없었습니다. “민중의 사회전기”부터 최근 안동 우리학교에서 가졌던 심포지엄에서 인공지능시대에 필요한 개념으로 제시한 Cosmic Spiritual Communion까지 주옥같은 개념들로 시대의 신학적 부름을 정리해 주셨습니다.

남아공, 스텔렌보쉬(Stellenbosch)에서 러시아 모스크바(Moscow)까지, 아르헨티나 부에노스 아이레스(Buenos Aires)에서 북아일랜드 벨파스트(Belfast)까지 세계 곳곳에서 당신은 민중신학, 평화신학, 고백신앙, 생명신학 씨앗들을 뿌리셨습니다. 당신은 권력에 굴하지 않는 정의의 사도였고, 평화를 절대 포기하지 않는 평화 수호자였습니다.

그리고 만물의 생명을 지키는 생명복지사였습니다. 당신의 제국에 대한 비판은 검의 날처럼 예리했으나 민중을 향한 당신의 마음은 이사야 53장 <고난의 종>의 마음이었고 인품이셨습니다. 당신은 지고한 사상가임에도 당신의 마음은 너무 뜨거워 당신 옆에 있으면 차가운 우리의 마음까지 훈훈해지는 ‘정(情) 난로’였습니다.

세계교회는 당신을 그토록 귀하게 여겼는데 정작 우리 교단은 당신을 그렇게 귀하게 모시지 못했습니다. 그런데도 교단을 향한 당신의 사랑은 무조건적이었습니다. 우크라이나 민중들이 제국에 의해 생명을 도륙당하고 있는 지금 당신의 평화 메시지가 더더욱 아쉽습니다.

김 박사님, 아직도 이 땅이 죽음의 계곡인데 그 무거운 짐을 우리의 우둔하고 연약한 어깨에 맡기고 아프리카 사람들의 세계관, 이 생명의 세계, 우지무(Uzimu)에서 또 다른 생명 세계, 우지마(Uzima)로 옮기시네요. 그러나 생명의 시간을 만드신 하나님의 섭리앞에서 우리는 이제 김 박사님과 이 땅에서의 서러운 작별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김 박사님, 잘 가십시오. 가셔서 당신이 그토록 사랑하셨던 생명의 하나님, 정의의 하나님, 평화의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생명의 면류관, 정의의 면류관, 평화의 면류관을 받아쓰십시오. 당신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도 거기에서 만났을 때 받아쓸 수 있도록 준비해 주시지요.

이제 눈물도 없고 고통도 없고 죽음도 없는 거기에서 영원히 사시면서 우리에게 더 깊은 평화와 생명의 지혜를 보내 주시지요. 그래서 우리 모두 거기에서 다시 만났을 때 당신이 그렇게 좋아하시는 Fiesta dela Vida! ‘생명의 축제’를 여십시다. 김 박사님, 영원히 사랑하고 영원히 존경합니다.


추모사: 김용복 총장님을 추모하면서(한일장신대학교 총장 채은하)

한일장신대학교의 초대 총장이셨던 김용복 목사님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으셨고, 이제 더 이상 우리 곁에 계시지 못하게 되었다는 소식은 우리와 대학의 모든 구성원들과 그분과 함께 했던 동문들에게 뿐만 아니라 지역 교회들과 나아가서는 교단과 한국교회 전체에까지 안타까움과 깊은 슬픔을 주고 있습니다.

김용복 총장님은 1938년 전북 김제 출신으로 저희 지역의 기독교계에 정말 특별한 분이셨습니다. 1992년 故 강택현 학장님께서 대학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세계적인 목회자요 신학자를 모셔 와야 한다고 강력하게 추천하셔서 모시게 된 분이 바로 한일의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 내신 김용복 총장님이셨습니다.

김용복 총장님이 민중신학자라는 이유로 어느 이사님이 문제를 제기했는데, 김용복 총장님은 “신학교육은 교회를 위한 봉사의 학문이다”라고 대답해 인선위원들을 만족시켰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또 고향이 있는 지역에서 봉사하게 된 김총장님은 당신의 민중신학을 ‘밑으로 내려가는 삶’에 초점을 맞추고, 지방의 조그마한 신학교인 우리대학에 부임하게 된 것을 하나님이 주신 소명으로 알고 그 부르심에 믿음으로 순종하셨습니다.

김용복 총장님은 당시 신학교였던 우리대학을 4년제 정규대학으로 개편하여 승격하게 하셨고, 신학대학원과 사회복지대학원, 아시아태평양국제신학대학원 등 특수대학원을 설립하여 학문체계를 세우셨습니다. 또 전주시 중화산동의 좁은 교지에 있던 학교를 현재 위치로 이전하게 되자 그에 걸맞게 명실상부한 4년제 종합대학교로서의 면모를 갖추도록 대학발전의 기틀을 세우신 분입니다. 또한 해외에서 수학하던 우수 인재들을 교수로 영입하여 학생들의 교육수준을 높였고, 아시아의 우수한 학생들을 선발해 지역교회의 지원을 받아 장학금으로 공부하게 하는 등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교회와 신학 발전에도 기여하셨습니다.

사랑하고 존경하는 김용복 총장님! 총장님의 수고와 헌신으로 21세기 인재를 양성하는 세계적인 대학으로서의 비전을 갖고 한일의 청사진을 제시하신 덕분에 우리대학이 올해 100주년을 맞이하는 튼튼한 대학으로 우뚝 설 수 있었습니다. 힘든 시기를 겪으시며 교육의 내실화와 교육여건 확보에 온갖 노력을 다하신 결과, 우리대학은 작지만 알찬 대학으로 발전할 수 있었습니다. 대학 환경이 급속도로 변화하고 있지만, 총장님께서 꿈꾸셨던 한국교회와 사회를 위한 전문지도자 양성에 더욱 매진하여 총장님의 뜻이 이어지도록 하겠습니다.

저는 김용복 총장님께서 저를 한일로 오게 해주신 분으로서 평생 잊을 수 없는 분이십니다. 지난 6개월, 몇 번 개인적으로 찾아 뵌 적이 있는데 만날 때마다 여위어가시고 식사도 잘 못하시고 걸음이 불편해 보이는 모습을 보면서 “총장님, 건강하셔야 해요. 그래야 올해 저희 학교가 개교 100주년 기념행사 때 총장님을 모시고 학교의 지난 역사를 회상하고 미래를 꿈꾸며 나누어야 하잖아요!”라고 한 말이 마지막 말이 되어서 너무도 아쉽습니다.

우리대학과 세계교회의 발전을 위해 헌신하신 총장님께서 남기신 위대한 족적은 한일선지동산에 영원토록 살아 숨쉴 것입니다. 깊은 감사와 존경과 애도의 마음을 담아 김용복 총장님을 추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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