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항 속의 권력구조
어항 속의 권력구조
  • 이충범 교수
  • 승인 2022.03.31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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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충범 교수(협성대 신학과)

강과 하천의 생태를 좋아하는 탓에 물고기와 수변 생물들을 관찰, 채집, 사육하는 것은 늘 즐거운 일이다.

사육을 위해 우리 물고기들을 채집해 어항에 넣으면 어항 속은 아수라장이 된다. 처음 어항으로 들어온 녀석들은 낮선 환경 탓에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린다. 견디기 어려운 스트레스로 녀석들은 어항 속을 이리 뛰고 저리 뛰거나 구석으로 파고들며 몸부림을 친다.

또 어떤 녀석은 습성에 따라 바닥을 파헤쳐 땅속으로 숨어든다. 그리곤 잠시 어항 속은 마치 폭풍의 눈처럼 진공상태의 적막이 흐른다.

1, 2차 대전 후 서구의 모습이나 10·26 직 후 우리나라의 모습과 흡사하다. 몇 일후 어항 속은 서서히 술렁이기 시작한다. 깍두기 머리 덩치들이 전면에 등장하며 자기 영역을 구축하려고 어슬렁거린다. 그리곤 원하는 장소를 맘대로 차지한 후 영역을 침범하는 동료들에게 자신의 땅을 밟으면 어떻게 되는지 확실히 보여준다. 차지한 영역의 크기는 덩치에 비례한다.

어항의 중간부분을 차지하는 잡식성 덩치들과 달리 육식을 즐기는 녀석들은 바닥 은폐물 속에 매복하고 그 주변을 영토로 삼는다. 실수로 매복지 근처를 지나다간 목숨을 잃거나 호되게 당할 수 있다. 이렇게 어항 속은 권력의 크기와 지역에 따라 분할지배가 시작된다. 갑자기 제국주의시대의 중동, 아프리카 상황과 우리나라의 지역정치세력들이 머리를 스친다.

영토에 집착하지도 않고 다른 물고기들을 공격하지도 않는 착한 물고기들이 있다. 다수인 이들은 어항 속을 이리 저리 피해 다니며 자신들이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을 확인한다. 자칫 잘못해서 덩치 큰 녀석의 영토로 넘어가게 되면 호된 공격을 당하고 바닥에 엎드렸다간 잡아먹히기 일쑤이다. 이렇게 어항 속은 권력을 중심으로 정교한 계급이 성립된다. 그리고 물고기들은 자신의 계급과 영토에 충실하며 어항 속은 일견 안정과 평화를 찾은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곧 어항 속 안정감은 깨어질 위기를 맞는다. 잔잔한 평화는 첫 사료가 뿌려지는 순간 요동친다. 영토 없는 민중 물고기들은 생존을 위해 먹을 것에 목숨을 걸 수밖에 없다. 반면 영토에 집착하는 분할 지배자들은 먹이보다 영토를 지키는데 급급하다.

지역 지배자들은 어항 속으로 흩어지는 만나를 받아먹기 위해 자신의 영토를 넘나드는 다른 물고기들을 공격하느라 먹는 것에 한 눈 팔 여유가 없다. 그들은 생존의 위협을 무릅쓰고라도 기득권을 놓지 못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먹는데 목숨을 거는 영토 없고 약한 피지배 물고기들은 살이 오르고 몸집이 거대해지는 반면 광활한 영토를 쉬지 않고 순찰해야하는 덩치들일수록 피골이 상접해간다.

몸 크기만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영영부족으로 인한 면역성 저하로 질병에도 취약해진다. 덩치들은 자기 땅을 지키는데 몰입하느라 제 몸 망가지는 것을 개의치 않는 자살자들이다.

이충범 교수
협성대 신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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