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 갈등을 부추기는 사회적 양극화 속 한국교회의 역할
정치적 갈등을 부추기는 사회적 양극화 속 한국교회의 역할
  • 박성철 목사
  • 승인 2022.03.31 10: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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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_박성철 목사
기독교대선행동 정책위원장 박성철 목사
박성철 목사(정치신학연구소 교회와사회 대표)

0.73%로 당선인이 결정된 치열했던 제20대 대통령선거가 끝나고 인수위가 출범하였다. 이번 대선은 한국 사회의 분열과 갈등이 극단적으로 분출되었을 뿐 아니라 그 대립의 양상이 달라졌음을 분명하게 보여 주었다. 이를 의식해서인지 윤석열 당선인도 인수위 초기에는 ‘국민 통합’을 중요한 화두로 제시하였다. 하지만 이명박 전대통령 사면 요구에서 청와대 이전 요구에 이르기까지 지금까지 인수위에서 나온 이야기들은 국민 통합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비상식적인 주장들이 대부분이다. 이는 사회 문제에 대한 정확한 분석이 없이 정치적 미사여구로서 남용되는 국민 통합이 얼마나 무의미한 것인지를 잘 보여 준다.

‘정권심판론’을 통해 표출된 민심을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새 정권에 대한 기대가 그리 높지 않은 현실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그럼에도 새롭게 출범하는 정권이 5년 동안의 한국 사회에 대한 기본적인 청사진을 제시하는 것은 당연한 의무이다. 오히려 이를 외면한 채 자신들의 손에 쥐어진 권력을 과시하려는 욕망만이 표출되는 현실은 암담하기만 하다. 더구나 당선인 본인마저 비상식적인 주장을 남발하고 있기에 풍수지리설에서 전쟁준비설까지 온갖 추측들이 난무한다. 최근에는 새로운 정권 탄생의 인큐베이터 역할을 했던 보수 세력마저 당선인의 무모함을 비판하고 있다. ‘이러다 새 정권이 출범하자마자 레임덕에 시달리지 않을까?’라는 걱정이 든다. 21세기 한국 사회에서 왜 이처럼 몰상식한 일들이 발생하고 있는 것일까? 이 모든 행태들은 결국 당선인 본인과 새로운 정권의 핵심 관계자들이 한국 사회의 위기를 감지하지 못한 채 자신들의 이해관계와 기득권에 집착하고 있기에 나타나는 것이다.

2022년 한국 사회는 사회적 양극화의 위기에 직면해 있다. 한국 사회에서 양극화의 문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1997년 IMF 외환위기 이후 본격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했지만 한국 사회는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첫 번째 기회를 놓쳤다. 자본주의 체제는 경제적 불평등 자체를 제거할 수 없다. 하지만 1960년 산업화 이후 고도 경제 성장으로 인해 한국 사회에서 다양한 사회적 문제가 발생하였지만 사회적 양극화의 문제나 경제적 불평등으로 인한 갈등과 대립은 수면 아래 머물러 있었다. 그 이유는 87년 체제 이전까지는 군사 독재의 억압 때문이었고 그 이후에는 ‘중산층’의 증가 때문이었다. 건강한 시민의식에 기반한 중산층의 성장은 우파 포플리즘(Right-wing populism)을 견제하고 빈곤층에 대한 사회적 지원을 확대하도록 계층들 사이에서 가교의 역할을 함으로써 사회적 갈등과 대립을 약화시킨다. 하지만 군사독재 체제 내에서 재벌 중심의 경제 성장 정책에 안주하고 있었던 한국 경제는 신자유주의의 도전 앞에 무력했고 IMF 체제로 인해 중산층이 무너지는 현실을 막아내지 못하였다.

물론 필자는 지난 시간 동안 한국 사회가 많은 발전을 거듭해 왔다는 것을 부인하지 않는다. 한국은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 설립 이래 최초로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 지위를 인정받은 나라가 되었고 국제 사회가 무시할 수 없는 소프트 파워(soft power)를 획득하였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한국 사회는 양극화의 심화로 인해 다양한 문제에 직면해 있고 제20대 대선과 함께 중요한 갈등과 대립의 요소로 나타났다.

경제적 불평등으로 인한 피해는 청년 세대가 가장 직접적으로 경험하고 있지만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노동시장 양극화와 고용의 질의 저하는 일부 부유층을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사회 구성원들에게 고통을 안겨 준다. 또한 대기업과 중소기업 사이의 노동생산성 격차는 확대되고 있으며, 고임금부문의 고용 비중은 낮아지고 저임금-저생산 부문의 고용 비중은 증가하고 있다. 이로 인해 정규직 노동자들 사이의 임금 격차도 크게 벌어지고 있다. 게다가 3년 차로 접어든 코로나 팬데믹은 경제적 불평등으로 인한 사회적 양극화를 촉진하였다. 어느 사회에서든지 경제적 불평등은 사회, 문화 등 다양한 분야로 확대되어 사회 구성원들 간의 갈등과 대립을 양산하고 삶의 질을 떨어뜨린다.

지난 3월 18일, 유엔 산하 자문 기구인 지속가능발전해법네트워크(SDSN)는 ‘2022 세계행복보고서’를 공개했는데, 한국 사회의 행복지수는 조사대상국 146개국 중 59위였다. 이외에도 한국 사회는 OECD 국가 중 자살률, 노인 자살률, 출생률, 아동 우울증, 노동시간, 산업재해 사망률 등에서 세계 1위를 차지하고 있다. 물론 한국 사회의 사회적 양극화는 직업구조나 임금 소득의 격차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독특한 특성을 갖고 있다. 왜냐하면 왜곡된 시장구조에서 부동산과 같은 자산소득의 격차가 큰 역할을 감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제20대 대선의 승패를 좌우했다고 평가받는 부동산 문제는 사회적 양극화를 외적으로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이다. 상위 1%가 55%를, 상위 10%가 96.4%의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는 현실은 한국 사회에서 부동산이 경제적 불평등의 주원인임을 보여 준다. 이번 대선에서 부동산 가격에 따라 지지 후보가 명확하게 갈렸던 서울의 경우, 서울시 인구의 1% 정도가 서울시 전체 면적의 3분의 2를 소유하고 있다. 이처럼 극소수에게 토지 소유가 집중되어 있는 현상은 무주택자들의 주거 관련 비용을 증가시켜 사회적 양극화를 가중시킨다. 그로 인해 피해를 입게 되는 대상의 대부분은 자신의 힘으로 부동산을 소유할 수 없는 청년 세대와 빈곤층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부동산 정책에 대한 불만은 곧 사회적 양극화에 대한 불만이다. 부동산 문제가 이번 대선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것은 사회적 양극화로 인한 문제가 지역, 이념, 젠더, 세대, 종교, 학력 등으로 인한 문제보다 한국 사회의 구성원들에게 더 직접적으로 와 닿았고 정치적 결정에 더 많은 영향을 미쳤다는 것을 의미한다. 소위 ‘87년 체제’의 주역들을 비롯하여 성숙한 민주주의를 꿈꾸는 이들이 사회적 양극화의 문제를 외면해서는 안 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사회적 양극화의 문제는 경제적 불평등에서 시작되지만 그 부작용은 단순히 경제적 영역으로만 한정되지 않는다. 어느 사회든지 경제적 불평등은 민주주의의 발전을 가로막는다. 왜냐하면 2006년 크리스 헤지스(Chris Hedges)가 『지상의 위험한 천국』(American Fascists: The Christian Right and the War on America)에서 밝힌 바와 같이, 막대한 부를 가진 이들이 생존의 위험을 느끼는 이들과 자신의 부를 나누기보다 그들을 억압함으로써 더 많은 이익을 얻어 내려고 할 때 사회 구성원들은 권위주의적이며 전제주의에 기반한 정치 체제와 정치인에게 매력을 느끼기 때문이다(261쪽).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에 대한 절대적 추종으로 2021년 미국 국회의사당을 점거했던 이들은 한 때 미국 경제의 중심축으로 추앙받다가 신자유주의의 등장과 함께 21세기 들어 주변부로 밀려난 중남부 남성 노동자 계층이었다. 이들은 트럼프 집권 기간 중 미국 사회에서 발생하였던 고립주의, 미국식 민족주의(America First), 남성우월주의, 반지성주의, 호모포비아(Homophobia) 등과 같은 다양한 정치적 퇴행을 가장 적극적으로 지지하였다. 이처럼 정치적 퇴행과 사회적 양극화는 상호 밀접한 상관관계를 가지고 있다.

이는 한국 사회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IMF 체제의 등장과 함께 소득, 자산 등 경제적 불평등은 심화되었고 중산층의 지위를 유지하거나 하위 계급이 중산층으로 계급 지위를 상승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불가능하게 되었다. 특히 생존의 위협을 받는 빈곤층의 증가는 심각한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었다. 하지만 신자유주의 체제는 세계 금융 자본의 이익을 위해 경제적 불평등로 인한 사회적 갈등과 대립을 정당화하였다. 필요충분조건은 아니라 할지라도 그렇게 엄폐되고 무시되었던 사회적 양극화의 심화가 박근혜 정권의 국정농단(國政壟斷) 사건과 같은 민주주의의 퇴행에 공동의 책임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물론 한국 사회는 촛불혁명을 통해 이를 극복하려 하였다. 하지만 촛불혁명의 결과로 들어선 문재인 정권은 사회적 양극화의 해소와 성숙한 민주주의를 위한 사회 개혁이라는 시대적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 두 번째 기회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였다. 필자는 문재인 정권 하에서 진행되었던 다양한 개혁 정책들의 의미를 폄하하거나 의도적으로 축소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과연 그 정책들이 얼마만큼 효과적었고 실질적인 결과로 이어졌는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의 여지가 있다. 무엇보다 경제적 양극화의 해소라는 측면에서 부동산 정책의 실패와 민심 이반은 개혁 정책들에 소극적이었던 문재인 정권의 한계를 보여 주었다. 그 결과 한국 사회는 중산층의 붕괴라는 현실에 직면하였고 이는 혐오와 차별의 정치에 기반한 권위주의적 정치 지도자의 당선과 극단적인 사회적 갈등과 대립으로 나타났다.

필자는 한국 사회의 변화를 위해 다음의 두 가지 사실을 다시금 강조하고 싶다. 첫째, 촛불혁명 5년 만에 ‘정권심판론’을 내세웠던 세력이 정권을 잡은 현실과 현재의 심각한 사회적 갈등과 대립이 사회적 양극화를 해소하지 못한 결과라는 것이다. 둘째, 사회적 양극화로 인해 혐오와 차별의 정치가 자리 잡기 좋은 사회적 토양이 자리 잡았다는 것이다. 이 두 가지 문제는 특정 정치인에 대한 지지율이나 대선 판국에 대한 정치공학적 분석보다 더 중요하다. 왜냐하면 한국 사회의 구성원들이 이 문제들을 외면한다면 민주주의의 퇴행은 명약관화하기 때문이다.

제20대 대선을 통해 드러난 한국 사회의 가슴 아픈 현실은 그리스도인에게 세상의 소금과 빛(마 5:13-14)의 역할을 요구한다. 민주주의의 퇴행으로 인한 사회적 갈등과 대립의 심화는 시민들의 피로감을 높이고 이는 정치적 무관심을 부추겨 권위적이고 시대착오적인 인물이 더욱 쉽게 권력을 잡을 수 있는 사회적 환경을 만든다. 20세기 독일의 아돌프 히틀러(Adolf Hilter)나 21세기 미국의 트럼프는 그 대표적인 경우이다. 사회적 양극화를 해소하지 못한 채 지속적인 갈등을 양산하는 사회는 결코 건강한 사회라 말할 수 없다. 이러한 관점에서 현재의 한국 사회가 결코 건강하지 않다. 그리스도인은 사회가 병들어 원래의 기능을 감당하지 못하고 어둠 속에 방향을 상실했을 때 대안을 제시해 주어야 하며, 이를 위해서 우리 앞의 왜곡된 현실을 분명하게 파악해야 한다.

양극화의 해소는 막대한 부의 독점을 막고 사회적 자본을 평등하게 분배할 수 있는 정책과 제도를 필요로 한다. 빈곤층이 계속해서 빈곤층으로 남도록 강요하고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에 대한 혐오와 차별이 특정 집단의 이익으로 전환되는 왜곡된 사회 체제는 사회적 양극화를 심화시킬 뿐이다. 이러한 고려 없이 단순히 정치적 선동이나 주장으로서 국민 통합을 내세울 때 오히려 억압적 사회 분위기가 형성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이러한 정책적 변화는 다양한 사회적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현실을 뚫고 나가야 한다. 한국교회가 정말로 특정 종교 지도자의 추종 집단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전파하는 공동체라면 민주주의의 퇴행과 사회적 문제 앞에서 양극화의 해소가 시대적 사명임을 분명하게 인식하고 세속적 이해관계 속에서 발생하는 집단과 계층 사이의 갈등과 대립을 중재하기 위해 나서야 한다. 또한 사회적 양극화를 자신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남용하려는 이들을 향해 비판적인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한다.

오늘날 한국교회가 왜 시민사회 영역으로부터 비판받고 있는가? 교회가 현실의 문제를 외면한 채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양극화를 심화하는 특정 정치 세력의 행위를 종교적으로 정당화해 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1973년 헬무트 골비처가 『자본주의 혁명』(Die kapitalistische Revolution)에서 강조한 것처럼 “바다들이 죽으면, 특권을 누리는 자들의 섬도 더 이상 존재할 수 없게” 된다(10쪽).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따라 살아가야하는 그리스도인이 한국 사회를 몰락으로 이끌 수 있는 양극화의 문제 앞에서 침묵한다면 한국교회는 머지않아 존재의 의미를 상실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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