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문화 바로서야 세상이 바뀐다(4)
교회문화 바로서야 세상이 바뀐다(4)
  • 김남응 기자
  • 승인 2018.05.11 08: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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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침 거듭하던 교회문화... 왜 사회와 담 쌓았나

1백30여 년 전 선교사에 의해 복음이 들어오면서 이 땅에 교회가 세워졌다. 그리고는 그동안 보지도 못했고, 생각하지도 못했던 많은 문물들이 이들 교회를 통해 퍼져나갔다. 그렇게 시작된 이른바 ‘교회문화’는 그 정체성도 확실히 하지 못한 채 교회의 부침과 함께 이 땅에서 자리매김할 기회조차 잃어가고 있다. 이같은 현실을 돌아보고 대안을 마련하기 위해 그동안 교회문화에 관심을 기울여 온 교계 인사들에게 교회문화에 대해 물었다.

첫째는 먼저, 교회문화란 무엇인가를 물어 교회문화에 대한 개념부터 정리했다. 두 번째로는 중세의 경우 교회문화가 세상문화를 압도했으며, 우리나라도 선교초기 교회를 통해 서양문화가 들어오는 등 교회가 세상의 문화를 앞서갔는데 요즘 들어 뒤처지는 이유가 무엇인 지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세 번째로는 교회가 빠르게 변하는 세상문화를 어떻게, 어떤 기준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지에 대해 물었다. 마지막 네 번째로는 청빈, 긍휼 등 교회 내 좋은 문화들이 왜 사라져가고 있는 지를 묻고 그에 대한 대책은 무엇인 지를 생각해 보았다.<편집자 주>

 

"세대가 약화되면 가르치는 것이 교회 본분"

곽재욱 목사(동막교회)

1)  ‘기독교 문화’의 논의 전에 ‘기독교와 문화’의 관계를 먼저 정의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리처드 니이버를 따라서 그것은 우선적으로 상반적으로 보이는 두 가지 태도와 질문으로부터 비롯된다고 본다. 첫째는, ‘기독교는 문화가 아니다. 아닐 뿐만 아니라 문화는 기독교신앙에 해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기독교는 문화를 배격해야 한다’는 태도이다. 오늘에 와서는 그런 태도를 가진 사람들이 거의 없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신앙의 본질과 순수성이라는 측면에서 깊이 생각할 가치가 있다고 본다.

다른 하나는 그와는 반대적 관점인데, ‘기독교 자체가 문화다. 문화와 구분되는 기독교라고 하는 것이 별도로 있는 것이 아니다. 다만 우리는 이 세상이라고 하는 문화의 바다에서 다른 여러 문화들 가운데 기독교 문화를 이야기할 수 있을 뿐’이라는 생각이다. 문화에 대한 광의적 정의를 생각해본다면 기독교도 문화의 범주를 벗어나는 것이라고 볼 수는 없다. 그러므로 기독교도 문화라고 하는 보편적 현상 속에 있는 특수한 기독교 문화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2)  중세시대 기독교가 세상을 선도했다고 하는 것은 무비판적 생각이다. 중세는 기독교가 세상권세와 각축하는 가운데 문화를 통치한 때이다. 때로는 문화를 억압하기도 했다. 우리나라 초창기 기독교 문화의 우월성의 본질은 기독교의 본질이 아니었고 서구의 기술, 정신 문화의 우월이었다고 본다. 서구의 인권, 정신, 기술의 많은 것들이 우리를 압도했다. 지금은 그렇게 압도할 만한 것이 많이 남아있지 않으니, 최근의 현실을 패배주의적으로만 보아서는 안 될 것 같다.

3)  지금의 청년들도 불과 이십년이 지나면 다음의 세대를 이해 못하고 고민할 것이다. 각 세대는 각 세대의 문화가 있으니까 전 세대는 새롭게 오는 문화에 대해서 저항감을 느낄 수 밖에 없다. 문화의 수용과 거부의 스트러글은 언제나 있기 마련이고, 지금 사람들이 그전보다 오래 살아서 문화의 변이를 그만큰 더 경험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너무 저항에 민감하지 말고 나가면 된다.

4)  청빈, 긍휼, 근면 같은 것들은 우리가 흔히 문화라고 하는 것들과는 조금은 구분된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문화는 그런 것들보다는 힙합이나 머리 염색 등을 의미하고, 청빈, 긍휼 같은 것들은 가치들, 그것도 신앙의 기본가치들이라고 생각한다. 세태가 아무리 바뀌어도 포기하지 말아야하고, 세대의 문화에 의하여 그것들이 약화되었다면 가르쳐야 한다. 그것이 교회의 존재이유 중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교회는 세상과 대화하는 광장으로 나가야"

조주희 목사(성암교회)

1)  문화라는 개념을 정의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왜냐하면 문화라는 용어를 광범위하게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고 이것에 대한 거부감 또한 거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전적인 정의를 살펴보면 인간에게 존재하는 생각과 행동 방식 중에서 사회 구성원들로부터 배우고 전달받은 모든 것들 전반에 걸쳐서 이 용어를 사용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의식주, 언어, 풍습, 종교, 학문, 예술, 제도 등을 모두 포함하는 개념으로 사용한다. 그런 면에서 기독교 문화는 기독교가 존재하면서 만들어진 물질적이고도 정신적인 과정의 모든 산물들을 가리킨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교회의 존재 때문에 발생되는 삶에 영향을 미치는 거의 모든 현상들이라고 정의하면 어떨까 싶다.

2)  과거의 한국 교회가 서구 문화를 받아들이는 창구 역할을 했다는 것을 부인할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러나 그것이 문화를 선도하는 현상이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생각한다. 서양 근대 문화에 대해 정치적으로 거부했던 한국 사회(조선 사회)의 특성 때문에 교회를 통해서 서구 문명과 문화가 소개될 때 그 영향이 적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이제는 문화란 것이 어떤 특별한 생산 주체를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가 문화 생산의 주체가 될 수 있는 상황이어서 문화 인식 자체가 달라진 사회가 되었다.

뿐만 아니라 한국 교회는 어떤 면에서 앞선 문화를 가지고 있다는 의식 때문에 교회 공동체나 각 그리스도인이 교회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해 왔다. 그런 현상들이 한국 교회로 하여금 사회적 변화에 대하여 둔감하게 만들었고 이것은 한국 교회로 하여금 일반 사회와 담을 쌓게 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었다고 본다,

3)  이제는 교회가 세상과 대화하는 광장의 자리에 나아가야 한다. 교회 공동체 안에서 또한 활발한 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사회의 전문가들이 교회 안에 들어와서 이야기할 수 있는 공간을 교회가 제공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시급한 일이다. 그리스도인이 한국 사회 안에서 살아가는 상황에서 무기력함을 느끼게 만들고 교회 문화가 뒤쳐져 있다는 느낌이 들게 되는 직접적인 원인은 교회가 사회와 이야기 자체를 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4)  교회가 좋은 문화들을 잘 보전하지 못한 이유는 교회의 세속화와 관련이 있다고 생각한다. 교회 세속화는 다르게 다루어야 할 다른 주제인 것은 분명하지만 교회 세속화 과정을 통해서 교회에 일반 사회의 좋지 못한 문화도 들어왔다고 본다. 이것은 한국 교회가 사회와의 만남을 적극적으로 가지려 할 때 한 가지 전제가 있어야 함을 알려 준다. 그것은 한국 교회의 문화적 정체성을 다시 세워야 하는 것이다. 한국 교회에 하나님께서 주신 자원은 교회 안팎으로 풍성하다. 이런 자원들을 발견하고 개발하고 자원들이 유기체적으로 움직일 수 있도록 돕는 지도력이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예배는 예배다워야 CCM일반화 안타까워"

유재무 목사(예장뉴스 발행인)

1)  지금 까지 기독교 문화란 아무래도 서구에서 전래가 되어서 인지 서구와 동일시 되어왔다. 그러나 문물의 발달이나 세계화는 기독교만의 문화라는 것 보다 기독교가 들어간 나라에서의 독특한 문화가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우리문화에 대한 자긍심과 발굴로 인하여 기독교문화에 대한 비판적인 성찰로 인하여 한국적인 기독교문화에 대하여 관심을 갖고 연구하는 추세다.

2)  초기 기독교가 공헌한 문화가운데 민주주의에 대한 정착에 주목하고 싶다. 담임목사나 장로 등 항존 직원을 선거로 뽑고 각종 회의 운영이나 발언, 투표, 회장 선거 등도 중요한 문화의 한 범주로 넣어야 한다고 본다. 그런데 지금 어떻게 되었나? 지금의 교회는 개인의 자율과 주체성을 보장하는 ‘민주’보다는 성직자에 대한 맹종과 순종이 가미된 형식화된 제도로 전락했다. 이것은 아무래도 하나님과 하나님의 일을 하는 성직자를 동일시하는 잘못된 신학과 설교에 기인한 것으로 본다.

3)  교회에서 세속적인 음악에 빗된 CCM 음악이 너무 일반화 된 것에 대해서 안타깝게 생각한다. 흥을 돋우는 강한 비트와 전자음악, 드럼 등은 제한적으로 사용돼야 한다고 본다. 예배는 예배답게, 공부는 공부답게, 그리고 이벤트나 음악예배는 특성화하거나 따로 하고 싶은 분들끼리 하도록 하는 것이 좋다. 최근에는 복음주의 학생집회에서 EDM에 강한 조명이 등장해서 구설수가 된 적도 있다. 그런 면에서 진보적인 교회들이 국악풍의 찬양이나 판소리 예수전, 전통악기 등을 도입하는 시도는 하나의 좋은 모델이다.

4)  교회가 세속의 성장주의, 성공주의 논리를 따른 결과라고 본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성직자는 청빈과 사랑, 헌신과 자비로움이 대명사였다. 문제는 옛날에는 그게 되었는데 지금은 어렵다는 것이다. 고령화와 저출산으로 교회로 오는 이들이 줄어들고 있다. 그래서 이제는 ‘적정목회’ 즉 자신에게 맞는 목회가 필요하다고 본다. 그래서 나온 게 최근의 작은 교회운동이나 마을목회이다. 마을은 사람을 차별하지 않고 성장시며 회복시키는 역할을 한다. 교회가 그런 옛 마을의 정서와 마음을 유지시키고 이어가는 장소가 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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