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유목회’라는 강력한 무기를 지닌 김의식 목사(1)… 그는 어떻게 치유목회자가 되었을까
‘치유목회’라는 강력한 무기를 지닌 김의식 목사(1)… 그는 어떻게 치유목회자가 되었을까
  • 엄무환 국장
  • 승인 2022.02.12 08: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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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의대에 응시했으나 두 번 낙방하고 한양공대에 들어갔다
하지만 그때부터 인생의 방황이 시작됐으니...
1학년 말 몸에 이상이 생겨 이러다가 죽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전남 나주시 영산동 262번지에서 태어난 김의식 목사, 친척들이 대부분 의사와 약사, 간호사, 교수, 건축사 등이어서 금수저 출신으로 분류되는 김의식 목사. 부친 또한 약사로 당시 집에서 일하는 직원만 10여 명에 이를 정도로 나주군에서 제일가는 부잣집이었으며 더욱이 전남노회장을 역임한 장로여서 경제적으로나 신앙적으로 상당히 윤택한 환경에서 자랐다. 김 목사의 외조부가 무안의 성자로 알려진 무안 성모의원 마동안 장로다.

2남 3녀 중 셋째인 김 목사는 위로 누나와 형, 아래로 두 여동생이 있으며 두 여동생(김현숙 권사와 김미숙 권사) 가족은 현재 치유하는교회에 출석하고 있다.

김 목사는 어떻게 치유목회자가 됐을까. 궁금하여 지난 3일 치유하는교회 담임목사실에서 김 목사와 인터뷰를 가졌다.

인터뷰 중인 김의식 목사 / 사진 엄무환 국장
인터뷰 중인 김의식 목사 / 사진 엄무환 국장
치유하는교회 전경
치유하는교회 전경

대부분의 친척들과 형제들이 의료업에 종사하시는 것 같은데 어떻게 목회자가 되셨습니까.

-맞다. 대부분의 친척들과 형제들 역시 의사와 간호사 한의사 등이다. 그런 가정 분위기였는지라 저 역시 처음엔 의사가 되기 위해 가톨릭의대에 응시했다. 하지만 낙방의 고배를 마셨다. 그래서 후기인 한양의대에 응시했지만 서울대와 연대 의대에서 떨어진 학생들이 한양의대에 대거 지원하는 바람에 또 낙방의 고배를 마셔야만 했다. 그래서 대성학원에 들어가서 재수했다. 학력평가를 했더니 가톨릭의대에 갈 수 있겠다 싶어 응시했는데 또 떨어졌다. 그러자 부모님이 3수는 안된다 하셔서 하는 수없이 한양공대에 들어가게 됐다. 하지만 그때부터 인생의 방황이 시작됐다. 공대에 가려고 이 고생했는가 해서였다. 1년 동안 술 마시고 돌아다니고 엉망인 삶을 살았다. 그러자 1학년 말에 몸에 이상이 왔다. 처음엔 감기 몸살인줄 알았지만 그게 아니었다. 병원에 가도 병명을 못찾았다. 한달보름 생고생했다. 이러다간 죽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집으로 내려갔다. 그런데 거기서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게 됐다. 전남의대병원에 입원했지만 그곳에서도 병명을 찾지 못해 다시 서울로 올라오려던 전날 밤 집 선반에 있던 성경책을 발견하고 저걸 붙잡으면 살겠다는 생각이 들어 성경책을 펴서 읽기 시작했다. 펴서 읽은 성경본문이 로마서 12장 1절~2절 말씀이었다. 삶으로 산제사를 드리라는 이 말씀에 꼬꾸라졌다. 이 말씀을 읽는 순간 눈앞에 동영상처럼 제가 술마시고 춤추고 돌아다니던 모습들이 환상으로 보였다. 그때 깨달았다. 내가 왜 죽을병에 걸려 고생하는지를. 하나님을 떠났기 때문이라는 것 말이다. 그러자 통회자복하기 시작했다. 한 시간 정도 살려달라고 부르짖었다. 불이 떨어졌다. 머리로부터 등을 치는 거다. 하나님이 나를 살려주신다는 믿음이 생겨 감사기도가 드려졌다. 어머니에게 미음을 좀 쑤어 달라고 말씀드렸다. 그동안 못 먹었기 때문이다. 그때가 2월 중순이나 하순 정도 되었을 것이다. 연대 신학과에 편입하려고 신학과 사무실에 찾아갔다. 그런데 편입이 안된다는 거다. 그래서 공대에 다니면서 인근 지역에 있었던 성서침례신학교(현재는 경기도 이천에 있다)에 편입하여 신학공부를 했다.

한양공대에 다니면서 신학공부를 같이 한 것이군요.

-그렇다. 성서침례신학교에 들어가니까 창세기에서 요한계시록까지 성경만 가르쳤다. 거기서 신구약 성경을 제대로 배웠다. 신학교는 신학이 아니라 성경을 가르쳐야 한다. 지금 제 설교의 기초는 이때 배운 성경지식에 기반한다. 그땐 갈급했기 때문에 밤을 새워 성경을 읽었다. 공대 크리스천 친구들에게 “난 은혜를 체험하고 목사되려고 한다. 그런데 편입하려고 하니 안된단다. 너희들이 좀 도와줘라. 야간에 신학교에 다니고 있는데 강의에 참석못하더라도 써머리(summary, 요약)해서 시험에 나올 것만 뽑아줘라. 난 그것만 외우고 시험볼테니까”

이렇게 해서 한양공대를 졸업하고 신학교에서도 1등을 하니까 교장선생님이신 선교사님이 “군에 갔다 와라. 내가 미국에 보내줄테니 석박사를 하고 와서 교수해라”고 하시는 거였다. 저는 좋아라 했다. 그러나 아버지가 전남노회(전남노회 광주노회 광주동노회가 분리되기 전) 노회장까지 하시고 총회에 뿌리를 내리신 분인지라 허락하지 않으셨다. 네가 거기서 복음을 들었다면 장로교가 황금어장 아니냐. 장로교에 와서 복음을 외쳐야지. 아버지와 아들이 교단이 틀려서 되겠느냐. 아버지 때문에 못갔다. 그래서 장신대 신대원에 입학하여 1학기 다니다가 군에 갔다.

군대에서 상당히 고생했다는 얘길 들었습니다.

-군에 가서 고생하지 않은 사람 어딨겠는가. 수경사(수도경비사령부)에 들어갔는데 그야말로 혹독한 고생을 했다. 매일 밤 두드려 패는거다. 군기를 잡아야 하니까. 거기서 세상을 제대로 알게 됐다. 세상이 이렇게 악하구나.

제대 후에 본격적으로 목회자의 길을 걸으신 것 같은데 어떻게 치유목회로 방향을 잡았습니까.

-1989년 7월 미국 유학을 떠날 당시 우리나라는 제6공화국 노태우 전 대통령 정권 아래에서 그때까지도 이념 논쟁으로 시끄러웠다. 교계나 신학대학교 내에서까지도 그 기조가 이어져 이데올로기로 무장한 신학생들이 장로회신학대학교 종합관 건물의 유리창을 다 깨뜨리고 당시 학장실을 점거하고 농성 중이었다. 사실 나는 그 전까지만해도 미국에 가서 목회학박사 학위(D.Min.)만 받고 돌아와 목회를 할 계획이었다. 그런데 성령님으로 충만한 것이 아니라 인간의 이념(?)으로 충만한 신학생들을 보면서 한국교회의 장래가 암담하게 느껴졌다. 이러한 신학생들이 목회현장에 뛰어들면 한국교회의 미래가 어떻게 되겠는가? 함께 대학원(Th.M.) 과정을 공부하던 최윤배 목사님(전 장신대 조직신학 교수)에게 우리가 외국에 가서 공부하고 철학박사 학위(Ph.D.)를 받고 돌아와서 장로회신학대학교를 복음으로 충만하게 만들자고 약속하고 함께 기도하고 헤어졌다. 그래서 미국유학을 가게 됐는데 가장 가고 싶었던 학교가 뭐니 뭐니 해도 훌륭한 선배님들(백낙준, 한경직, 박조준, 곽선희 목사)이 나오신 프린스턴 신학대학원이었다. 그래서 프린스턴에서 열심히 공부한 결과 보스턴 대학교(Th.D.), 에모리 대학교(S.T.D), 드류 대학교(Ph.D.), 클레어몬트 신학대학원(Ph.D.), 시카고 신학대학원(Ph.D.)의 입학 허가를 받았다. 그런데 다른 학교들은 다 목회상담이 전공이지만 시카고 신학대학원은 가족치료가 전공이었다. 그때 한국에서 MBC TV의 “애인”이란 드라마가 인기 절정에 오르며 부부의 외도와 갖가지 가정의 문제들이 터져 나왔다. 그래서 장신대 오성춘 교수님과 상의하여 가족치료를 전공하기 위해 시카고 신학대학원에 진학하게 됐다. 시카고신학대학원은 오 교수님의 모교이기도 했다. 가장 큰 장점은 미국 신학대학원 중 풀러신학대학원과 가족치료 전공의 철학박사(Ph.D.) 과정이 있다는 것이었다. 당시 시카고신학대학원은 Family Care Network(가족돌봄 연락망)이라는 가족치료 교육훈련기관과 함께 가족치료 공동프로그램의 철학박사 학위과정이 있었다. Family Care Network는 3개 종합대학병원과 12개의 가족치료센터를 가지고 있어서 시카고 신학대학원에 갈 경우 가족치료의 이론과 실제를 함께 배울 수 있다는 것이 큰 매력이었다.

목회현장에서도 치유와 관련된 훈련을 하신 것으로 압니다만

-군복무를 마치고 신대원에 복학한 후 노량진에 있는 노량진교회(당시 림인식 목사 시무)에서 교육전도사로 6년 섬기며 목회훈련을 마치고 목회상담 공부하러 미국에 가서 프린스턴신학대학원과 시카고신학대학원에서 7년간 석박사학위를 공부했다.

2년간의 박사 과정 학과 공부를 다 마칠 무렵 오성춘 교수님께서 장신대 교수로 오려면 담임목회를 3년 해야 한다고 하셔서 기도하던 중, 한인신문에서 시카고한인연합장로교회가 담임목사를 청빙한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당시 담임목사 청빙위원장이셨던 김남일 선임장로님(고 김종대 증경총회장 외아들)을 만나 이력서와 설교 테이프를 전달했다.

그런데 그때 시카고 한미교회 교육목사로 사역하시던 강신원 목사님(후에 노량진교회 담임목사로 부임하심, 모스크바 장신대 총장)께서 “그 교회는 목사를 힘들게 하는 교회로 소문이 나 있는데, 첫 목회지로 그런 교회에 가면 다칠 수 있으니까 안 갔으면 좋겠다”고 극구 만류하셨다. 하지만 기도만 하면 성령님께서 “가라!”고 명령하셨다. 그래서 “목사를 어떻게 찢어 죽이는가 가 보겠다”는 마음으로 청빙 설교를 했고, 교인들이 좋다고 하여 4대 담임목사로 부임하게 되었다. 거기서부터 눈물의 이민목회 고생이 시작됐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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