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와 복음] 흙 속의 원석을 발굴·가공하여 진짜 보석을 만드는 이야기
[영화와 복음] 흙 속의 원석을 발굴·가공하여 진짜 보석을 만드는 이야기
  • 임명진 목사
  • 승인 2022.01.10 19: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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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지니어스》

타이피스트들이 책상 위에 수북이 쌓인 원고를 하나씩 처리해나간다. 타다다닥~. 경쾌하게 울리는 손가락 터치 음이 뉴욕의 유력 출판사 스크라이브너스의 활발한 분위기를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알아보기조차 힘들게 수기로 작성된 수천 매에 달하는 원고를 타이핑하고, 그렇게 활자화된 원고를 편집자 맥스 퍼킨스(콜린 퍼스)는 읽고 또 읽는다.

“이건 너무 길어...” “이 문장은 적절치 않아...”

연필로 긋고 지우고 다른 곳으로 연결하면서 원고를 수정해나간다. 아직 완성되지 않은 원석을 가공하는 일은 비단 보석업자만의 일은 아니다. 탁월한 천재의 글을 다듬어 세상에 내놓는 편집자의 일도 마찬가지다.

망나니 같은 무모함과 뻔뻔함을 가진 무명 작가 토마스 울프(주드 로)는 어느 날 퍼킨스를 찾아가 원고를 건네준다. 당시와는 다른 서정적이고 낭만적인 글을 접하고 사색에 빠진 퍼킨스는 마침내 출간을 결심한다. 마침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책이 『천사여, 고향을 보라』이다.

아직 한국어로는 제대로 번역조차 되지 않은 이 책은 1920~30년대 미국 사회에 큰 인기를 끈 베스트셀러이다. 옥석을 알아본 편집자 퍼킨스는 토마스 울프와 계약을 체결하고 후속작을 요청한다. 작가와 편집자의 관계가 시작된 것이다. 맥스 퍼킨스, 그는 글에 대한 남다른 감각과 촉이 있는 유능한 편집자였기에, 헤밍웨이와 스콧 피츠제럴드의 소설을 세상에 알린 장본인이기도 하다.

일반적으로 탁월한 작가에 관한 이야기는 세상에 많이 알려 있지만, 그런 작가를 발굴하고 소개한 편집자는 감춰지기 마련이다. 이는 편집자의 숙명이기도 하다.

“편집자는 익명으로 남아야 해. 그보다 더 큰 이유는 항상 두렵거든! 내가 자네 글을 변형시킨 것 같아서. 초고는 지금과 달랐다는 걸 알리고 싶지 않아. 우리가 정말 글을 좋게 바꾸고 있나? 그저 변형시키고 있나?”

토마스 울프와 나눈 퍼킨스의 대사는 그가 편집자로서 지향한 바가 무엇인지를 단적으로 드러낸다. 남을 더욱 빛나게 하는 것, 그게 편집자의 역할이다. 사실, 편집자는 단지 교정/교열의 기능에만 그치지 않는다.

그는 작가와 수없이 대화하고 일치된 목표를 갖도록 도움을 준다. 초고를 받고, 그것을 주제에 맞게 적절하게 배치/배열하고, 필요한 주제의식과 흐름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피드백한다. 그 과정에서 편집자와 작가는 갈등을 일으키기도 하고, 심한 경우 절필 선언이나 출판사가 교체되기도 한다. 쉽지 않은 일이다.

독자로서 우리는 하나의 완성된 작품을 보지만, 그 글(작품)이 세상에 나오게 된 과정은 모르는 경우가 많다. 영화는 바로 그 점에 초점을 맞춘다. 우리에게 낯선 작가 ‘토마스 울프’가 이 영화의 주인공으로 등장한 것은, 어쩌면 작가보다는 그 작가를 발굴한 편집자에 주목하게 만드는 이유이기도 하다.

때문에, 영화 제목 ‘지니어스’는 작가가 천재라는 사실 뿐 아니라, 그 천재를 알아보고 발굴한 편집자에게도 해당하는 말이다.

개인적으로 친한 친구가 출판사에서 편집하는 위치에 있다. 몇 년 전부터 꾸준히 집필을 요청했고, 이미 여러 차례 찾아와 책의 주제와 방향성, 성격에 대한 논의를 진행했다. 문제는 내가 전혀 글을 쓰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런 걸 보면 편집자는 인내와 자기 수양이 필요하고, 때로는 그가 만나는 작가에 대한 인간적인 배려와 격려도 수행해야 하는 격한 직업이다.

영화에서 퍼킨스 역시 당시 전혀 글을 쓰지 못했던 헤밍웨이와 스콧 피츠제럴드를 위로하며 격려하는 장면이 나온다. 하나의 글이나 책은 절대 작가 혼자만의 역량이나 작업으로 말미암지 않는다. 오히려 보이지 않는 누군가의 수고와 헌신에 의한 협업의 결과이다.

작가를 위로하고 격려하며, 주제와 방향성을 공유하고 글을 다듬고 더욱 빛나게 만드는 것이 편집자의 역할이라면, 목회자도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스스로 빛나고 유명해지기보다는, 성도들이 세상에서 빛을 내고 제 역할을 감당하도록 돕는 역할이다. 세상에는 그 자체로 발광하는 물체도 있지만, 빛나게 만들어주는 조력자도 필요한 법이다. 감춰진 2인자나 숨은 가공인이 원석만큼이나 제대로 된 평가를 받는 사회가 건전한 사회이다.

진짜 보석은 원석보다 값지고 찬란하지만, 누군가의 손으로 다듬어져야 비로소 빛을 발한다.

임명진 목사<br>북악하늘교회 담임<br>​​​​​​​문화사역 전문기자<br>
임명진 목사
북악하늘교회 담임
문화사역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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