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겔 칼럼] 기독교인과 정치참여
[데겔 칼럼] 기독교인과 정치참여
  • 박충구 교수
  • 승인 2021.12.28 21: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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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기독교 신자들은 기독교 신앙과 정치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여겼다. 당시에는 기세등등한 로마 제국의 지배하에 있었기 때문에 정치 참여라는 것 자체가 허용되지도 않았고 있을 수도 없었다. 성서가 기록된 세계는 이런 정황을 고려하여 이해해야 한다. 따라서 성서에서 정치참여를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으니 기독교인은 기도는 할 수 있지만 적극적인 정치 참여를 하면 안 된다는 주장은 옳은 판단이 아니다.

기독교 역사에서 기독교의 정치 참여가 논의되기 시작한 시점은 기독교인 수가 점차 증대되어 교회에 정치적 책임을 생각해야 하는 정치가들이 많아질 때였다. 5세기 어거스틴과 16세기 마르틴 루터, 그리고 존 칼빈, 18세기 존 웨슬리에 이르기까지 신학자들은 대체로 세속 군주의 의무만 언급했지 신민들의 정치 참여에 관한 논의를 적극적으로 전개하지 않았다. 그 결과 신자들은 정치 참여는커녕 오히려 세상의 질서를 일종의 왕권신수설로 해석될 수 있는 지배와 복종의 구조로 이해했을 뿐이다.

18세기 말을 지나기까지 기독교는 기존 질서를 정당화하고 그 질서를 옹호하는 편에 서 있었다. 이런 기독교의 시각은 근대 세계에서도 스스로 교정하지 못했다. 이로 인해 1789년 발발한 프랑스 혁명기에 기독교는 반개혁 세력으로 낙인이 찍히고, 심지어 마르크스주의에 경도된 사회과학도에 의해서는 사회경제적인 인민의 불행과 억압을 잊게 하는 아편으로 매도당했다. 이런 매도는 전적으로 옳은 것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전적으로 틀렸다고 보기도 어렵다.

소극적으로 개인의 변화를 통한 사회의 변화를 가르치던 유럽의 기독교는 봉건 세계의 불평등한 역사를 교정하는 데 실패했고, 그 결과 사회 혁명에 의해 지배세력의 몰락과 함께 동반 몰락했다. 반면 신대륙에서는 흑인을 차별하며 봉건 영주 노릇을 하려 했던 남부 기독교 지주들의 보수성이 내전을 통해 노예해방론과 평등주의적인 시각으로 교정되었다. 그 결과 기독교인이 앞장서서 1776년 미합중국의 탄생기에 프랑스 혁명 정신에 준하는 자유와 평등 그리고 인권에 대한 민주적 합의를 이루어 냈다.

유럽과 미국의 기독교는 이런 과정에서 성서적 왕조 문화의 시각을 전적으로 버리고 민주주의적 세계관으로 이행했다. 민주주의 이념 속에 담겨있는 인간의 존엄성과 권리 이해, 그리고 교회법 우월주의를 버리고 헌법에 따른 민주적 법치주의를 수용했고, 사회구성원의 의식은 복종의 의무를 지고 있었던 신민(臣民)개념을 버리고 권력재민주의 사상에 따라 나라의 주인인 시민(市民)이 되었다. 우리 사회도 이 전통을 이어받아 “모든 권력은 국민에서 나온다”는 원칙에 합의한 민주사회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한국 교회 일부는 “신민에서 시민에로의 이행과정”을 스스로 이룩해내지 못하고 정치에 대한 적극적 참여에 대하여 침묵하고 있는 성경에 매여 전근대적 복종의 논리를 아직도 유통하고 있는 실정이다. 신민으로서의 복종의 의무만 아는 이들은 권력자의 부패, 불신앙, 반인권, 패악, 미신숭배 등, 다양한 반기독교적인 행태에도 불구하고 권력자의 권위에 맹종하는 전근대적 정치의식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현대 세계에서 기독교인의 정치 참여는 권위적 정치가를 섬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만 섬기는 신앙인으로서 나라의 주인 노릇을 제대로 하는 것을 의미하며, 이는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를 바로 세우는 데 모아진다. 민주주의가 제대로 실현될 때 비로소 우리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모든 인간의 존엄성과 권리를 지켜줄 수 있는 사회를 이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기독교인은 모름지기 민주주의 실현에 늘 앞장서야 할 의무가 있고, 그것이 기독교인의 정치참여의 길임을 명심해야 한다.

박충구 교수<br>생명과 평화 연구소 소장<br>
박충구 교수
생명과평화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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