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과 목회] 불가해한 고난과 궁극적 희망
[예술과 목회] 불가해한 고난과 궁극적 희망
  • 박혁순 목사
  • 승인 2021.12.26 16: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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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혁순 목사 (한일장신대 객원교수, 조직신학)
‘과연 하나님이 자비롭다면 내가 이렇게 힘들 수 있을까?’

먼저 시 한 편을 함께 보자. 이 작품은 19세기 미국의 문호 스티븐 크레인(Stephen Crane)이 쓴 시의 전문이다.

<한 사내가 우주에게 말했다 / 스티븐 크레인>

한 사내가 우주에게 말했다.

“이보시오, 내가 존재하고 있소!”

“그렇다 해도” 우주가 답했다.

“그 사실이 내게 의무감을 만들지 않는다네.”

이 시의 기저에는 ‘과연 하나님이 자비롭다면 내가 이렇게 힘들 수 있을까?’ 하는 의혹이 깔려 있다. 시인이 아니라 누구든, 하나님을 신앙하는 입장에서 예기치 않은 심각한 고난에 처했을 때, 하나님의 부재와 그의 능력과 선에 의구심을 표할 수 있게 된다.

말하자면 ‘내가 이렇게 힘겨운데 과연 하나님은 뭐하고 계신가?’ 혹은 ‘하나님은 왜 자신의 자녀를 돕지 않는가?’ 하는 의문 때문이다. 시적 화자는 우주를 향해 자기의 고단한 삶의 고충을 털어놓고자 한다. ‘내가 (이 힘겨운 세상에) 존재하고 있다’ 즉 내 딱한 처지를 알아달라는 뜻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돌아오는 대답은 싸늘하기 그지없다. ‘너희들이 이 세상에 존재해도 나는 너희에게 친절을 베풀거나 보호할 의무를 느끼지 않는다’는 답변인 것이다.

20세기 초 이른바 유기체철학(과정철학)을 개창한 수학자 화이트헤드가 “종교적 교리의 모든 단순화 작업들은 악의 문제라는 암초에 걸려서 난파되었다.”고 평한 적이 있듯이, 불특정 다수에게 찾아오는 자연재해나 무고한 의인이 겪는 고난에 대해 하나님의 선과 능력을 변론하는 신정론(神正論)상의 의혹은 신자의 믿음을 허물 수 있는 도전이 된다.

그리스도교의 ‘은혜롭고 정의롭고 선하고 전지전능한’ 하나님을 고수하는 신론에 대항하는 가장 치명적인 논박은, 바로 세계 내의 처절한 악과 애매한 고난에 관해 하나님의 책임을 묻는 질문이기 때문이다. 이 질문이 해소되지 않는 경우 신자도 무신론자로 돌아서곤 한다.

곤혹스러운 문제에 대해 하나님을 위한 변명이 가능하다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구속 사역에서 구해진다고 생각된다. 그리고 양보할 수 없는 종말의 희망에서 찾을 수 있다고 본다.

그리스도의 수난과 십자가와 음부 강하(벧전 3:19)와 부활을 통해 전망하게 되는 종말론은 단순히 신자의 영적 구원과 영생을 주장하는 수준에 그치지 않는다. 세계의 무게를 짊어진 그리스도의 대속의 사역은 세계의 비참을 앞지르고 넘어야 한다. 그렇게 이루어질 것, 곧 무한자가 유한자의 짐을 담당함으로써 얻어질 것은 세계의 악과 고난을 압도하고, 유사 이래 인간이 흘린 피와 눈물과 한숨을 부담하고, 모든 원망과 의혹과 불의를 일소한다.

그 스스로 하나님인 그리스도의 흘린 피와 죽음은 ‘썩어짐의 종 노릇’(롬 8:21)으로 상처받은 모든 피조물들에게도 복락원(復樂園)을 가져와야 한다. 하나님이 인간의 죄악의 저주를 자기에게 돌리고, 자기의 의와 승리를 인간에게 허락했다는 취지로 루터가 ‘즐거운 교환’을 설명했지만, 세계와 인생을 위한 하나님의 죽음은 ‘1:1’ 식의 교환가치가 개재되어 있지 않다. 독일의 신학자 위르겐 몰트만의 표현에 의하면 그것은 ‘긍정의 불균형(Asymmetrie)’ 혹은 비대칭이다.

말하자면 하나님의 수난과 죽음은 창조세계의 모든 죄악과 파괴를 덮고도 남는다. 이에 관련하여, 나는 한국 교계에서 창작된 「주의 인자하신 그 사랑이」 라는 CCM에서 공감할 시어를 접한 바 있다.

‘주의 인자하신 그 사랑이 내 생명보다 나으며/위로하시는 주 손길이 내 눈물보다 귀하다/변함이 없는 주 임재가 내 근심보다 가깝고/주님 흘리신 그 보혈은 내 상처보다 진하다.’

그렇게 하나님의 의와 승리는 인간의 모든 유한성과 죄의 비참을 덮고도 남는다. 인용한 가사처럼 하나님의 사랑과 보혈은 세계와 인생의 그 무엇 ‘보다’ 낫고 귀하고 진하다. 그것이 모욕과 채찍과 십자가와 죽음을 감내한 하나님의 사랑의 무게로 가져온 무한한 현실성의 증정품이다.

따라서 어떤 방법, 어떠한 절차를 막론하여 어떠한 제한, 어떠한 의혹이든 분쇄시키고 하나님의 무한한 치유와 생명의 능력으로 현세의 역사는 마감될 것이다. 선과 악, 생명과 죽음, 순종과 타락 등은 신적 차원과 종말론적 신원 가운데 해소되고도 남음이 있다.

개인, 영혼, 인간, 현세라는 편협한 항목에서 공동체, 영육 또는 전인격, 창조세계, 내세라는 보다 광대한 항목을 아우르는 충일(充溢)한 하나님의 구원과 화해로 영원을 이끌게 될 것이다.

박혁순 교수<br>한일장신대 초빙교수<br>
박혁순 목사
한일장신대 객원교수
조직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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