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란 ‘목숨을 걸고 하는 것!’
목회란 ‘목숨을 걸고 하는 것!’
  • 최상현 기자
  • 승인 2021.12.22 20: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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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경총회장 정영택 목사 인터뷰
광야에서 떠나고 싶은 유혹 극복해야
다시 회복해야 할 ‘수행의 영성’
진정성 있는 목회 속에 대안 있어

진행_박진석 목사(본보 상임이사)
예장통합 증경총회장 정영택 목사. 최상현 기자.

Q. 코로나 팬데믹이 교회와 목회에 주는 영적 메시지는 무엇인가?

기독교는 언제나 위기였다. 사실 위기가 아닌 시기가 없었다. 그런데 과연 작금의 현실이 초대교회의 상황만큼 위기인가? 중세시대에 페스트가 창궐했을 때, 또는 6.25 전쟁만큼의 위기라고 볼 수 있을까?

나는 우리가 위기를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질문하고 싶다. 잠시 예배당에 모이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 위기인가? 위기‘감!’, 이 ‘감’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가 중요하다. 많은 목회자들이 위기를 말하지만 과연 문제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절감하고 있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아울러 정말로 위기감을 느끼고 있는지 다시 성찰해보아야 한다.

우리는 좋은 시스템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교회의 위기 상황 앞에서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교인이 줄고 있지만 이를 두고 진정으로 가슴 아파하는 이들이 있는가? ‘뉴노멀(New Nomal)’을 말하기 전에 과연 제대로 된 ‘노멀(Nomal)’은 있었는지 돌아보자.

그렇지 않았다면 최소한 ‘노멀’이라도 제대로 해야 하지 않겠는가? 진정으로 위기를 절감했다면, 당장 교회 밖으로 뛰쳐나가 전도해보았는가?

그러한 절박한 심정과 도전 없이, 조건만 살펴보면서 “예산이 없다, 사람이 없다”고 말하지는 않았는지 반성해보자. 예장통합교단 교회가 9천여 개라고 생각해볼 때 목사 9천, 전도사 9천, 장로, 권사, 집사가 각 9천, 도합 4만 5천 명이다. 이들이 1년에 한 사람씩만 전도했다면 매년 4만 5천 명 씩 성도가 늘어났을 것이다.

우리는 늘 ‘상향성’의 충동 속에 살고 있다. 또한 상향성의 돔을 만들어 그 돔에 갇힌 처지가 되고 말았다. 목회는 ‘하향성’으로의 부름이다. 주님은 하늘에서 땅으로, 구유로, 종으로 내려오셨다. 우리에게 그러한 중심이 있는지 돌아보자.

또 한 가지는, 과연 우리는 자신의 목회현장을 얼마나 알고 있을까? 교회 반경 2km 안에 무엇이 있는지 아는가? 학교, 술집, 식당, 유치원에 어떤 사람이 있는지 살펴본 적이 있는가? 그들을 위해 내가 어떤 사역을 펼쳐나가야 할 것인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찾아내야 한다.

지금까지 우리는 ‘상황’에 잘 적응하려고 했다. 이 말은 정치적 감각으로 살아왔다는 뜻이다. 그러면서 복음의 본질을 놓치고 말았다. 또한 평판에 대한 유혹을 떨쳐 버리지 못했다. 아울러 힘과 권력을 갈구했다.

어떤 이들은 예수님께서 네 번째 시험을 받았을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그 시험은 바로 ‘광야에서 떠나고 싶은 시험’이다. 많은 목회자들이 하향이 아닌 상향의 삶을 추구한다. 시골에서 떠나고 싶고, 그 유혹을 견디지 못한다.

Q. 우리는 어떤 목회를 추구해야 하는가?

‘복음적 목회’를 해야 한다. 구원적인 삶, 구원을 확신시키는 삶이다. 복음의 DNA는 무엇인가? 하나님 나라다. 칼빈은 이것을 ‘화해’라고 말한다. 이 화해를 안에서 이루는 것을 ‘목회’, 밖에서 이루는 것을 ‘선교’라고 말할 수 있다. 우리는 이 본질을 프로그램과 이벤트, 기술적인 것으로 메울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물론 그것이 나쁜 것은 아니다.

개혁교회의 선조들은 이 본질을 지키기 위해 교육을 발전시켰다. 그들은 요리문답을 만들어 교인들을 가르치고 훈련시켰다. 대요리, 소요리 문답의 마지막 부분이 무엇인가? 우리가 어떻게 신앙생활을 ‘지속할 수 있느냐?’이다. 답은 ‘말씀, 성례, 기도에 힘쓰는 것’에 있다.

혹자는 이렇게 반문할 수 있다. “지금까지 우리가 열심히 해오지 않았나? 한국 교회는 말씀 운동을 충분히 해왔다.” 하지만 우리는 말씀을 ‘배우는’ 교육을 했지, ‘살아내는’ 훈련은 빈약했다. 가르침과 훈련이 함께 가야 한다. 훈련이 삶이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말씀을 중심으로 뭉친 소그룹 운동이 필요하다.

또한 개혁 세대는 매우 구체적인 기도 교육과 훈련을 시켰다. 반면 오늘날 우리의 기도 훈련은 구체적이지 않다. 이러한 부분을 보완하기 위해 가장 먼저 담임목회자를 훈련시켜야 한다. 특별히 우리 교단은 노회와 시찰회라는 좋은 조직을 갖고 있는데, 이 조직을 잘 활용하여 말씀과 기도에 힘쓸 수 있도록 몸부림쳐야 한다.

Q. 오늘날 목회자들에게 ‘수행의 영성’이 사라졌다고 보는 것인가?

그렇다. 우리가 홀로 있을 때 어떻게 살아가는지가 진정한 ‘경건’이다. 말만 했지 그에 따른 수행이 뒤따르지 않았다. 앞으로는 수행, 즉 훈련을 구체적으로 해나가야 한다. 오늘날 교회는 이런 훈련을 하면 ‘진부해진다, 은혜가 안 된다’는 반응을 보인다.

하지만 나는 힘들더라도 말씀과 전도생활 훈련에 힘썼다. 훈련생을 모집하면 매우 적은 수가 참가했지만 숫자와 관계없이 7주 과정, 12주 과정을 진행했다. 우리는 변화를 꿈꾸지만, 변화를 위해서는 반드시 과정이 뒤따라야 한다. 과정이 결여된 결과는 반드시 큰 위험을 만나게 된다.

Q. 목회자는 성도를 어떻게 교육해야 하는가?

이제 1대1 교육이 가능한 시대다. 사람을 모으려 하지 말고, ‘모이는 사람 위주’로 먼저 교육해야 한다. 예수님도 12명을 두고 교육에 집중하셨다. 어떤 형태로든 교육할 수 있는 그룹을 만들고, 거창할 것 없이 성경말씀을 읽게 하면 된다.

읽은 후에는 쓰게 하고, 생각하게 하고, 말하게 하며, 살아보게 해야 한다. 물론 하루아침에 되는 일은 아니다. 큐티를 하면서 조금씩 단계를 밟아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말씀을 읽으며 인상 깊었던 것을 쓰고, 왜 그렇게 썼는지 말하다보면 그것이 곧 간증이 된다. ‘말했으니 이제 이렇게 살아야겠구나!’라고 스스로 생각하게 하는 것이다.

또한 반드시 복음을 전하는 훈련이 필요하다. 이 과정에서 지난 30년 간 예수를 믿은 사람이 눈물을 흘리며 뜨거운 감격을 경험하기도 한다. 목회자는 훈련받는 이들에게 강력한 구원의 확신을 주고 복음으로 무장하게 해야 한다.

Q. 2022년 새해, 목회자들은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

세 가지를 강조하고 싶다.

첫째, 담임 목사의 영성과 프로의식이다. 지금 하고 있는 사역에 프로 의식을 가지고 전문성을 길러야 한다. 남의 설교를 베끼지 말고 설교의 도사, 성경을 가르치는 일에 도사가 되어야 한다.

둘째, 도덕적 권위를 가져야 한다. 세상 사람보다 훨씬 깨끗하고 투명한 것, 이것이 매우 중요하다. 동전 한 푼도 깨끗하게 쓸 수 있어야 한다. 기본은 ‘공과 사’를 구분하는 것이다.

셋째, 영적 권위가 있어야 한다. 영적 권위는 ‘자기 부인’에서 온다. 소유와 평판, 자리에 있어서 자기 부인이 되어야 한다. 무엇을 먹을까, 입을까 걱정하지 않는 것. 없으면 금식하고, 금식해도 없으면 천국 간다는 각오. 이것이 목회자의 권위다.

선한 목자의 기준이 무엇인가? 양을 위해 목숨을 버리는 자다. 반대로 삯꾼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일한다. 목회자가 자기를 부인하고 작아지는 길을 걸어갈 때 진정한 영적 권위를 가질 수 있다. 한 가지 첨언하자면 선교에 인색해서는 안 된다. 교회는 다음 세대 선교, 해외 선교에 결코 인색하지 말아야 한다.

Q. 끝으로 후배 목회자들을 위한 제언을 부탁드린다.

진정성 있는 목회 속에서 대안을 찾아야 한다. 여러 프로그램을 찾아 헤매면서 돌파구를 찾으려 하지 말고, 내 홈그라운드, 내 목회 현장 속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큰 규모로 사역을 이어가고 있는 목회자들을 보면, 처음에는 그가 할 수 있는 매우 작은 일에서 비롯된 일이다. 작은 과정들이 모여 아름다운 사역으로 열매 맺는다는 것을 잊지 말자.

때로는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것 같은 느낌이 들 것이다. 그럼에도 바위를 때리는 용기가 필요하다. 기회가 된다면 후배 목회자들과 대화하고 위로하는 시간을 갖고 싶다. 아울러 목회의 실제, 성찬, 성경 공부도 하면서 서로 정신을 차리게 하는 사역을 해보고 싶다.

끝으로, ‘내가 왜 여기 있는가?’ 질문하면서 살아보자. 주님은 왜 나를 여기에 보내셨을까? 그곳이 교회든, 직장이든, 거리이든 왜 이곳에 있는지 늘 묻고 그 답을 찾으며 살아가자. 말씀을 들을 때도 왜 내게 이 말씀을 주시는가? 왜 내가 이 말씀을 듣는지 묵상하다보면 하나님의 뜻을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요즘에 코로나 때문에 못한다는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그런 핑계를 대지 말고 목숨 걸고 목회를 해보자. 목회는 목숨을 걸고 하는 것이다. 전도에, 기도에 목숨을 걸고 나아가는 목회자들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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