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와 ‘왜곡’으로 대표되는 한국사회의 현실
‘공포’와 ‘왜곡’으로 대표되는 한국사회의 현실
  • 임명진 목사
  • 승인 2021.12.16 09: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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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상호 감독의 〈지옥〉
넷플릭스 드라마 '지옥'의 한 장면.

한국 대중문화 세계화의 핵심 – 한국의 독특한 현실 반영

바야흐로 2020년대 한국 대중문화가 ‘세계적’ 반열에 등극했다는데 이견을 달 사람은 없는 듯하다.

BTS와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을 시작으로 대중문화의 본산인 미국에 깃발은 꽂은 한국문화(K-culture) 상품의 화려한 등극이 잇따르고 있다. 특히 드라마, 영화 분야의 약진이 두드러지는데, 여기에는 소재와 주제에 대한 윤리적 허용치가 비교적 자유롭고 집안 곳곳까지 배달 가능한 플랫폼 ‘넷플릭스’의 활약이 절대적이다.

〈D.P〉 〈오징어게임〉 〈마이 네임〉 그리고 가장 최근의 〈지옥〉까지, 한국산 드라마의 연이은 흥행몰이는 전 세계에 K신드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물론 이는 유명세를 탄 전작의 후광효과도 없지 않으나, 각 작품들이 겸비한 대중성과 작품성이 없었다면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다. 그만큼 작품 자체의 질적 수준이 형상되었다는 방증이다.

그런데 위에서 언급한 작품들의 전 세계적 흥행을 가능케 한 두드러진 특징 가운데 하나는 한국사회의 디스토피아적 현실 묘사를 십분 활용했다는 점이다. 물론 이는 단지 한국 사회만의 특성이라기보다는 시공간의 상이성에 따른 미묘한 차이를 포함하여, 현대사회에 존재하는 각 문화권들이 갖는 공통된 특성이기도 하다.

인간이 사는 세상에 완전히 이상적인 사회는 존재하지 않는다. 크고 작은 문제를 노출하기 마련이고, 각 사회가 지닌 고질적인 병폐들과 맞물려 새로운 부작용과 사회현상(문제)을 유발한다. 이 사회현상은 인간 스스로의 노력과 정화작용으로 해결 가능한 부분도 있지만 영원한 난제로 남을 수밖에 없는 분야도 있다.

바로 이 지점이 세상을 사는 인간들이 절망하는 분수령이 된다.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들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가 과제로 남는다.

천재지변과 같은 재앙은 급격한 과학기술의 발전을 이룬 현재도 여전히 통제 불가능한 영역으로 남아있다. 자연 재앙만이 아니다. 뇌 과학이 점점 수수께끼를 풀고 있다 할지라도, 인간의 정신세계는 여전히 미지의 영역으로 존재한다. 수없이 발생하는 정신질환은 사회적 병폐들과 혼합되어 매우 심각한 공동체적 문제들을 양산한다.

소시오패스처럼 개인적 일탈로 치부할 영역도 있지만, 이단/사이비 같이 사회 전체에 해악을 끼치는 집단들도 등장한다. 그런데 이들 집단을 규정하는 중요한 키워드는 ‘공포’와 ‘왜곡’이다. 인간의 통제를 넘어선 영역으로 침투된 사회문제는 그 의도성의 여부와 상관없이 공포를 발생시키고 왜곡을 통해 강화된다.

연상호 감독이 드러내고픈 한국사회의 현실

영화감독 연상호와 웹툰작가 최규석이 의기투합해 제작한 드라마 〈지옥〉은 특히 ‘공포와 왜곡’의 키워드가 적절하게 배치되어 현 한국사회의 문제를 신날하게 파헤친 작품이다. 해결책을 제시한다기보다는 문제점을 드러내는 역할에 충실하다. 문제를 모르면 답을 산출할 수 없다. 일단 누군가가 감춰진 문제를 들춰내야 한다. 해석과 해결은 그 후의 숙제다.

그렇다면 연상호와 최규석이 고발하고 드러내고픈 한국사회의 상처와 아픔은 무엇일까? 일단 둘은 사회 문제에 관심이 많다. 이는 그들의 전작들에서 증명된다. 우리에게 영화 〈부산행〉과 〈반도〉로 유명한 연상호는 본격적인 실사영화를 만들기 전부터 애니메이션으로 이미 정평이 난 감독이다.

2004년 〈지옥-두 개의 삶〉을 시작으로 〈돼지의 왕〉, 〈창〉, 〈사이비〉, 〈졸업반〉 등으로 한국사회의 현실을 드러내는 데 탁월한 실력을 발휘했다. 이 작품 중 대부분은 노동과 노조문제를 다룬 웹툰 〈송곳〉으로 유명한 최규석과의 협업으로 제작되었는데, 사회성 짙은 메시지를 표방한다.

일반적으로 애니메이션 장르는 어린이를 위한 작품이 주류를 이룬다. 하지만 이런 한계와 편견을 깨고 연상호와 최규석은 성인을 위한 사회고발성 작품들을 꾸준히 제작, 감독해왔다. 더불어, 작품들의 메시지와 전달방식이 강하고 직접적이다. 따라서 관객에 따라 호불호가 극단적으로 갈린다.

이들 작품 대부분의 공간적 배경은 학교와 군대, 종교기관이다. 집단성과 공동체성이 강조되며, 그 안에는 학대받고 고통당하는 소수의 약자들이 존재한다. 그들이 느끼는 불합리와 부조리, 폭력과 따돌림, 이로 말미암는 공포와 불안은 연상호가 드러내고픈 한국사회의 아픈 현실이다.

지옥은 종교(적) 영화인가, 사회(적) 영화인가?

〈지옥〉에 대한 여러 평가들이 있다. ‘지옥’이라는 종교적인 소재를 다루며 기독교 교리가 주된 기준으로 자리하다보니, 종교성이 짙은 영화로 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또한 고지 받은 자들의 지옥행에 결정적 증거인 그들의 삶에서 보인 사회, 윤리적 행위에 근거인 원죄나 자범죄도 개신교에서 거론된 죄의 항목들과 연관성을 갖는다.

하지만 지금까지 연상호 감독이 지향한 작품세계를 고려하면, 이는 한국사회의 현실을 드러내는데 종교적 소재를 활용했다는 것이 더 정확한 평가이다.

〈지옥〉에서 언급된 여러 기독교(교리)와 관련된 이슈들은 현재도 여전히 논란의 대상이다. 먼저, 신앙인과 비신앙인이 상식적(?)으로 생각하는 천국과 지옥의 존재 유무와 형태, 그곳을 가는 자들의 근거와 이유는 매우 다르다. 비신앙인과 신앙인이 가진 지식의 차이가 크다.

세부적으로 들어가도 종교와 교단, 신학에 따라 차이가 발생한다. 행위와 믿음의 관계, 상벌의 개념, 유아(乳兒)의 죄성 유무, 원죄(original sin)와 자범죄(actual sin), 신(하나님)과 천사의 역할과 위상, 계시와 현현(顯現)의 방법 등은 해석 여부에 따라 달라진다.

이런 점을 고려해 볼 때, 연상호 감독은 비신앙인이나 기독교 교리의 초보적 단계만을 접한 수준에 있는 사람들이 이해하는 정도의 종교적 개념을 자신의 작품에 차용했을 뿐이다. 때문에, 이를 기반으로 종교(적) 영화 여부를 운운하는 데에는 무리가 따른다.

하지만 비신앙인들이 기독교를 바라보는 관점과 해석에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두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즉, 기존에는 직접 이해당사자인 종교기관이나 이와 관련된 기관에서 제작하는 경우를 제외한 일반 대중문화나 매체에서 기독교를 다룰 때는 철저하게 ‘금기와 무시’의 전략을 고수해왔다.

사회가 변하면서 기독교는 대중에게 사회문제와 관련 없거나 단지 변두리에 머무는 정도가 아니라, (긍정이든 부정이든) 사회의 한축을 담당하고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영역에 들어와 있는 것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이는 기독교를 사회 구성의 한 부분으로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중요한 의미이다. (교리나 기본진리에 대해 정확히 인지하지 못하는) 일반 사람들이 바라보는 기독교에 대한 평가를 두고 반성과 성찰이 필요하다.

〈지옥〉이 종교(기독교)를 현실사회로 소환하는 방식 – 이 세상에 침투한 저 세상의 공포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생각하는 종교(기독교)에 대한 가치관은 이분법 혹은 이원론적이다. ‘이 세상’과 ‘저 세상’이 있으며, ‘이 땅’과 ‘천국(혹은 지옥)’이 있다. 이 영역에서 저 영역으로 넘어가기 위해서는 ‘죽음’이라는 통과의식을 거쳐야 한다. 그런데 ‘이 세상’에 대하여는 우리가 오랜 역사를 거치며 발 디디며 살아가는 시․공간으로, 경험과 인식을 통해 확증된 지식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저 세상’에는 그런 지식이 없다. 경험하지 못한 미지의 영역으로 남아있다. 두 세계로의 분리와 다른 한 세계(저 세상)에 대한 무지(無知)는 자연스럽게 현 세계(현실)의 삶에 중점을 두게 이끈다. ‘천국과 지옥’을 익히 들어온 사람도 그 존재유무는 믿음의 차원에서만 받아들일 뿐이다.

때문에, 믿음으로 다른 세계를 받아들이지 않은(못한) 사람은 아직 경험하지 못한 다른 세계는 무시하고 살아갈 수 있다. 지금 당장 내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직 모르는 ‘저 세상’이 지금 사는 ‘이 세상’에 침투해 들어온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지금까지는 ‘죽음’이라는 통과의식을 거쳐야만 갈 수 있는 곳이었데, 어느 순간부터 그 죽음이 아직 도래하지 않았음에도 저 세상을 경험할 수 있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공포는 바로 이 지점에서 발생한다.

공포는 미지에 세계 혹은 감당할 수 없는 현상에 대해 느끼는 인간적, 사회적 감정이다. 엄청난 재난이나 전쟁과 같이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한 인간과 사회는 자신에게 발생한(할) 것에 대해 공포를 갖는다. 이는 공포를 주는 존재에 대한 두려움과 이런 상황 자체에 대한 두려움 모두를 포함한다. 이를 라깡식으로 표현하면, ‘실재계’의 침입이다.

〈지옥〉의 관점으로 보면 이렇다. 평화로운 일상을 살고 있던 어느 날, ‘누군가’는 몹시 두려워하는 모습으로 시계를 쳐다본다. 약속된 시간이 지나자, 불현 듯 이 세상에는 존재하지 않는 3명의 거인들이 등장하여 그 ‘누군가’에 엄청난 린치를 가한다. 아무런 저항도 못하고 던져지고 얻어맞고 피투성이가 된 그는 결국 초월적인 능력을 행사하는 거인에 의해 불 타버린 형체로 변한다. 순식간에 발생한 끔찍한 사건이다.

〈지옥〉은 이 사건이 발생한 원인을 보여준다. 느닷없이 없이 등장한 천사에 의해 ‘누군가’는 지옥행을 고지 받는다. 정확한 시간이 예고되고, 그 고지를 들은 사람은 지정된 시간이 될 때까지 공포와 불안 속에 살아간다. 저항도 회피도 무시도 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한다.

인간 능력의 처절한 한계를 깨달은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 단지 남겨진 가족과 지인들을 위한 조그마한 대책을 마련하는 것 외에는! 그런데 이 공포의 극대화는 ‘시연’이다. ‘시연’은 ‘저 세상’에서 당해야할 고통을 ‘이 세상’에서 미리 맛보는 것이다.

‘죽음’의 단계를 아직 넘어서지 않았음에도, 짧지만 강렬하게 진행되는 ‘시연’은 고통의 당사자뿐 아니라, 이를 목격하는 타인에까지 엄청난 공포를 전이시키고 확장시킨다. 공포로 인한 거대한 패닉이 조성되고, 이미 인간은 통제 불능의 아노미 상태로 전환된다.

해결할 수 없는 현실적 재앙(시연)은 비단 개인의 영역에만 머물지 않는다. 사회문제로 확대된다. 무방비상태로 가혹하게 고통당하는 개인을 보면서 사회도 요동한다. 불안에 휩싸인다. 규범의 붕괴에 당황한다. 단지 타인만의 문제라면 무관심으로 대처할 수 있지만, 내게도 닥칠 수 있는 불가항력적인 현상이라는 사실은 불특정 다수를 무한 공포로 함몰시킨다.

이는 다시 사회전체의 이슈로 반복 재생된다.

공포를 대하는 방식 – 순응과 대응

예기치 못한 상황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반복되면, 인간과 사회는 해결책을 찾는다. 다시 라깡식으로 표현하면 ‘상징계’ 단계로 접어든 것이다. 상징계는 대처가 가능한 상태이다. 해결책은 두 가지 방향으로 나타난다. ‘순응과 대응’이다.

순응은 다시 두 가지로 나뉘는데, 담담히 죽음과 공포를 받아들이는 측면(조용히 죽어감)과 해석을 첨부해 이를 치환하려는 움직임이다. 이 때 등장하는 현상이 ‘왜곡’이다. 왜곡은 문제의 명확한 원인을 알 수 없을 때 내리는 일종의 ‘아니면 말고’식 처방이다.

왜곡의 가장 전형적인 현상이 사이비 종교단체(새진리회)와 이에 기생하는 폭력단체(화살촉)의 등장이다. 이들은 자신들 역시 문제의 본질과 원인을 명확히 알지 못하면서 피상적이고 감성적인 측면을 부각하여 여론과 동향을 왜곡, 강화한다. 이를 추종하는 무리가 많아질수록 영향력도 커지고 왜곡도 심해진다.

이 과정에서 인간의 이기적인 탐욕이 발생하고 용인되고 극대화된다. 대응은 문제 자체를 회피할 수 없더라도 좀 더 능동적인 대처를 가능하게 만드는 기제이다. ‘소도’의 등장이 대표적이다. 감당할 수 없는 재앙 자체를 해결하진 못하지만, 그 재앙으로 말미암은 후속조치들을 취함으로 좀 더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돕는다.

한국사회의 현실과 대응방안

〈지옥〉에서 공포를 묘사하는 방식과 내용은 한국사회 현실을 그대로 반영한다. 연상호 감독이 인터뷰에서 밝혔던 것처럼, 공포를 주는 존재인 ‘지옥사자’에 대한 가장 강렬하게 묘사는 무력한 한 개인에게 집단린치를 가하는 방식으로 표현된다.

그 자체도 엄청난 두려움을 야기하지만, 이는 나중에 받게 될 형벌의 1/10, 1/100에 불과하다. 더 큰 고통이 남아있다. 이 설정이 독자와 관객을 더욱 불편하게 만든다. 집단 따돌림, 무력한 개인에 대한 폭력, 회유와 겁박, 비상식의 일반화, 예기치 못한 해고와 재난, 사이비 종교의 난립과 이로 인한 사회적 손실... 현 한국사회에 나타난 고통과 공포의 증상들이다.

그런데 이런 공포와 고통은 아직 배움의 기간이며 본격적인 사회생활이 시작되지 않은 학교와 군대에서 횡횡한다. 암울함 미래가 펼쳐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 더욱 현실을 절망하게 만든다. 치유와 회복의 역할을 감당해야 하는 교회는 왜곡과 강화로 기득권 유지만을 주장할 따름이다. 역시 절망의 강화이다. 악순환의 고리를 끊는 방법은 없을까?

연상호 감독에 의하면, 이타적인 사랑만이 유일한 가능성이다. 아기를 살리기 위해 부모가 희생했듯이, 공포를 극복하는 대안은 누군가의 희생적인 사랑밖엔 없다. 우리 사회에 가장 절실히 필요하고 요구되는 덕목이기도 하다. 예수 그리스도의 가치가 더욱 도드라져 보이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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