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와 복음] 자연과 인간, 그리고 하나님을 향한 교감
[영화와 복음] 자연과 인간, 그리고 하나님을 향한 교감
  • 임명진 목사
  • 승인 2021.12.01 18: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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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바람 계곡의 나우시카》

미야자키 하야오(Miyazaki Hayao)는 한국인들에게 호불호가 많이 갈리는 감독이다.

애니메이션을 포함한 영화적 완성도와 주제 의식에 있어서는 찬사를 받을만하지만, 후기작품인 《바람이 분다》는 일본의 군국주의와 제국주의적 관점에서 만들어진 애니메이션이 아니냐는 일각의 주장 때문에 한동안 우익논란에 휩싸이기도 하였다.

그럼에도 가장 초기작인 《바람 계곡의 나우시카》를 포함한 그의 대부분 작품은 2021년의 시각으로 봐도, 주제와 스타일, 작화, 스토리와 구성에 있어서 탁월하다. 세계적인 거장임에 틀림이 없다. 극장판 애니메이션의 가장 초기작인 《바람 계곡의 나우시카》는 향후 그의 작품이 어떠할 것이며 지향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단적으로 드러내는 일종의 서문과 같은 영화로, 철저한 반전과 생태주의를 지향한다.

전쟁과 같은 무모하고 참혹한 사태는 다시는 일어나지 말아야 하며, 이로 말미암는 비극적인 생태계 파괴는 인류의 멸망만을 초래한다는 주제다. 때문에, 그는 인간과 자연의 연합과 공존을 강조한다. 영화도 그런 관점에서 볼 때 가장 적절하게 해석할 수 있다.

산업사회 패망 후 1,000년의 세월이 흘렀다. 지구는 마스크 없인 생활할 수 없는 오염된 세상으로 변했다(코로나 바이러스 상황인 현재의 지구와 유사하다). 오염된 숲인 ‘부해’(腐海)는 인류가 만들어낸 인간형 반생물 병기(핵무기)인 ‘거신병’(巨神兵, Giant God Warrior)이 초래한 결과다.

주인공 나우시카는 바다에서 계곡으로 불어오는 바람의 영향으로 부해로부터 보호되는 바람 계곡의 공주로, 부해로 나가 탐험하며 오염된 생물의 포자를 수집하여 청정한 상태에서 독성이 제거된 숲을 만드는 이상향을 꿈꾼다. 하지만, 어딜 가나 잔인하고 이기적인 욕망에 사로잡힌 인간은 존재한다.

토르메키아 군대의 광적인 욕심으로 인류는 다시 패망의 기로에 서지만, 자연과 교감하는 능력을 지닌 나우시카의 중재와 희생적인 헌신으로 결국 인간과 자연은 평화 상태를 유지하게 된다. 영화에서 ‘부해’는 부패한 숲을 이르는 말이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그 부해의 지하에는 깨끗하고 정화된 공기와 물이 흐른다.

겉으로 드러난 부해는 모든 사물을 오염시키는 존재로 보였지만, 사실은 오랜 시간에 걸쳐 공기와 물을 정화하고 있던 셈이다. 하지만, 전후 사정을 알 리 없는 인간은 모든 것을 파괴하고픈 유혹에 빠진다. 당장 눈에 보이는 과학적 결과물로 지저분한 세상을 초토화하고 새로운 왕국을 건설하려 한다.

근본적인 문제는 회피한 채, 쉽고 빠르게 문제를 해결하려는 얄팍한 방식을 취한다. 이런 태도는 결국 모두의 안녕과 평화를 위해 필요한 자연과 시간(희년)이라는 소중한 가치를 훼손한다. 인간은 자연과 더불어 도움을 주고받으며 사는 존재임을 망각한 결과다.

영화에서 나우시카는 어떤 의미로는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인간의 욕심으로 물들어 망가진 세상에 예언처럼 나타난 예수 그리스도는 인간과 자연, 인간과 하나님 사이에서 화해의 진정한 중보자이다. 십자가의 희생과 헌신으로 인간은 비로소 하나님과 교제할 기회를 얻었고, 죄와 이로 말미암은 형벌에서 구원할 길을 발견한다.

나우시카의 역할이 그렇다. ‘푸른 옷을 입고 황금 들판을 걷는 자. 잃어버린 대지와의 인연을 다시 맺어, 우리를 푸른 대지로 인도할 지어다’라고 태피스트리(tapestry)에 예언된 나우시카는 메시아로 예언된 예수님과 오버랩 된다.

특히 모든 자연 만물과 교감하며 집단 지성체의 상징이자 괴물이기도 한 ‘오무’와 소통하는 모습은 초기 에덴동산과 마지막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자연과 교감하며 사는 인간(아담)의 모습을 연상케 한다.

결국, 자연 만물을 통제하며 소통하는 두 번째 아담인 예수님은 세상을 구원하지 않았는가! ‘문명과 건설’이라는 미며 하에 자연에 대한 지배와 파괴를 일삼은 인간은 결국 멸망하게 마련이다. 구원의 길은 없는가? 화해와 연합, 공존과 소통이다. 이는 근원적인 기독교의 가치와도 맞닿는 주제이다.

하지만 인간끼리 교통하기도 힘든 현실을 바라보면 희망보다는 절망이 앞선다. 그럼에도 우리에겐 아직 기회가 있다. 너무 늦기 전에 바로 옆 사람부터 화해를 시도해 보자.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보이지 않는 교감의 터널이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건설되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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