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와 복음] 비자발적 고독의 길을 걸어야 하는 당신에게
[영화와 복음] 비자발적 고독의 길을 걸어야 하는 당신에게
  • 임명진 목사
  • 승인 2021.12.01 15: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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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나의 산티아고》

‘산티아고 순례길’(Route of Santiago de Compostela)은 한국인들에게 매우 익숙하다.

최근엔 유명 연예인들의 경험담도 있었고, 방송 프로그램에서 그 소재로 순례길을 다루면서 시청자들의 버킷 리스트 상위에 랭크되기도 했다. 1987년 파울로 코엘료의 소설 <순례자>가 출간된 이후 유명해진 이 길은 1993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대부분 순례자는 프랑스와 스페인을 지나는 800km에 이르는 루트인 ‘까미노 프란세스’(Camino Francés)를 여행한다. 그렇다면 산티아고 순례길은 무엇이며 그 유래는 어떻게 되는가?

‘산티아고’(Santiago)는 예수님의 제자 야고보를 지칭하는 스페인식 어법이다. 영어로는 세인트 제임스(Saint James)로 읽힌다. 즉, 예수님의 제자 야고보가 복음을 전하려고 걸었던 길에서 유래한다. 하지만, 현재는 종교적인 의미보다는 사람들의 휴식과 안식, 재충전의 기회로 활용되곤 한다.

《나의 산티아고》는 이 순례길을 소재로 제작된 영화 중 하나이다. 줄리아 폰 하인츠 감독이 제작한 이 영화는 독일의 유명 연예인 하페 케르켈링의 실제 여행기를 다룬다. 하페는 성공의 가도를 달리다 삶의 무의미를 깨닫고 모든 것을 내려놓고 길을 떠나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여행이 항상 낭만으로 가득하지는 않다. 첫날부터 내리는 장대비에 고생하고, 부르트는 발과 발바닥 물집, 순례객과 함께 사용하는 숙소는 더없이 불결하고 불편하다. 물질문명의 편안과 안락에 취해 살다가 마주하는 고생과 고통의 길은, ‘이 길을 계속 가야 하는가?’라는 원초적인 질문부터 점검하게 만든다.

길을 걸으면서 하페(데비드 스트리에소브)는 사람들을 만난다. 삶의 통찰과 비밀을 간직한 여인 스텔라(마르티나 게덱), 막무가내식 잡지기자 레나(카롤리네 슈허)는 하페의 길동무이기도 하지만, 삶을 생각하게 만드는 멘토이기도 하다. 하페는 길을 걸으면서 질문한다.

‘그 이름이 무엇이든 신은 정말 존재하는가?’

‘진짜 나는 누구인가?’

‘길을 걸으며 무엇을 발견해야 하는가?’

하지만 여행을 거의 마칠 때까지도 그는 답을 찾지 못한다. 어쩌면 무언가 답을 기대하고 바라는 그 마음이 불현듯 다가오는 깨달음을 방해하는 요소였는지도 모른다. 비워야 채울 수 있는 법이다.

영화는 하페의 깨달음의 과정을 유년시절 자신의 과거와 조우를 통해 묘사한다. ‘혼자 걸어야 답을 찾을 수 있다’는 스텔라의 선문답 같은 조언에 처절한 외로움을 느끼고 절망과 포기의 낭떠러지에 다다를 즈음, 비로소 내면의 어린 자아를 만나 깨달음을 얻는다.

‘나’를 찾는다는 것은 내 안에 숨어있던 유년 시절의 ‘자아’를 만나는 것이었다. 자아와의 만남은 혼자가 아닌 ‘우리’를 경험하게 한다. 철저한 고독과 외로움에 괴로워했지만, 내 안의 자아를 만나는 순간 ‘나’에서 ‘우리’로의 성장을 이루고, 이는 고독의 자유를 향유하게 한다.

그리고 역설적으로 그런 자유를 누린 자에게 비로소 사람들이 따르고 소통의 길이 펼쳐진다. 영화는 종종 ‘오늘의 교훈’이라는 제목으로 하페의 깨달음을 자막으로 처리한다. 일상의 소소한 발견들이다. 그것은 최정상의 인기를 구가했던 화려한 지난날에는 절대로 찾지 못했던, 소박하지만 소중한 경험들이다.

길(way)은 우리에게 ‘걸으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 길을 걸으며 우리는 미지의 세계와 만난다. 하지만 무언가를 얻으려면 포기도 있어야 한다. 물질과 편안과 풍요를 내려놓는 순간, 전혀 예기치 못했던 삶의 의미를 발견한다. 무엇이 진짜 소중한 것인지는 물론 자신의 선택에 달려있다.

코로나 변이 바이러스로 여행을 향한 우리의 희망이 꺾인 듯하다. 하지만 본래 우리 삶 자체가 본향을 향하는 순례길이다. 그 길이 항상 평안하지만은 않은 것은 우리가 살아있다는 또 다른 반증이기도 하다. 어딘가를 마음껏 나서기도 쉽지 않은 요즘, 내면의 자아와 만나는 시간을 가지며 연말을 준비하면 어떨까?

우리를 복잡하게 만들고 호기심 가득하게 만드는 세상의 풍조에서 잠시 떠나 비자발적 고독여행이라도 참여하다 보면, 예기치 못한 기쁨을 만끽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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