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말씀 외에 창조의 다른 수단은 없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면 그렇게 존재하게 된다(Let there be!). 시편은 이를 반영한다. “한 마디 주님의 말씀으로 모든 것이 생긴다”(시 33:9, 148:5). 이러한 하나님과 창조의 과정에 대한 성경의 진술은 인간의 사상과 종교사에 대한 획기적인 전기를 마련한 것이다. 성경은 신화론적 사유의 한계로부터 벗어나 있으며, 마술의 악한 영향으로부터 종교를 해방시킨다.
“해가 찬란한 빛을 낸다고 하여, 해를 섬기지도 않고,
달이 밝고 아름답다고 하여, 달을 섬기지도 않았다.” (욥 31:26)
다음, 창조주가 등을 살짝 돌리고 양팔을 날개처럼 좌우로 뻗은 채 장엄하고 위엄 있게 돌진해올 때 엄청난 폭풍을 몰고 오는 듯하다. 하나님은 왼팔로 달을, 오른팔로 해를 가리킨다. 우리는 그분의 모습을 전율을 일으키며 바라볼 뿐이다. 여기서 미켈란젤로는 예레미야에 의존하고 있는 모습이다. “주께서 큰 능력과 펴신 팔로 천지를 지으셨다”(렘 32:17).
오렌지빛을 띤 찬란하게 빛나는 태양이 무시무시한 굉음을 내면서 다가오는 반면, 화면 오른쪽의 달은 우유빛같은 흰색으로 차갑게 그려졌다. 회반죽 자체의 실제 색깔이다. 달 쪽을 향해 있는 몸의 좌측 반에는 그림자가, 해 쪽을 향해 있는 우측 반에는 강렬한 빛이 드리워져 있고, 창조주 바로 옆의 한 천사는 눈부심을 피하려는 듯 팔을 들어 해를 가리고 있다.
하나님의 외투자락 사이로 그려진 천사들은 아직 창조되지 않은 하와가 아니라 지혜서에 언급된 지혜(sophia)로 해석하는 것이 좋을 듯싶다. “지혜로 하늘을 만드셨다. ‘그의 사랑 영원하시다’”(시 136:5). “지혜는 하느님께서 떨치시는 힘의 바람이며 전능하신 분께로부터 나오는 영광의 티없는 빛이다. 그러므로 티끌만한 점 하나라도 지혜를 더럽힐 수 없다”(지혜서 7:25). “맨 먼저 조성된 인류의 아버지가 홀로 창조되었을 때에 그를 보호해 준 것이 지혜였으며 그가 죄를 지었을 때에 그를 구해 준 것이 또한 지혜였다”(지혜서 10:1). “지혜는 저 모든 것들보다 먼저 창조되었으며 현명한 이해 역시 태초로부터 있다”(집회서 1:4).
하나님의 오른손이 태양의 원판을 건드리는 데 반해, 그림 왼편에 땅과 식물의 창조 부분에서는 익살스러운 화가의 모습을 볼 수 있다. 하나님이 엉덩이를 드러내 보이면서 태양을 돌아서 가는 모습을 그려놓았기 때문이다. 이뿐만 아니라 그 밑으로 양 발 사이로 옷자락이 휘날린다. 화가의 익살과 웃음, 여유와 풍자가 아닌가. 출애굽기에서 모세에게 하신 말씀, “너는 내 뒷모습만을 볼 수 있으리라”(출 33:23)을 상기시킨다.
등을 돌리신 창조주는 땅으로부터 식물과 풀이 자라도록 오른손으로 관목을 가리킨다. 그러나 식물은 다른 형상들에 비해 매우 작다. 화가의 자연에 대한 관심은 매우 인색하다. 이제 창조주 하나님이 해와 달을 만드신 후 지구를 바라보면서 인간을 향해 가까이 다가오실 제, 하늘과 같은 하나님이 여릿여릿 멀리서 내 가슴으로 가슴으로 점점 스미어 올 것이다. 하나님의 숨을 들이마신 인간은 능금처럼 그의 영이 발갛게 익을 것이다.
심광섭 교수
(예술목회연구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