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겔칼럼] 존재 이유의 위기
[데겔칼럼] 존재 이유의 위기
  • 박충구 교수
  • 승인 2021.11.04 08: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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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저명한 신학자 몰트만(Jürgen Moltmann)은 그의 <희망의 실험>이라는 책 서문에서 오늘의 기독교가 이중의 딜레마에 빠져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현실 세계와 밀접한 관계를 맺으려 하면 할수록 지금까지 지켜오던 신앙의 정체성에 위기가 오고, 신앙의 정체성을 지키려 하면 할수록 세상과의 관련성을 상실하는 위기다. 이 세상에서 존재 이유를 명료하게 밝혀야 할 공교회가 세상과의 관계 맺기에 어려움이 있고, 자기 정체성을 지키기에도 어려움이 있다는 의미다.

신학적 바탕이 깊고 종교개혁 정신을 이어받은 독일 교회 안에서 이런 딜레마가 지적되고 있는 현실을 감안하면 우리 한국교회는 사회적 관련성에서도, 자기 정체성에서도 더 깊은 위기를 겪고 있다고 생각된다. 사실 독일 교회는 사회적 관련성 속에서 신앙의 정체성을 해명하기 위한 노력을 세계의 어느 교회보다 성실하게 수행해 왔다. 독일 교회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면 2차 대전 이후 기독교인이 사회에서 조우하는 문제들에 대하여 성서와 신학적 전통의 관점에서 매우 적절한 사회 윤리적 제안을 담은 문서들로 가득 차 있다.

2019년 기준 한국 교회의 교단 수는 374개, 그중 같은 이름을 붙이는 교파가 무려 284개나 된다. 한국 교회 평균 교인 수는 약 40명이고, 목사 수는 국민 650명에 1명이나 된다. 대한민국 인구가 오천만인데 교회는 어림잡아 8만 5천, 성직자는 10만 명이 넘는다. 반면 독일의 경우 인구 8천만에 교회 1만 5천 개, 성직자 1만 8천 명이 있다. 목사 한 사람이 국민 4,450명을 맡고 있는 셈이다.

인구대비 교회 수나 성직자 수는 우리가 독일의 10배나 된다. 독일 교회 목사의 평균 연봉은 주거 공간 제공과 함께 약 6,000만 원인데 비하여 한국 교회는 교회마다 차이가 많다. 2019년 통계에 의하면 전체 목사의 45%가 월 급여 100만원 미만인 것으로 밝혀졌다. 자발적 가난이 아니라 구조적 가난이 목사 가정의 삶을 황폐하게 만들고 있는 실정이다. 중대형 교회 목사들의 경우 은퇴와 더불어 교회로부터 반 강요하여 큰 지원을 받아야만 노후가 조금이라고 보장된다. 하지만 가난한 교회 목사들은 언감생심이다.

이런 형편을 겪으며 목회하는 이들이 과연 신학적 검증 작업을 할 수 있을까? 세상과의 관련성을 공고히 하기 위하여 끊임없이 급변하는 사회를 들여다보고 신앙인의 자기 정체성을 확인할 수 있는 사회 윤리학적 분석과 이해 능력을 가질 수 있을까? 강요된 가난의 굴레를 벗어날 수 없는 자리에서 생존을 위한 목회는 신학적 사유와 윤리적 가치들을 뒤로 밀어 놓게 된다. 생존가치가 무엇보다 더 앞서기 때문이다. 결국 한국교회는 사회와의 관련성의 위기, 기독교적 정체성의 위기에 더하여 생존 그 자체의 위기가 겹치고 있는 자리가 되고 있다.

더구나 인터넷이 불러온 사이버스페이스 열린 공간에서 다양한 기독교의 왜곡 현상과 목사의 자의적 행위들이 여과 없이 공개되면서 기독교 신뢰의 위기를 심화하고 있다. 올해도 우리는 종교개혁 주일을 지내며 종교 개혁의 의미를 되새기고 있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교회의 분열과 분파가 초래한 구조적 모순과 잉여 교회와 목사들의 그림자가 한국 교회에 깊은 어둠의 그늘을 드리고 있는 현실을 직시하는 것이다. 생존의 가치를 앞세우다가 기독교의 사회적 관련성과 자기 정체성의 지평을 상실한 교회와 목사는 사실 신학적으로 그 존재 이유를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박충구 소장

전 감신대 교수

생명과 평화 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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