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데겔설교] 종교개혁 504주년을 맞이하여! 주님의 피로 사신 교회! 병든 어머님도 어머님!
[이달의 데겔설교] 종교개혁 504주년을 맞이하여! 주님의 피로 사신 교회! 병든 어머님도 어머님!
  • 최윤배 목사
  • 승인 2021.10.29 22: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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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윤배 목사 (前 장로회신학대학교 교수) 기고
어머니의 손. 픽사베이 이미지.
어머니의 손. 픽사베이 이미지.

사도행전 20장 17절에서 38절까지 말씀은 바울 사도가 밀레도에 초청한 에베소교회 장로들에게 행한 고별설교의 내용과 관계되어 있습니다. 밀레도에 도착한 바울 사도는 자신이 3년 동안 사역했던 에베소교회 장로들에게 그의 생애 마지막이 될 수 있는 고별설교를 하기 위해, 밀레도에서 전령을 에베소교회에 보냈습니다. 바울의 전갈을 받은 에베소교회 장로들은 지체치 않고 밀레도에 있는 바울 사도에게 도착했습니다.

저는 2007년 6월 18일부터 7월 2일에 터키-그리스 성지답사 중 6월 24일 주일에 부서진 네 개의 큰 기둥이 아직 남아 있는 에베소교회 터에서 직접 예배를 드린 기억과 감격이 생생합니다. 마르틴 루터가 로마서와 갈라디아서를 선호했다면, 개혁파 종교개혁자인 칼뱅과 마르틴 부처(Martin Bucer)는 교회에 대한 내용이 많이 담긴 에베소서를 선호했습니다. 마르틴 부처는 그의 초기 1527년에 『에베소서 주석』을 저술하였고, 생애 말기에도 영국에서 에베소서를 강의하다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바울 사도는 에베소교회 장로들에게 주님의 피로 사신 교회를 사랑하는 네 가지 방법을 특별히 기억하고 실천하기를 간곡하게 부탁했습니다. 에베소교회 직분자들과 성도들은 첫째, 하나님께서 그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에베소교회를 사셨다는 사실을 철저하게 믿고 가르칠 것, 둘째, 에베소교회를 섬기기 위해서 성령님께서 각자에게 직분과 사명을 주셨다는 사실을 철저하게 믿고 가르칠 것, 셋째, 겸손한 자세로, 눈물과 땀을 흘리면서, 환란을 받으면서도 “하나님의 은혜의 말씀”, 곧 하나님의 진리에 기초하여 교회를 섬길 것, 넷째, “주는 것이 받는 것 보다 더 복이 있다”라고 직접 말씀하시고 몸소 실천하신 예수님의 이웃 사랑의 실천적 모범을 교회 안과 밖에서 몸소 실천할 것.

저는 어렸을 때 우연히 빨랫줄에 걸린 다 닳아 낡아진 저의 어머님의 누덕누덕 기운 무명 속옷을 본 기억이 납니다. 그 이후로 저는 옷은 물론 다른 것에 대해서도 어머님께 투정을 부리거나 불만의 말을 쉽게 할 수 없었습니다. 우리의 모든 어머님들은 자식들에게 보다 따뜻한 새 옷, 보다 시원한 새 옷을 마련해 주시기 위해 자신들의 닳아빠진 옷에 바느질을 한 번 더 하시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습니다.

종교개혁자 칼뱅은 교회의 본질 중에 하나로 “신자들의 어머니로서의 교회”라는 교회상(敎會象)을 누구보다 강조했습니다. 국어사전에서 “어머니”는 자식을 낳은 여성 내지 자식을 가진 여성을 자식에 대한 관계로 일컫는 말로 정의하고, “어미”는 어머니의 낮은 말 또는 동물의 암컷을 그 새끼와의 관계로 일컫는 말로 정의하고 있습니다. 어머니가 일반적으로 갖고 있는 상과 이미지는 생명체인 자녀를 임신하여, 낳아 기르고, 훈계하고, 가르치는 양육과 교육의 상을 지닌다고 말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면 칼뱅이 교회의 본질 중의 하나로 그토록 강조했던 “신자들의 어머니로서 교회”는 무엇을 뜻합니까?

신자들이 하나님의 자녀들이며, 성도들이라고 할 때, 그리고 교회가 그들의 어머니라고 할 때, 어머니로서 교회는 자신의 자녀들을 낳아서, 양육하고, 교육하는 책임과 기능을 가지게 됩니다. 어머니로서 교회상은 칼뱅이 독창적으로 창안해 낸 것이 아니라, 우리가 이미 잘 알고 있다시피, 고대교부들 중에서 키프리아누스나 아우구스티누스에게서도 발견되는 교회상입니다.

칼뱅은 교회의 필요성을 중심으로 교회의 목적과 기능에 대해서 언급한 뒤, 처음으로 언급하는 것이 바로 어머니로서의 교회상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교회의 품속으로 자녀들을 모으시기를 기뻐하셨는데, 이는 그들이 유아와 아동일 동안 교회의 도움과 봉사로 양육 받을 뿐만 아니라, 어머니와 같은 교회의 보호와 지도를 받아 성인이 되고, 드디어 믿음의 목적지에 도달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칼뱅은 계속해서 부부관계의 비유와, 키푸리아누스가 주장한 “만약 당신이 교회를 당신의 어머니로서 가지지 않는다면, 당신은 하나님을 당신의 아버지로서 가질 수가 없습니다”라는 글을 인용하여, 어머니로서 교회와 자녀로서의 신자들 사이에 결코 서로 분리될 수 없는 관계를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하므로’(막10:9), 하나님이 아버지가 되는 사람에게는 교회가 어머니가 되어야 합니다. 율법하에서 이러했을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오신 후에도 이러했는데, 이는 우리가 하늘에 있는 새 예루살렘의 자녀들이라고 한 바울의 가르침과 같습니다.”(갈4:26)

이상에서 볼 때, 칼뱅이 이해한 ‘신자들의 어머니로서 교회’는 교회와 신자들 사이에 상호 뗄 수 없는 불가분리의 관계를 말해줍니다. “완전하신 하나님을 사랑하는데, 불완전한 교회를 사랑하지 않는다”라는 말은 전적으로 모순된 말입니다. “완전하신 하나님을 사랑하므로, 불완전한 교회도 사랑한다”라고 말하든지, 아니면, “완전하신 하나님도 사랑하지 않으므로, 불완전한 교회도 사랑하지 않는다”라고 말하는 것이 논리적으로나 신앙적으로 맞는 표현일 것입니다.

인간이나 동물의 경우, 자녀나 동물의 새끼는 장성한 뒤에 어머니나 어미로부터 독립해야만하고, 독립하여 스스로 살아갈 수가 있지만, 신자들은 장성한 뒤에도 어머니로서 교회의 품을 떠나서는 결코 생존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지금(지상에서 매일 경험하는, 필자주) 가시적인 교회를 논할 생각이므로 교회를 아는 것이 얼마나 유용하고 얼마나 필요한가를 ‘어머니’라는 단순한 칭호에서 배워야 합니다.

이는 어머니가 우리를 잉태하고, 낳으며, 젖을 먹여 기르고, 우리가 이 육신을 벗고 천사같이 될 때까지(마22:30) 보호하고, 지도해 주지 않는다면 우리는 생명으로 들어갈 길이 없기 때문입니다. 연약한 우리는 일평생 교회에서 배우는 자로서 지내는 동안 이 학교에서 떠나는 허락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교회의 품을 떠나서는 죄의 용서나 구원을 받을 수가 없는데, 이것은 이사야(사37:32)와 요엘(욜2:32)이 말한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무지와 태만과 경솔함과 약점 때문에 교회라는 기관을 주셨으며, 교회는 그리스도의 복음의 말씀과 성례전과 권징, 기도와 직분 등, 여러 가지 수단들과 질서들을 통해서 신자들에게 신앙의 양식을 공급합니다.

어머니로서의 교회는 특별히 신자들에게 양육과 교육과 훈계와 지도와 보호의 책임이 있다면, 신자들은 하나님의 육아원인 교회, 하나님의 학교인 교회, 하나님의 훈련소인 교회를 떠나지 말고, 하나님께서 마련해주신 어머니로서의 교회의 모든 도움의 수단들을 활용해야 합니다. 모든 종류의 학원과 학교와 훈련소에는 입학과 졸업 또는 수료라는 제도가 있지만, 하나님의 교회에는 세례를 통한 입학은 있어도 졸업 또는 수료가 전혀 없고, 임종 순간에 바로 예수님의 품에 안기고, 예수님께 위탁됨으로써, 천국환송식과 천국 위탁식만 있습니다.

저는 오랫동안 영락교회에서 장년부 성경공부를 가르쳤습니다. 그때 영락교회 50주년 기념관의 베다니홀의 천장 일부가 떨어져서 장로님 한 분이 크게 다치시고, 안수 집사님 한 분이 순교하셨습니다. 당시 장로님과 안수 집사님이 떨어진 천장판을 몸으로 버티시는 희생을 하셨기에 모든 학생들과 교사들이 무사히 대피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그 다음 주일에 소식을 듣고, 성경공부반을 시작하면서 어쩌면 목사인 제가 차라리 성경공부를 가르치다가 주님 곁에 가야 할 자리가 아니었는가 하고 생각하면서 말문이 막혀 바로 성경공부를 시작하지 못했습니다. 김응락 장로님의 순교비가 세워진 영락교회에는 장로님 한 분과 안수집사님 한 분의 순교의 피가 뿌려진 교회가 되었습니다. 초대교부 터툴리안이 주장했다고 전해지는 “순교자의 피는 교회의 씨앗”이라는 말이 생각났습니다.

예수님의 보혈로 산 바되고, 순교자의 피와 목회자들과 성도들의 눈물과 땀과 헌신으로 얼룩진 지상의 교회는 어떤 교회도 완벽한 100점짜리 교회가 없고, 다만 주님의 재림시까지 보다 더 거룩한 교회로, 보다 더 순전한 교회로, 보다 더 멋진 교회로, 보다 더 아름다운 교회로 성장해 가고, 발전해 가야 할 책임과 사명과 목표가 있는 “도상에 있는 교회, 길 위에 있는 교회”입니다. 만약 우리가 지상에 있는 어느 교회를 100점짜리라고 한다면, 그것은 신학적으로 문제가 있습니다.

지상에 있는 모든 교회는, 정도 문제이지, 알곡과 가라지가 함께 섞여 있는 “혼합된 교회”(mixta eccelsia, permixta ecclesia)입니다. 로마천주교회는 복자(福者)나 성자(聖者) 제도를 가지면서, 교황 무오설을 주장하지만, 종교개혁 전통에 서 있는 대부분의 교회는 이것을 부인하고, 성경 무오설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종교개혁자 루터의 주장을 응용한다면, 지상의 거룩한 교회와 성도(聖徒)는 “의인인 동시에 죄인”입니다.

그러므로 바울 사도가 앞에서 권면한 대로 모든 교회와 성도는 밖으로부터 오는 원인으로, 그리고 안으로부터 오는 원인으로 문제가 생길 수가 있고, 병들 수가 있습니다. 옛날의 고려장(高麗葬) 제도는 늙고 병드신 부모님에 대한 사랑과 효성이 부족하여 생긴 제도이겠지요. 진짜 부모님에 대한 사랑과 효도는 부모님이 늙고 병들었을 때 나타나는 것이겠지요. 마찬가지로 우리가 어머니로서의 교회 사랑은 교회가 어려울 때, 교회에 문제나 병이 생겼을 때 나타나는 법입니다.

부모님은 늙게 되어 있고, 병들게 되어 있습니다. 지상의 교회는 100점짜리 교회가 없기 때문에, 지상의 교회도 문제가 생기고 병들 수가 있습니다. 교회에 대한 성도의 사랑은 바로 교회가 어려움에 처할 때 우리의 태도와 자세와 행동을 통해 정확하게 나타납니다.

지금도 일부 안티 기독교인은 교회를 비난하고, 심지어 교회에 방화하고 싶다는 이도 있다고 합니다. 심지어 일부 기독교인조차도 교회에 유리하지 않는 언행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교회의 문제에 대한 건설적인 비판 자체를 정죄시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그러나 교회를 위한 건설적인 비판을 할 때조차도, 교회를 사랑하는 마음과 교회를 살리고자 하는 마음이 반드시 전제되고, 선행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사람들이 교회를 향해 돌멩이를 던지고, 교회를 방화하려고 할 때, 성도들은 교회 안에 떨어진 돌멩이를 줍고, 화재를 진압하기 위해 교회에 들어갔다가, 그 돌멩이에 맞고, 불에 그슬려 상처를 입거나 목숨까지 잃는 것이 바로 순교인 셈이지요.

제네바 종교개혁기념비. 왼쪽부터 파렐,칼뱅, 베즈, 녹스 석상. 출처 픽사베이
제네바 종교개혁기념비. 왼쪽부터 파렐,칼뱅, 베즈, 녹스 석상. 픽사베이.

저는 종교개혁504주년을 맞이하는 오늘날 우리에게 어머니로서의 교회, 건강한 어머니이든지 병드신 어머니이든지, 어머니로서의 교회에 대한 사랑이 회복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오래전에 저는 “병드신 어머님도 어머님이다”라는 제목으로 설교한 적이 있었는데, “병드신 어머님도 어머님인데, 병들고 늙으신 어머님의 속을 썩이고, 흔한 약 한 첩 지어드리지 못하고, 그 어머님을 사랑하지 못하고, 그 어머님을 고려장에 보내려 하고, 병든 교회를 사랑하지 못한 우리의 죄를 먼저 회개합시다!” 라는 내용으로 울면서 설교한 기억이 납니다. 그 당시 제 설교를 들은 어느 교육전도사님을 통해 설교 제목과 내용을 전해들은 어느 목사님께서 최근 『한국기독공보』에 기고하신 글 속에서 그 내용을 언급하셨더군요.

주님은 자신의 보혈로 모든 교회들과 성도들을 사셨기 때문에, 한 교회 한 교회, 한 성도 한 성도에게 특별한 관심을 가지십니다. 제가 어렸을 때 이웃 사람이 제 어머니께 잘못을 따지면, 제 어머님은 화를 내지 않고, 부드럽게 웃으셨는데, 저의 잘못과 흉을 보는 어떤 이웃 사람에게는 너무나도 크게 화를 내는 것을 보았습니다. 왜냐하면, 제 어머님은 저를 잉태하시고, 배를 아파가면서 낳으시고, 기르신 자식, 막내아들이기 때문이겠지요.

우리 주님께서 가장 유의해서 보시는 것이 자신의 피로 사신 모든 교회들과 성도들입니다. 주님은 자신을 핍박하고, 십자가에 못 박은 사람을 위해서는 사죄의 중보기도를 올리셨지만, 자신의 보혈로 사신 모든 교회들과 성도들이 핍박을 당할 때, 가장 유의하시고, 가장 관심을 가지시고, 가장 심각하게 보십니다.

그리고 하나님 아버지의 선택과 뜻과 경륜 속에 있는 하나님의 모든 교회들, 성자 예수님의 보혈로 사신바 된 하나님의 모든 교회들, 성령님께서 직분자와 사명자를 세우신 하나님의 모든 교회들을 위해서 우리가 드린 머리카락 하나만큼의 헌신과 깨알 하나만큼의 사랑의 수고를 결코 잊지 않고, 기억하시고, 흘러넘치도록 복과 상급을 주실 것입니다. 왜냐하면, 구원과 영생과 복은 교회를 통해서 우리에게 전달된다는 하나님의 굳은 약속이 있기 때문입니다.

마지막 당부의 말씀을 드리면서 이 글을 마치고자 합니다. 교회를 가지면, 모든 좋은 것을 다 소유한 셈이 되고, 교회를 잃거나, 교회를 버리거나, 교회를 떠나면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을 떠나서, 구원과 영생과 모든 복과 상급도 잃을 수 있기 때문에, 교회를 버리고, 교회를 떠나고, 교회를 잃어버리는 것은 성도들에게 무엇보다도 치명상이 될 수 있습니다. 건강한 교회도, 병든 교회도 우리를 낳아주시고 길러주신 어머님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모든 교회를 목숨을 바치면서까지 사랑합시다!

최윤배 목사((前 장로회신학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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