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칼럼] 미켈란젤로의 “해와 달, 땅과 초목의 창조”(1)
[전문가 칼럼] 미켈란젤로의 “해와 달, 땅과 초목의 창조”(1)
  • 심광섭 교수
  • 승인 2021.10.25 11: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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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켈란젤로, <해와 달과 초목의 창조>, 1511

 

미켈란젤로의 이 그림을 처음 보고 적잖게 놀랐던 기억이 새롭다. 하나님을 상징으로 작게 그린 것도 아니고 이렇게 대놓고 그렸던 역사적 사실에 놀랐고, 하나님이 한 화면에 두 번 등장한다는 사실에 놀랐고, 그리고 무엇보다 뒤로 돌아선 인물이 하나님이고 몸의 부끄러운 부분으로 생각했던 하나님의 엉덩이까지 실팍하게 그려졌다는 사실에 화들짝 놀랐다. 앞이 깜깜해졌다. 생각이 멈추고 호흡이 잠깐 정지했다. 신학자는 미켈란젤로 이후 500년이 지나서야 셀리 맥페이그(Sallie McFague)에 의해 비로소 <하나님의 몸>(Body of God, 1993)에 관해 말하지 않는가. 나는 이 그림을 나의 저서 『예술신학』(2010)의 표지로 삼았다.

이 그림은 셋째 날 땅과 초목의 창조와 넷째 날 큰 빛(해)과 작은 빛(달)과 별의 창조를 한 화면에 담았다. 성경대로 하면 그림의 왼쪽부터 시작해야겠지만 오른쪽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미켈란젤로는 영원한 하나님이 여러 자세를 취한 모습을 그렸다. 감상자를 마주 보고 다가오는 이글거리는 하나님의 얼굴, 뒤돌아선 하나님의 엉덩이, 팔을 뻗어 손가락을 내미시는 하나님 등 항상 다른 모습으로 자신을 드러낸다.

미켈란젤로는 교회미술사상 처음으로 신성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얼굴을 그림으로써 이를 보여주었다(니그, 『미켈란젤로』, 109). 동방정교회도 하나님의 형상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는 십계명의 둘째 계명 때문에 성상을 그리지 못하다가 하나님께서 사람의 몸을 입으신 성육신의 사건을 근거로 성상을 그렸으며, 삼위일체를 묘사하는 성화까지는 나타났으나 성부 하나님을 독자적으로 그리진 못했었다. 그런데 미켈란젤로는 이 한계를 부순 대담한 사람이다.

미켈란젤로는 둘째 계명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웠다. 그는 모든 기독교를 위한 하나님의 이미지를 그렸다. 그는 남이 가르쳐준, 혹은 전해오는 하나님 이미지로 만족하지 못했다. 그는 구약의 욥이 결국 생명의 하나님을 귀로 들어 안 것이 아니라 제 눈으로 직접 뵈었듯이, 그의 실존 안으로 깊이 파고든 하나님을 체험했고 그것을 표현한 것이다. 그는 상징적 사유를 통해 이 문제를 과감히 헤쳐 나갔다.

창세기는 메소포타미아의 신화들의 단골 메뉴인 우주의 탄생기(cosmogony)나 신의 생애(theo-biography)는 물론이고 그리스 철학의 취미인 신의 존재(existent of God)에 관해서도 일절 언급하지 않는다. 성경에서 하나의 존재는 생명 자체로서 자명하다. 성경의 하나님 관념은 이야기 안에 포함되어 있는 것이지 추상적으로나 드러내놓고 만들어지지 않는다. 성경 전체는 하나님에 대한 개인적인 혹은 민족적(공동체적)인 증언이거나 경험이다. 그러므로 창세기는 곧바로 창조하시는 하나님의 활동으로부터 시작하는 것이며, 미켈란젤로는 이 생명의 하나님을 생생하게 드러낸 것이다.

 

심광섭 교수

(예술목회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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