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8호] 걷기와 넛지(Nudge)효과
[128호] 걷기와 넛지(Nudge)효과
  • 주필 이창연 장로
  • 승인 2021.10.21 13: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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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사이에 날씨가 갑자기 추워졌다. 완연한 가을 하늘로 바뀌었다. 어느새 공기도 달라졌다. 기후변화의 재앙은 세계 곳곳에서 터지고 있지만 계절의 변화는 아직 우리 곁에 남아 있다. 지난 주말 응봉산 팔각정에 올랐다. 유유히 흐르는 한강과 저녁노을, 그리고 구름이 만들어놓은 신묘한 장면들, 그만큼 우리가 만나는 풍광들이 유례없이 독특하고 이국적인 것을 느낄 수 있다. 몇 년 전 지중해 크루즈를 타고 가면서 지중해 수평선 너머로 넘어가던 석양을 바라보던 기분이었다. 이제는 바람이 제법 쌀쌀하다. 걷고 싶다. 걸어야 산다.

슬라보미르 라비치는 2차 대전 때 폴란드 기병 장교였다. 전쟁이 끝날 무렵 그는 스파이 누명으로 소련군에 붙잡혀 온갖 고초를 겪은 끝에 시베리아 오지의 수용소에 감금되었으나 탈출, 장장 7000km를 1년 이상 걸어 인도 주둔 영국군부대로 들어갔다. 인간의 한계를 넘는 처참한 탈출기는 ‘얼어붙은 눈물’(원제 The Long Walk)이란 제목으로 국내에서도 출간된 바 있다. 시베리아 숲과 고비사막, 히말라야 산악을 그는 걸어서 넘었다. 걷기가 자유를 향한 집념을 이룬 열쇠였던 셈이다.

‘나는 걷는다.’라는 책으로 알려진 프랑스 언론인 베르나르 올리비에도 이스탄불에서 서안(西安)까지 1만 2000km를 걸었다. 60대 나이에 1099일간 육체적인 한계점이 반복될 정도로 걷고 또 걸은 대기록이 이 책이다. 자기 스스로 옛 실크로드를 택한 올리비에에게 걷는 것은 그 자체로 목표이자 삶의 진정한 의미를 찾는 방편이었다. 두 발로 걷기야말로 다른 동물과 구별되는 인간만의 특징이다. ‘직립 보행하는 인간’(호모에렉투스:Homo Erectus)이 처음 나타난 게 150만 년 전이라 하니 제대로 된 걷기의 역사도 그만큼 오래된 셈이다. 직립보행하면서 두뇌용량은 커졌고 자유로워진 두 손으로 문명도 창조할 수 있었다.

근대 이후 걷기는 예찬의 대상으로 성격이 바뀌어진 듯하다. 칸트에게서 규칙적인 산책이 없었다면 서양근대철학이 어땠을까 싶다. 중년 이후엔 과학적인 걷기야말로 어떤 운동보다도 낫고, 하루 만보는 보약 못지않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그러나 현대인들은 걷기를 썩 좋아하지는 않는다. 차량과 엘리베이터는 기본이고 웬만한 곳에서는 에스컬레이터까지 있으니 걷는다는 게 인류에게 즐겁지 않은 일 같다. 골프장에 가서도 카트를 타는 사람들도 있다. 나 홀로 승용차 족으로 도심이 꽉꽉 막히더니 걷기 족과 두 발을 기본으로 하는 대중교통이용자가 늘어나는 추세를 보니 인간의 형태를 바꾸는 것은 좋은 말, 훌륭한 가르침이 아니라 어려운 경제, 고공 행진하는 휘발유값인 것 같다.

걷고 또 걸으면 육신에 좋고 사색할 수도 있고, 경제적이어서 좋다. 친환경적이어서 더욱 좋다. 필자는 일주일에 한두 번은 집 가까이 있는 서울숲에서 걷기를 한다. 거기에 동참한 분이 두레교회 L장로님이다. 그가 함께 하지 않았다면 중간에 포기했을지도 모른다. 시간을 정해 함께 걷는다. 15,000보 이상을 걷는다. 걸으면서 신앙 이야기, 세상 이야기, 정치 이야기 등 이슈를 가지고 대화를 나누며 걷는다. 함께 화장실도 가고 식사도 함께한다. 굳이 화장실 이야기를 하는 것은 넛지(Nudge)효과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자해서다.

넛지는 팔꿈치로 살짝 찌른다는 의미다. 오래 전 네덜란드에 갔을 때 암스테르담 스키폴공항 화장실의 남자 소변기 한가운데에 파리 그림이 그려져 있어서 신기하고 재미있게 생각했던 기억이 나서다. 지저분한 변기로 고민하던 네델란드 정부는 남자 소변기에 파리를 그려 넣었다. 모두 소변을 보면서 파리 그림을 향해 정조준하다 보니 밖으로 튀는 오줌이 80%나 줄었다고 한다. ‘깨끗이 사용합시다.’는 글보다 훨씬 더 좋은 효과를 냈다. 지금은 우리나라 남자 소변기에도 파리 그림이 많이 그려져 있다. 라오스에 갔을 때 공중화장실을 이용했는데 한글로 ‘당신이 저를 깨끗이만 사용해 주신다면 절대 당신의 크기에 대해서는 비밀로 하겠다.’고 씌어있어서 많이 웃었던 기억이 난다.

코로나가 끝난다 해도 교회의 정상예배의 회복은 어려울 거라는 전망이다. 그러나 절망하지 말고 부지런히 걷고 뛰면서 전도해야한다. 이런 때 일수록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에 자연스럽게 효과를 내는 ‘변기 속 파리 그림’ 같은 사고의 유연성을 가지고 전도를 해 보자. 비대면 기간에도 필자는 4명을 전도했다. 총회도 각부서의 진용이 다시 짜였으니 구두끈을 단단히 매고 열심히 뛰시기를 바란다. 하나님이 기뻐하실 일이다.

 

이창연 장로

소망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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