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55년 10월 16일에 영국 워체스터의 주교였던 휴 라티머(Hugh Latimer)가 화형주에 묶여 숨을 거두었다. 잉글랜드 레스터셔의 터카스톤(Thurcaston)에서 태어난 라티머는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공부했고, 졸업 후 대학의 설교자로 임명되었다. 이후 라티머는 토머스 빌니(Thomas Bilney)의 신앙고백을 듣고 회개와 각성을 경험했다. 메리 1세의 박해로 휴 라티머 주교는 니콜라스 리들리 주교와 크랜머와 함께 사형 선고를 받고, 16개월 뒤에 화형장에 서게 되었다. 앤드루 애서스톤이 쓴 ‘순교자들과 떠나는 여행’에 보면 그들의 순교장면이 자세하게 묘사되어 있다.
“라티머는 순순히 관리들이 옷을 벗기게 하고 셔츠만 입은 채 화형주에 섰다. 두 사람은 화형주에 서로 등을 맞댄 채 쇠사슬로 묶였다……두 사람의 고통이 빨리 끝나게 하기 위해 화약 한 자루를 줄 수 있도록 호송병 경계선 안에 도크를 설치하게 했다. 두 사람은 그것을 하나님의 긍휼의 표시로 감사히 받아들였다. 불이 붙자 라티머는 동료 순교자를 격려했다. “선한 위로 가운데 거하시오. 리들리 선생, 용기를 갖고 사내답게 행동합시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결코 꺼지지 않는 불을 잉글랜드에 붙일 것이오.” 라티머는 곧 눈을 감았다. 그리고 비교적 고통을 덜 받았다. 그는 이글거리는 불길 위로 두 손을 뻗었다. 그리고 곧 연기에 질식당했다.” (98쪽)
옥스퍼드에서 순교당한 휴 라티머를 기념하기 위해 1841년에 옥스퍼드에는 순교자 기념탑(Oxford Martyrs Memorial)이 세워지게 되었다. 이 기념탑은 당시 젊은 건축가였던 조지 길버트 스캇(George Gilbert Scott)에 의해 시작되어 약 2년에 걸쳐 완성된 작품이다. 이 탑은 뾰족한 첨탑 같은 형태를 지녔고, 옥스퍼드에 화형식이 벌어지고 약 300년이 지난 후 그들의 순교를 후손들이 기억하였으면 하는 마음으로 건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