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딛고 일어서시는 그리스도
죽음을 딛고 일어서시는 그리스도
  • 임재훈 목사
  • 승인 2018.05.09 07: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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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초기 르네상스 2세대 화가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1415~1492)는 마사초, 우첼로 등이 개발한 원근법의 규칙에 기하학, 대수학을 적용함으로 그들을 능가했다. 조르조 바사리는 ‘르네상스 미술가 열전’에서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를 화가이면서 수학자, 기하학자라고 언급했다.


피에로는 1474년 발표한 ‘회화에서의 원근법에 관하여’라는 논문에서 시각 현상의 공간과 거리의 문제를 수학과 기하학을 바탕으로 측정하여 도형화함으로 '미술을 과학적 지식의 표현형식'으로 정립하려고 했다. 피에로를 비롯한 초기 르네상스 화가들은 과학적 원근법, 명암법, 구성의 법칙, 해부학 등을 미술에 도입해 르네상스 회화를 자유학예, 인문학의 수준으로 격상시키고자 했다. 야코프 부르크하르트는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문화’(1860)에서 이런 점을 주목해 중세와 르네상스의 비연속성을 강조하는 경향을 지녔는데, 이는 19세기를 경험한 근대인이 자기 시대의 기원을 르네상스에 찾으려는 과도한 해석이었다.

15세기 콰트로첸토 시기의 작가들은 근대적 의미의 심미적 대상으로서의 작품 제작보다는 여전히 특정한 의도와 목적을 지니고 주문 생산되는 오브제의 내용 전달에 주력했다. 전 시대와 구별되는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제반 기법, 이론 도입의 목적이 성경의 메시지를 온전히 전달해 감상자가 더 깊은 믿음에 도달하게 하는 데에 있었던 것이다.

피에로의 작품 ‘그리스도의 부활’(1463)은 미술과 기하학, 원근법의 규칙과 시적인 표현의 융합을 통해 감상자에게 신앙적인 메시지를 전달할 뿐 아니라 자신의 신앙고백을 담은 초기 르네상스 기독교미술의 명작이다.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 그리스도의 부활, c.1463, 프레스코, 225x200cm,    이탈리아 산세폴크로 시립미술관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 그리스도의 부활, c.1463, 프레스코, 225x200cm, 이탈리아 산세폴크로 시립미술관

사복음서는 빈 무덤에 대해 언급할 뿐 그리스도의 부활 장면에 대해 구체적으로 보도하지 않는다. 부활을 인간 인지 능력으로 파악할 수 있는 영역 밖의 영적인 신비한 사건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그런 연유에서 그리스도 부활 장면의 묘사는 종종 작가들의 창의력 영역에 속하는 주제였으며 신앙고백의 영역이었다.

피에로는 그리스도께서 죽음을 이기고 일어나 시신이 안치되었던 석관을 한 발로 딛고 막 일어서는 순간을 엄밀한 삼각형 구도로 묘사하고 있다. 죽음을 상징하는 석관의 수평 마감은 화면을 상하로 구분 짓는데 죄와 사망, 어둠을 이긴 승리의 깃발을 든 그리스도는 수평의 경계를 극복하는 수직의 역동적 구성으로 묘사되고 있다.

기독교도상의 전통에서 부활한 그리스도는 대개 왼손에 승리의 깃발을 들고 오른 손으로 축복하는 자세를 취한다. 그러나 이 작품에는 이런 모습이 나타나지 않는다. 깃발을 든 오른손에서 느껴지는 긴장감과 왼발로 석관을 딛는 당당함 가운데, 엄정하고 근엄한 표정으로 정면을 응시하는 그리스도의 모습에서 범접할 수 없는 카리스마가 느껴진다.

그리스도 뒤의 배경을 이루는 좌우풍경은 계절이 다르게 묘사되어 있다. 화면 왼쪽은 겨울, 오른쪽은 봄을 나타냄으로 사망에서 생명으로, 어둠에서 빛으로, 죄에서 구원으로의 거듭남이 부활임을 의미하고 있다. 화면 전체가 상하좌우로 생명과 사망, 어둠과 빛, 죄와 구원의 영역을 상징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부활장면에는 일반적으로 비어 있는 동굴 혹은 석관의 벗겨진 뚜껑이 화면에 등장한다. 하지만 피에로는 죽음을 이긴 그리스도께서 석관을 열고 일어난다는 상식적인 내러티브보다도 부활이 철저히 영적인 신비라는 관점을 취한다.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제자들에게 나타날 때 닫힌 문을 드나드신 것처럼 석관뚜껑을 그대로 둔 채 일어나고 계시다.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 그리스도의 부활, 세부, 화가의 자화상(병사들 중 왼쪽   에서 두 번째)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 그리스도의 부활, 세부, 화가의 자화상(병사들 중 왼쪽 에서 두 번째)

석관의 수평 마감 아래에는 네 명의 병사들이 군장을 갖추고 창을 든 채 깊은 잠에 빠져 있다. 이 엄청나고 신비로운 부활의 기적이 일어나는 현장에 있으면서도 깨어있지 못하고 죽은 것처럼 잠들어 있다. 피에로는 잠든 병사 중 왼쪽에서 두 번째 병사의 모습에 자신의 자화상을 새겨 넣었다. 깊이 잠든 그의 머리는 석관으로 상징되는 죽음과 승리의 깃발로 상징되는 생명이 만나는 교차점에 위치함으로 그가 구원을 갈망하고 있음을 표현한다. 세상의 고단한 인생살이에 지치고 헛된 것을 구하다 낙심해 궁색한 모습으로 잠들어 있는 자신의 영혼이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생명과 능력에 힘입어 깨어나기를 소망하고 있다.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 그리스도의 부활, 기하학적 구성

 

 

 

 

 

 

임재훈목사독일 칼스루에벧엘교회 담임, 유럽기독교문화예술연구원장
임재훈목사독일 칼스루에벧엘교회 담임, 유럽기독교문화예술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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