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과 목회] 수족관에 갇힌 교회
[예술과 목회] 수족관에 갇힌 교회
  • 안준호 목사
  • 승인 2021.09.28 08:4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복음서에 나타난 예수는 가는 곳마다 문제를 일으켰습니다. 예수는 사람들에게 손가락질을 받던 세리들과 죄인들의 친구로 지냈습니다. 그들의 집에 들어가서 함께 식사를 나누셨고 함께 밤을 보내셨습니다. 세례요한과 그의 제자들은 광야에서 지내면서 금식하는 절제된 삶을 살았지만, 예수는 사람들과 더불어서 먹고 마셨습니다. 예수께서 행하신 첫 번째 기적은 물이 포도주가 되게 하신 것입니다. 맹탕인 세상 속에 예수는 물이 변하여 술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분은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마 10:34)”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국민학교 1학년 때부터 교회를 다녔습니다. 당시에는 교회를 다니는 일이 제일 신나는 일이었습니다. 목사님들은 교인들의 집에 숟가락이 몇 개이고 젓가락이 몇 개인지도 다 알 정도로 서로 허물이 없이 지냈습니다. 그런데 옛날 교인들의 집에는 ‘예수상’이 하나쯤은 걸려 있었습니다. 지금도 신앙생활을 오랫동안 한 집에는 ‘예수상’이 하나씩은 걸려 있습니다. 그런데 대부분 근엄한 표정의 긴 머리 서양 총각의 모습입니다. 그 머리 둘레에는 아우라가 그려져 있습니다. 그 예수상이 마치 예수인 줄로 알고 살았습니다. 그리고 때로는 잘못을 하면 그 예수상 앞에 두 손을 빌면서 “예수님, 잘못했어요. 용서해주세요”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신학교에 들어가서야 그 잘생긴 예수 초상이 사실은 허구에 가깝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오히려 예수님은 팔레스타인이니 오히려 동양 사람들에 가까운 모습이란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포도주와 먹는 것을 즐기셨고,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자유로운 사람이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분은 진정한 인간이셨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신학교를 다니면서 새로운 예수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분은 하느님보다는 오히려 인간의 모습을 하고 사람들과 어울리셨습니다. 그 일로 인해서 문제를 일으키셨습니다. 만약 그분께서 고리타분한 종교인들의 눈에 들기 위해서 노력하는 좀팽이였다면 나는 더 이상 예수를 믿지도 따르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목회를 하면서 저는 자연스럽게 동네 아저씨가 되었습니다. 한 십년 정도 커피를 타고 목공을 하다보니, 거룩해진 것은 별로 없지만, 이제는 조금 덜 화내게 되었고, 기대하고 실망하는 것에서 조금은 자유롭게 되었습니다. 너무 피곤한 날에는 “예수님도 오늘은 하루쯤 십자가에서 내려와서 편히 쉬셨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저도 그렇게 늘어져서 쉬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아침이 오면 일찍 일어나서 일을 하러 길거리로 나가야 합니다. 작은 교회 목사에게 일상은 선물인 동시에 마땅히 감당해야 하는 삶의 십자가이기 때문입니다.

교회를 나와서 길거리에서 일하면서 새로 알게 된 사람들이 있습니다. 오토바이를 타고 음식배달을 하는 젊은이들, 다소 우스꽝스러운 전통카트를 타고 도시를 누비는 요구르트 아줌마들, 그리고 빌딩의 경비와 청원경찰들이 제가 새롭게 알게 된 사람들입니다. 그들과 함께 트럭을 타고 이곳 저곳을 떠돌면서 길거리에서 교회를 바라봅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교회가 하나의 거대한 수족관처럼 보입니다. 이 세상의 혼란의 소리를 두꺼운 유리로 차단하고 그 안에서 꾸며진 가공 속에서 자기들만 끼리끼리 살아가는 것 같습니다. 그 가운데는 자유로운 영혼이였던 예수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이미숙과 이정재가 주인공으로 나온 영화 ‘정사’에서 이미숙의 남편으로 역할을 한 송영창은 영화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행복이 무엇인지 알아? 그것은 바로 저 수족관 안의 물고기와 같은 것이야. 제때에 밥을 주고 온도와 공기를 제때에 공급해 주니 아무런 걱정이 없는 것이지. 그것이 바로 행복 아니겠어” 어쩌면 이 시대의 교회는 수족관 안에서 행복을 느끼면서 살아가는 물고기의 신세와 다르지 않은 듯 합니다.

그러나, 예수가 가는 곳마다 문제가 생겼습니다. 예수는 거침없이 자유롭게 말하고 행동했습니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예수의 뒤에서 수군거렸습니다. 예수께서 하신 말씀과 행동은 예수님에게는 당연한 일이었지만, 그 당시 사회와 종교의 시각으로 볼 때는 불순하기 짝이 없는 행동이었습니다. 결국 예수는 자신이 했던 말과 행동으로 십자가에 달려 처형을 당해야 했습니다. 예수를 믿는 것은 수족관 안의 가공된 평화를 누리는 것이 아니라, 칼이 되어서 세상을 바꾸는 일이라고 믿습니다. 종교부지 안에서 만족하고 감사하면서 세상의 특권을 자랑할 것이 아니라, 수족관을 깨고 강과 바다로 나가는 목사들과 신자들이 희망입니다.

 

안준호 목사

/ 기독교대한감리회 참포도나무교회

가스펠투데이의 뉴스를 받아보세요!
    Array ( [0] => Array ( [0] => band [1] => 네이버밴드 [2] => checked [3] => checked ) [1] => Array ( [0] => talk [1] => 카카오톡 [2] => checked [3] => checked ) [2] => Array ( [0] => facebook [1] => 페이스북 [2] => checked [3] => checked ) [3] => Array ( [0] => story [1] => 카카오스토리 [2] => checked [3] => checked ) [4] => Array ( [0] => twitter [1] => 트위터 [2] => checked [3] => ) [5] => Array ( [0] => google [1] => 구글+ [2] => checked [3] => ) [6] => Array ( [0] => blog [1] => 네이버블로그 [2] => checked [3] => ) [7] => Array ( [0] => pholar [1] => 네이버폴라 [2] => checked [3] => ) [8] => Array ( [0] => pinterest [1] => 핀터레스트 [2] => checked [3] => ) [9] => Array ( [0] => http [1] => URL복사 [2] => checked [3] => ) )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서울특별시 종로구 효제동 298-4 삼우빌딩 402호
  • 대표전화 : 02-742-7447
  • 팩스 : 02-743-7447
  • 청소년보호책임자 : 최상현
  • 대표 이메일 : gospeltoday@daum.net
  • 명칭 : 가스펠투데이
  • 제호 : 가스펠투데이
  • 등록번호 : 서울 아 04929
  • 등록일 : 2018-1-11
  • 발행일 : 2018-2-5
  • 발행인 : 채영남
  • 편집인 : 박진석
  • 편집국장 : 류명
  • 가스펠투데이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가스펠투데이. All rights reserved. mail to gospeltoday@daum.net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