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견 언론인들의 언론 연구, 친목단체인 관훈클럽이 ‘위기의 언론 새 길을 찾는다.’는 책자를 발간했다. 2010년의 화두를 정리하고 2020년대로 생각을 이어 나가는 작업이다. 언론계 안팎의 급변하는 환경과 도전, 시대의 변화양상을 고루 검토하고 논의해야 한다는 취지다.
요즈음 국회가 ‘언론 징벌법’을 만들어 언론에 재갈을 물리려 한다고 나라가 온통 시끄럽다. 신뢰 회복을 위한 노력은 다양하지만, 나는 페이크뉴스(허위 정보)차단과 오보, 불충분 보도 방지에 초점을 맞추고 싶다. 가짜뉴스라고 하면 뉴스에 진짜도 있고 가짜도 있다는 오해를 유발할 수 있기에 적합한 우리말이 없는 한 페이크뉴스라고 쓰는 게 좋을 것 같다. 페이크뉴스 차단은 언론사의 온라인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대외적 활동이다. 자체 생산한 뉴스보다는 온라인을 통해 게재/확산되는 외부 생산 기사가 대상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언론사가 팩트 체크 기능을 통해 사실이 아닌 허위 정보를 걸러 내거나 삭제하고, 사실 여부 미확인 상태인 기사에 대해 ‘논쟁 중’ 또는 ‘미검증’이라고 표시하는 외국 사례는 우리도 서둘러 도입하거나 강화해야 할 장치다. 이를 위한 언론사 간의 협력과 정보 공유도 필요하다. 더 중요한 것은 내부 검증이다. 거의 30년 전 방문했던 미국 ‘타임’ 본사의 경우 기사 하나를 데스크과정에서 열두 번 고친 걸 본 적이 있는데, 이보다 더한 사례도 허다하다고 했다. 일간지보다 시간에 덜 쫓기는 주간지라 해도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문장만 고치고 다듬는 게 아니었다. 기사의 취재원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사실 여부를 점검하기까지 하니 기사가 나가지 못하고 아예 폐기되는 경우도 있었다.
미국 시사주간지 ‘뉴요커’에는 이런 내부지침이 있다고 한다. “기사를 읽다가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이라는 단어가 나오면 읽기를 중단하고 창문을 열어 그 빌딩이 아직도 그 자리에 있는지 확인하라!” 확인, 또 확인, 더 확인, 다시 확인을 강조한 말이다. 그 ‘뉴요커’에는 잡지가 인쇄되기 전까지 편집자, 작가, 팩트 체커, 보조 교정자와 함께 글을 교정하고 관리하는 사람, 오케이어(OK’er)가 있다. 오케이어가 승인해야 글이 나간다. 40년 가까이 그곳에서 일한 오케이어 메리 노리스(67)는 ‘마녀’, ‘콤마 퀸’으로 불렸다고 한다. 그런 장치와, 근무자들의 열성 덕분에 ‘뉴요커’는 세계 최고의 잡지가 될 수 있었다.
1997년 IMF 외환위기가 덮치자 언론사들은 경비 절감을 위해 맨 먼저 교열부(교정부)를 없애거나 축소했는데, 이후 20년이 넘도록 나아진 게 별로 없다. 신뢰 회복을 위해 우리 언론이 해야 할 첫 번째 과제는 교열기능을 대폭 확대 확충하는 것이다. 단순히 종전처럼 오자, 탈자만 가리는 게 아니라 사실 확인, 이른바 팩트 체크 기능까지 할 수 있게 문자 그대로 넓은 의미의 교열(校閱)을 해야 한다. 언론 경영자들은 언론의 품질 향상과 신뢰 회복의 길이 무엇인지 깊이 궁리해야 한다.
두 번째는 기자공동체를 유지 또는 복원하는 것이다. 입사 이전에 체계적 교육기회가 거의 없었던 기자들은 회사의 분위기와 선배들로부터 배우면서 성장한다. 특히 하리코미(張り込み)라는 잠복취재 훈련을 통해 경찰과 부대끼며 세상과 인간에 대해서, 취재방법에 대해서 알아가게 된다. 전통적 기자 훈련방법이었던 하리코미는 이제 주 52시간 근무제 등의 영향으로 점차 없어져가고 있지만, 반드시 부정적 측면만 있는 건 아니었다. 꼭 집에 들어가지 않는 잠복취재가 아니라도 입사 초기의 기자들에게 사건 취재를 경험토록 하는 것은 기자에게 필요한 밀착 취재와 끈질긴 확인 습관의 체질화를 위해 중요한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기자 생활을 하는 동안 선배들로부터 이런 말을 들었다. “절대 한쪽 이야기만 듣고 기사 쓰지 마라”, 이것이 수습기간에 처음 들은 말이다. “기사는 120을 취재해서 80만 쓰는 거다.”, “신문은 비판하는 용기가 있어야 하지만 칭찬하는 용기도 있어야 한다.”
활자를 심어 판을 뜨는 시대는 지나갔지만, 언론의 기본은 시대에 따라 달라질 수 없다. 그런데 요즘은 그만한 냉정과 열정이 잘 보이지 않고, 선배가 후배를 질책하며 기사를 고쳐주고 취재 방향을 바로잡아주는 일도 드물거나 원활하지 못한 것 같다. 오히려 이런 일을 '갑질’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짙어지는 것 같다. 인위적으로 그런 공동체를 조성하기 어려워진 세상이라 하더라도 언론의 신뢰 회복과 발전을 위해 늘 잊지 말아야 할 점이다. 하나님 앞에 옷깃을 여미며 이 글을 썼다.
이창연 장로
(소망교회, 가스펠투데이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