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진흙탕 싸움
[사설] 진흙탕 싸움
  • 가스펠투데이
  • 승인 2021.09.09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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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바닥에 무릎을 꿇고 우산을 받쳐 든 사진 한 장이 언론에 공개되었다. 많은 비가 내리고 있었고 우산은 브리핑 중이었던 고위직 공무원을 씌우고 있었다. “황제 의전”이라는 공격으로 싸움이 시작되었고 곧이어 “언론사 기자들 때문”이라는 방어전이 펼쳐졌다. 누리꾼들은 일제히 양 팀으로 나뉘어져 욕하고 비난하고 저주하는 글들을 마치 홍수 난 강물처럼 댓글에 쏟아부었다.

얼마 전 충북 진천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에서 아프가니스탄 특별입국자 초기 정착 지원과 관련한 법무부 차관의 브리핑으로부터 촉발된 일이다. 사진은 누가 보아도 민망하고 눈살 찌푸리게 하는 장면이었다. 그럴 수 없다. 아무리 하위직 공무원이라 해도 그런 행동을 요구한 것은 사람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시킨 사람이 누가 되었든 말이다.

여기서 잠시 관찰자 시점을 우산 든 직원에게로 옮겨보자. 그는 시키는 대로 했다. 비로 젖은 도로에 무릎 꿇기가 잠시 망설여졌을 것이다. 브리핑 내내 팔을 위로 뻗어 우산을 받쳐 드느라 많이 아팠을 것이다. 그러나 정부 부처에서 일하는 사람으로서 언론뿐 아니라 모든 국민들이 일거수일투족을 예리한 눈으로 지켜보는 가운데에 이런 식의 행동이 크게 논란이 될 것이라는 것을 설마 모르지 않았을 것이다. 원래 우직한 사람이어서, 혹은 대단히 충성스런 사람이기에 별 주저함 없이 시키는 대로 했는지 모른다. “안됩니다”, “못합니다”라고 차마 저항할 수 없었던 그 사람의 신분적 위치가 어떠했는지도 생각해야 한다. 아무리 비합리적인 요구라 할지라도 아랫사람으로서 감히 거절할 수 없는 우리 사회의 관습 때문일 수도 있다.

이 사건의 피해자는 길바닥에 무릎 꿇은 법무부 직원이다. 무릎을 꿇으며 수치심을 느꼈을지 모르는 그 사람을 가장 먼저 위로하는 것이 순서이다. 황제 의전을 비난하고 팩트를 체크하기 전에 먼저 해야 할 일이다. 얼마나 힘들었느냐고, 무릎 꿇은 모습이 실린 사진을 보며 얼마나 부끄러웠느냐고 그를 먼저 위로했어야 한다. 그런데 누가 그를 위로하였던가? 이 사건을 인권 문제로 다루는 신문 기사에 그 사람에 대한 위로가 없고 칭찬도 없다. 그저 황제 의전을 운운하며 비난하기에 바쁘다. 왜 그럴까? 인권을 문제 삼지만 속내는 인권을 빌미로 공격하고 이미지를 깎아내리는 데에 목적이 있기 때문이다. 겉으로 보기에 논쟁은 인권이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나쁜 정부” 또는 “나쁜 언론”이다.

국어사전에 진흙탕 싸움이란 ‘옳지 못한 방법으로 지저분하게 싸우는 일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라고 설명한다. 싸움이 벌어지는 초기에 나름 그럴싸한 이유가 없지 않았지만 점점 감정이 격해져 경쟁에 매달리고 꼭 이겨야한다는 승부욕에 집착하다보면 결국 진흙탕 속에 떨어지고 만다. 명분은 사라지고 오로지 이기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싸운다. 만약 한 쪽이 패하면 싸움이 끝날까? 그럴 리 없다. 패한 쪽은 이를 갈며 복수할 기회를 엿본다. 그렇게 해서 아주 오랫동안 싸움을 하고 결국은 싸우는 데에 시간과 인생을 허비하고 마는 것이다.

세상을 하나님과 화목하게 해야 할 사명이 교회에 있다. 교회는 이 세상 가운데에서 사람들을 화목하게 하고 평화를 세워가는 역할을 해야 한다. 진흙탕 싸움에 빠져 있는 사람들이 그곳에서 빠져나올 수 있도록 도와주고 합리적인 생각과 이성을 되찾으며 화해의 길을 열어주는 역할이어야 한다. 사명을 생각한다면 교회가 앞장서서 갈등을 부추기고 싸움에 말려드는 일은 없어야 한다.

다시는 무릎 꿇고 우산 받치게 하는 일이 없도록 하자. 싸움에 혈안 되기보다 위로해야 할 사람을 먼저 찾아 위로하며 우리 사회의 화목을 위해 각자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할지를 생각하자. 무엇보다 교회는 화목하게 하는 직분과 말씀을 사명으로 받았음을 기억하고 갈등이 있는 곳에 화해를 심고 다툼이 있는 곳에 평화를 심는 거룩한 공동체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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