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칼럼 (2) - 선수와 구경꾼, 무리와 제자
신앙칼럼 (2) - 선수와 구경꾼, 무리와 제자
  • 엄무환 국장
  • 승인 2021.08.26 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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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무환 국장
엄무환 국장

장로회신학대학원을 다닐 때 매주 수요일마다 강남에 있는 모 교회에 가서 수요예배를 드렸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수요예배를 마치고 버스를 타고 집으로 가고 있는데 잠실야구장에서 “와~”하는 관중들의 함성이 들렸습니다. 그래서 잠실야구장 인근의 버스정류장에 버스가 정차하자마자 버스에서 급히 내려 야구장 안으로 뛰어 들어갔습니다.

저는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8회말 이후부턴 표를 구입하지 않아도 야구장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는 사실을.

제가 야구장 안에 들어갔을 때가 9회초 경기가 진행 중이었습니다. 그런데 자리를 잡아 앉으려 하자마자 경기에 지고 있던 팀의 선수가 9회초 1사 만루에 홈런을 쳤습니다. 그러자 또다시 야구장이 떠나갈 듯한 함성과 함께 그 팀을 지지하는 관중석에 앉은 사람들이 일제히 일어나 서로 어깨동무를 하며 등실등실 춤을 추고 난리가 났습니다.

그런데 정작 놀랬던 것은 저도 그 분위기에 휩싸여 “와~” 하고 함성을 질렀다는 사실입니다. 그 순간 스트레스가 한 방에 날아가는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신기한 것은 그 야구팀과 전혀 관계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야구선수가 홈런을 치자 마치 제가 홈런을 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제 감정이 덩달아 춤을 추더라는 겁니다.

그때 제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이 하나 있었습니다. ‘홈런은 저 야구선수가 쳤는데 저 선수와 아무런 상관이 없는 내가 왜 이렇게 흥분을 하는거지. 난 단지 구경꾼일 뿐인데’

그러면서 자기 돈을 주고 표를 구입하여 야구장에 와서 야구경기를 구경하고 있는 관람객들을 둘러보니 그들도 저와 같이 단지 구경꾼에 지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자기가 홈런을 친 것처럼 그렇게 좋아라 할 수가 없는 모습이었습니다.

이 일이 있은 그다음 주간에 신학대학원의 수업 과목 중 하나였던 산상수훈 강의를 듣기 위해 강의실 의자에 앉아 잠시 마태복음 5장을 읽으려고 성경을 폈는데 제 눈에 1절 말씀이 클로즈업되어 다가오는 것이었습니다. 즉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제자들이 나아온지라”(1절)는 이 말씀에서 무리와 제자라는, 똑같은 사람이지만 그러나 구별된 두 존재가 제 시야에 들어온 것입니다.

“무리와 제자”라는 단어가 제 눈에 들어오자마자 야구장에서의 경험이 연상되었습니다. 야구선수와 구경꾼 말입니다. 그래서 흥미를 갖고 산상수훈 강의를 듣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강의를 듣는 중에 계속 제 마음에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강의를 하시는 교수님은 과연 이 산상수훈의 말씀대로 살고 계실까?’. 동시에 ‘아! 나는 산상수훈의 말씀대로 살 자신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자 산상수훈의 강의 내용들이 마음에 무거운 짐으로 다가왔습니다. 산상수훈의 말씀들이 당시 제겐 하나의 이론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즉 실제 저의 삶과는 전혀 무관하다는 사실 말입니다. 정말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그날 모든 수업을 마치고 산상수훈 수업 시간 전에 잠시 마태복음 5장을 읽었을 때 느꼈던 흥분이 생각나 학교 도서관으로 가서 마태복음 5장 1절 이하의 산상수훈 말씀을 다시 읽기 시작했습니다. 단숨에 7장까지 읽어내려갔습니다. 그런데 7장의 말씀이 제 시선을 사로잡았습니다.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찌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지우느니라 이러므로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이 말씀을 읽는데 순간 두려움이 밀려왔습니다. 즉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는 말씀을 읽는데 두려움이 밀려왔던 것입니다. 저에게 하시는 말씀으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입니다.

그 순간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도대체 누구에게 하시는지가 궁금해졌습니다. 즉 제자들과 무리 둘 다에게 하신 말씀인가 아니면 제자들에게만 하신 말씀인가? 이 부분에 대해선 산상수훈 강의 시간에도 아직 듣지 못했기 때문에 도서관에 비치된 마태복음 주석(註釋)을 찾아서 살펴보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저의 궁금증을 단번에 해결해 주시는 놀라운 은혜를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즉 마태복음 5장 2절 “입을 열어 가르쳐 가라사대”라는 말씀의 헬라어 원어를 통해 해답을 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카이 아노잌사스 토 스토마 아우투 에디다스켄 아우투스 레곤”이라는 헬라어 원어가 그것이었습니다. 이를 직역하면 “그리고 그가 그의 입을 여시고 그들을 가르치고 계셨다”인데 여기서 ‘아우투스’ 즉 ‘그들을’에서 그들이 누구냐는 것입니다. 이 부분에 대해 마태복음 주석(註釋)은 “무리가 아니라 제자들”이라고 설명하고 있었습니다. 이 내용을 인용해보겠습니다.

“한글 개역성경이 번역하고 있지 않은 아우투스는 무리가 아니라 예수의 제자들을 가리킨다”

이 내용을 보는 순간 ‘아, 무리와 제자가 다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산상수훈은 무리에게 하신 말씀이 아니라 제자들을 겨냥해서 하신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즉 예수님의 제자들만이 산상수훈의 말씀대로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사도행전이 증명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럼 난 무리인가 제자인가’라는 질문을 제자신에게 던져보았습니다. 그러자 ‘난 제자가 아니라 무리에 불과한 존재이구나’를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제자라면 산상수훈의 말씀대로 삶의 열매가 나타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즉 하나님의 의를 위해 핍박을 받고 예수님 때문에 핍박을 받을 것이라는 겁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삶의 열매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될 것이라는 겁니다. 무엇보다도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를 위해 살아가는 삶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위해 살아가는 삶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때부터 매일 학교에 등교하면 대학 시절과 마찬가지로 기도실에 올라가서 기도를 했었는데 본격적으로 ‘제자’가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성경을 읽다가 마태복음 4장 19절의 “말씀하시되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라는 말씀에 저의 두 눈이 멈추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시몬 베드로와 안드레를 제자로 부르신 이 말씀이 저를 제자로 부르신 말씀으로 들려졌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나도 제자로 부르셨구나 할렐루야!’ 이 깨달음이 오자 정말이지 너무 기뻤습니다. 하마터면 도서관에서 “할렐루야!”를 크게 외칠 뻔 했습니다.

그런데 이 구절의 영어성경을 찾아 읽으니 뜻이 너무나 명확하게 다가왔습니다. “Come, follow me,” Jesus said, “and I will make you fishers of men.”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사람낚는 어부가 되게 만드시겠다(I will make you)는 것입니다. 조건은 단 하나, ‘예수님을 따라오기만 하면...’입니다. 즉 하나님이 지시하시는 대로 순종하기만 하면 사람낚는 어부가 된다는 것입니다.

말씀이 깨달아지자 저는 즉시 결단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지시하시면 무조건 순종하는 삶을 살겠노라고 말입니다. 그런데 이 삶은 제 의지로 살아질 수 있는 게 아님을 베드로가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하는 행위를 통해 분명하게 인식하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베드로가 어떻게 사람낚는 어부가 되었는지를 집중해서 살펴보게 되었습니다. 요한복음 14장~16장 그리고 사도행전 1장에서 그 비결을 발견하게 하셨습니다. 성령 하나님 말입니다. 그렇기에 예수님이 승천하시기 전에 남기신 마지막 말씀이 저의 두 눈에 확대되어 다가오게 되었습니다.

“사도와 같이 모이사 저희에게 분부하여 가라사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행 1:4~5, 8).

그러자 마태복음 28장에 예수님이 하신 지상명령이 제자들에게 주어진 말씀임이 깨달아졌습니다. “예수께서 나아와 일러 가라사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마 28:18~20)

그제서야 제자와 무리가 다름을 확연하게 깨닫게 되었습니다. 제자는 구경꾼이 아니라 경기장에서 직접 경기를 하는 선수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제자는 예수님의 말씀을 눈요기하거나 그냥 귀로만 듣는 무리가 아니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제자는 오직 성령님이 지시하시는 대로 순종함으로 인해 나타나는 삶의 열매로 증명된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러면서 이 제자들을 통해 하나님께서 세계복음화의 위대한 사역을 진행하심을 보게 하십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주님이 저 역시 무리가 아니라 당신의 제자로 불러주셨다는 것입니다. 삶에 나타나는 열매를 통해서 이 사실을 명확하게 확증시키십니다. 즉 제가 섬기는 군 선교 현장과 언론 선교 현장에서 한 영혼의 구원과 다음 세대를 책임질 영적 리더들을 세우기 위해, 그리고 하나님의 공의를 구하기 위해 몸부림치는 제 자신의 모습 말입니다. 이같은 삶이 바로 주님이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천국을 침노하는 자의 삶'이지 싶습니다.

그래선가 바울사도가 로마에 있는 교회 성도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자신을 소개한 것처럼 저도 담대하게 제 자신을 소개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롬 1:1)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는 분명한 정체성, 복음전도자로 부르심을 받은 자요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은 자라는 자기 인식 말입니다. 그런데 세상에서 이보다 더 귀한 직분이 있을까요. 그렇기에 천사도 부러워하는 이 삶의 자리에 세워주신 하나님을 찬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올려드립니다. 하나님은 영원토록 찬양과 영광을 받으실 아버지이십니다.

무리는 구경꾼에 불과합니다. 상황에 따라 자신에게 불리하다 싶으면 언제든지 변할 수 있는 존재입니다. 그러나 제자는 다릅니다. 제자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증거를 위해 자신의 목숨까지도 기꺼이 바칩니다. 오늘도 살아야할 존재 이유가 이것 때문임을 믿기에... 그리고 이 사명을 마치면 주님이 영원한 안식을 주실 것임을 믿기에... 그러므로 주님이 주실 영원한 안식을 바라보며 오늘 하루도 주님이 맡기신 청지기적 사명을 온전히 감당하길 열망하게 됩니다.

“보라 이제 나는 성령에 매임을 받아 예루살렘으로 가는데 저기서 무슨 일을 만날는지 알지 못하노라 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거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행 20:22~24)

예수님의 제자들과 바울 사도가 살아냈던 이 삶을 살아내길 기도합니다. 구경꾼이 아니라 선수의 삶, 무리가 아니라 제자의 삶 말입니다. 그리되게 하소서 주님,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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