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라우의 후예(6) - ‘피’의 희생을 ‘땀’으로 보답하다
아라우의 후예(6) - ‘피’의 희생을 ‘땀’으로 보답하다
  • 이철원 집사(전 아라우부대장, 예비역대령)
  • 승인 2021.08.23 16: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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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공통적으로 모든 군부대에는 역사와 전통에 근거하여 부대의 특징을 상징하는 부대구호가 있다. 이러한 부대구호는 부대원에게 자부심과 긍지를 심어주고 부대원을 단결시키며, 적개심을 고취시키거나 특정한 행동을 요구하기도 한다. 우리 군에서 유명한 부대구호는 특전사의 ‘안되면 되게 하라', 해병대의 ‘한 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 백골사단의 ‘필사즉생 必死卽生 골육지정 骨肉之情' 등이 있다.

아라우부대가 파병되기 前 12월 초에 태풍 피해지역 현지 정찰을 다녀온 후, 필리핀에 대한 한국군의 보은 報恩 파병의 의미를 구현할 수 있는 캐치프레이즈(구호)를 만들기 위해 고민하였다. 대부분 가족을 잃은 주민들은 주거환경이 파괴되어 심리적으로 매우 불안정한 상태에서 누군가에게 의존하여 위로받고 싶은 마음과, 살아가기 위해서는 외부로부터 도움을 받아야 하는 것에 대한 자괴감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음을 정찰 간에 확인할 수 있었다. 또한 당시에 각 군에서 선발된 아라우 부대원들은 사명감과 책임감보다는 “재난을 당한 가난한 나라를 도와주러 간다”는 마음으로 약간 들떠 있었다.

지금으로서는 잘 믿기지 않는 일이지만, 필리핀은 과거에 우리 국민들이 이민을 희망할 정도로 잘 사는 동경의 나라였다. 이 때문에 최초의 현대식 체육관 건물인 장충체육관을 필리핀이 자본과 기술을 제공하여 건설했다는 잘못된 속설이 퍼지기도 했지만 실제 장충체육관은 대한민국의 순수 기술과 자본으로 건설되었다. 

*장충체육관 : 예산(서울시, 5), 설계(건축기 김정수), 시공(삼부토건), 공원 (1960, 3 / 1962,12)

 
1960년대 장충체육관
1960년대 장충체육관

이러한 상황에서 나는 고민 끝에 도움을 받아야 하는 필리핀 사람들의 자존감을 세워 주고 파병에 임하는 아라우 부대원들의 마음 자세를 바로잡기 위해 고민 끝에 다음과 같은 부대구호를 만들었다.

“피의 희생을 땀으로 보답한다.” (We are here to repay your sacrifices of blood with our own sweat drops.)

인간은 심리적으로 논리적 판단보다는 정서(감정)에 의해 움직인다고 한다. 그래서 감정을 자극하는 상징적 언어인 ‘피’와 ‘땀’을 ‘희생’과 ‘보답’이라는 단어로 대조법을 사용하여 보은 파병의 의미를 이해하기 쉽고 인상적이며 간결하게 표현하였다. 이 구호의 사용은 아라우 부대원들이 마음가짐을 새롭게 하고 임무수행 태도를 바꾸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우리는 재난을 입은 주민들을 도와준다면서 교만하게 행동하기 보다는 은혜에 보답한다는 겸손한 마음과 진정성이 있는 태도를 갖도록 노력하였고 이를 내면화하기 위해 점호, 출동신고 등 병력이 모일 때마다 몸동작과 함께 구호 제창을 생활화하였다. 이렇게 함으로써 병력들의 마음과 행동이 조금씩 달라짐을 스스로 느끼게 되었다.

복구행사장 구호
복구행사장 구호
상륙함에 구호
상륙함에 구호

구호는 부대 밖에서 잘 보이도록 강당 외벽에 크게 써 놓았고 의료지원, 건물복구, 부대행사 등 활동 간에도 플래카드로 제작하여 현지 주민들이 볼 수 있도록 전시하였다. 모든 공식행사 연설시에는 우리가 필리핀에 파병을 온 이유를 이 구호를 사용하여 설명하였다.

"아라우 부대가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단순히 도와주러 온 것이 아니고 6·25 전쟁 시 피를 흘려준 필리핀의 희생을 잊지 않고 보답하기 위해 왔다”라는 말은 도움을 받아야 하는 처지에 있는 현지 주민들에게 깊은 인상을 주고 감동시켰다. 필리핀 국방부장관, 교육부장관, 국방참모총장, 주지사 등 주요 인사들이 이 구호를 듣고 또는 보고 감동을 받아 고마워하였으며 많은 사람이 눈물을 흘리기도 하였다. 이러한 우리의 한마디 말이 항상 도움을 받는 것에 대한 자격지심과 열등감이 있는 필리핀 사람들의 자존감을 세워 준 것이었다.

“한마디 말로 천 냥 빚을 갚는다”는 속담이 있듯이 우리는 말로써 먼저 주민들을 감동시켰으며, 단순히 외형적인 복구만이 아니라 주민들에게 재기의 희망을 주고 마음까지 회복시키는 역할을 수행하였다. 혹자는 “생각하는 것이 말로 나오고, 말하는 것이 행동으로 나타난다”라고 하며, “말이 생각을 지배한다” 라고도 이야기한다. 나는 “말이 생각과 행동의 중심이다.”라고 얘기하고 싶다. <계속>

아라우공원에 구호
아라우공원에 구호
캠프 강당벽에 구호
캠프 강당벽에 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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