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겔칼럼] 공정(公正), 공평하고 정의로운 사회
[데겔칼럼] 공정(公正), 공평하고 정의로운 사회
  • 김윤태 목사
  • 승인 2021.08.11 13: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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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출간된 마이클 샌델(Michael Sandel)의 저서 “The Tyranny of Merit(능력주의의 폭정)”가 “공정하다는 착각”이라는 제목으로 의역되어 출간되었다. 이 책에서 저자는 시장주도적 세계화는 불평등을 심각하게 심화시켰고, 결국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능력주의(meritocracy)의 희망은 사라졌다고 주장한다. 서글픈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모두는 공정한 사회에서 살고 있다며 착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과연 우리는 공정(公正), 공평하고 정의로운 사회에서 살고 있는가? 자본주의는 민주주의와 결탁해서 능력이 있으면 누구나 신분상승이 가능하다는 능력주의 신화를 만들어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장 성공한 빌게이츠(Bill Gates)도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인생이란 결코 공평하지 않다. 이 사실에 익숙해져라! (Life is not fair; get used to it)” 실제로 이 사회에는 능력주의라는 이름으로 수많은 불평등과 불공평이 간과되고 있다. 서울과 지방의 수험생들이 접하는 교육의 질, 정보의 양이 서로 다르다. 그러나 그들은 모두 각자 실력대로 공평하게 경쟁해야 한다. 주식 시장에서도 개인 투자자가 실패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정보의 비대칭성 때문이다. 기관투자자는 다양한 경로를 통해 기업의 정보를 신속히 확보할 수 있지만 개인 투자자는 그렇지 못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 모두는 공평하게 경쟁해야 한다. 이것이 과연 공정인가?

흥미롭게도 2022 대선후보들의 대선 출마 선언문에 나타난 공통된 대선의제는 공정이라고 한다. 그들이 말하는 공정이 무엇인지 조금 더 들어볼 필요가 있지만, 깊은 숙고 없이 신자유주의식 기회균등이나 공산주의식 결과적 평등만을 의미할까 우려된다. 필자는 마이클 샌델이 지적한 것처럼 오늘날 우리 사회가 극복하고 넘어서야 할 시대정신 중 하나가 능력주의라고 생각한다. 공정한 경쟁이 공정한 사회를 만든다는 주장은 봉건주의 사회에서 자본주의 사회로 넘어가던 애덤 스미스(Adam Smith) 당시의 시대정신이다. 절차적 공정이 보장되는 능력주의 사회는 신화다. 애초에 출발점이 다르고, 주어진 기회가 다르고, 조건이 다른데 절차적 공정을 보장한다는 것이 과연 무슨 의미가 있는가? 영국 시인 윌리엄 블레이크(William Blake)가 이런 말을 했다. “사자와 소를 위한 하나의 법은 억압이다. 사자와 소를 한 울타리에 넣는 것은 경쟁이 아니라 소에 대한 억압이다.”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공평하게 달리기 시합을 하게 한다고 해서 그것이 어떻게 공정하다고 말할 수 있는가? 능력주의자들이 종종 드는 예가 한국 양궁 국가대표팀이다. 이번 2020 도쿄올림픽에서 남녀 개인전과 단체전에 걸린 금메달 5개 중 4개를 휩쓸었다. 능력주의자들은 그 비결이 철저하게 실력과 능력으로 경쟁하는 대표 선발 과정에 있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도 스포츠 경기처럼 되어야 한다는 말인가? 우리 사회 구성원들의 존재 목적이 금메달을 따는 것인가? 메달을 따지 못하는 무능한 자들은 도태되고 낙오되어도 괜찮은가? 그런 사회를 우리는 공정하다고 말할 수 있는가?

정부와 사회 시스템이 인재 선별기가 되어선 안된다. 인간은 능력이 아니라 존재, 그 자체로 대우받아야 한다. 우리 사회가 금메달을 따면 영웅이 되고, 메달을 따지 못하면 야구선수 강백호의 경우처럼 껌조차 씹지 못하게 해서는 안된다. 마이클 샌델은 “기회의 평등”을 넘어, 성공하지 못한 사람들도 존엄한 대우를 받으며 살 수 있도록 “조건의 평등”을 대안으로 제시한다. 구약성서가 제시하는 하나님 나라의 기본 정신도 “공정(公正), 공평과 정의”다. 공평, 혹은 공의는 히브리어로 미슈파트(משפט)다. 미슈파트는 공평한 재판을 의미한다. 하나님 나라의 또 다른 정신인 정의는 히브리어로 체다카(צדקה)다. 종종 자비나 긍휼로 번역되는데, 공평하게 재판하는 것을 넘어 불쌍한 마음으로 정상을 참작해 재판하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어, 부자나 가난한 자나 똑같이 심판하면 그건 미슈파트(משפט)다. 그런데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겨 정상을 참작해 재판하면 그건 체다카(צדקה)다. 어쩌면 우리 사회에 필요한 정신이 바로 이 미슈파트와 체다카가 아닐까? 미슈파트의 정신에 따라 부자라고 해서 봐주고 가난하다고 해서 함부로 대해서도 안된다. 물론 기회의 평등이 공평하게 주어지는 것도 중요하고, 능력에 따라 차등적으로 보상받는 것도 틀렸다고 말할 수 없다. 그러나 낙오자에게도 자비를 베푸는 체다카의 정신, 조건의 평등 또한 있었으면 좋겠다. 능력주의의 폭정을 넘어, 공정(公正), 공평하고 정의로운 사회가 도래하길 기도한다.

 

김윤태 목사

(대전신성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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