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부터 주변에서 누군가의 실명을 자주 접한다. 공공건물 화장실에는 누가 청소 담당인지 이름이 적혀있다. 마트에서 농산물을 사면 상자 또는 봉지 포장에 농부의 이름과 때로는 얼굴 사진과 휴대전화 번호까지 함께 붙어 있다. 버스를 타도 이 버스를 운전하고 있는 분의 이름과 그분이 면허 취득한 해가 몇 년도인지까지 볼 수 있다. 택시도 마찬가지다. 서비스를 제공하는 쪽에게는 책임감을 독려하고 서비스를 이용하는 사람에게는 안전과 친근감을 느끼게 한다.
이름을 안다는 것은 특별한 관계다. 친지나 지인이 직접 재배한 채소나 과일은 더욱 소중한 것처럼, 주방에서 음식 만드는 분의 이름까지 알고 있는 단골 식당은 각별하다. 포도주의 이름도 알고 나면 의미가 잘 와닿는다.
포도주의 역사가 인류 역사만큼 오래된 유럽과 지중해 연안 국가들은 포도주 이름이 생산 지역의 이름이다. 프랑스 보르도, 이탈리아 피에몬테, 스페인 리오하… 하는 식이다. 식민지 지배를 통해 포도나무와 연관 기술과 문화가 전해진 ‘신세계’에서는 포도품종이 포도주 이름이다. 같은 카베르네 소비뇽이 미국산이냐, 칠레산이냐 호주산이냐 한다. 품종 이름은 같아도 지역별로 포도주 특징이 있고 이야기도 다르다. 어떤 포도종은 지역마다 다른 이름으로 부른다.
성서에서 ‘이름'은 자주 나오는 단어다. 구약에서 이름을 뜻하는 히브리어 명사 ‘쉠'은 860회 이상 쓰였다. 구약에서 쓰인 전체 명사 가운데 17번째로 자주 쓰였다. ‘이름'보다 더 자주 등장하는 명사로는 모두, 하나님, 왕, 땅, 사람, 얼굴, 집, 백성, 손, 말씀, 아버지, 성읍, 눈, 해(년)가 있다.
‘이름’은 신약에서도 자주 쓰였다. 고대 그리스어 ‘오노마'는 230회가량 쓰였다. 이름보다 신약에서 더 자주 쓰인 단어는 14개 즉, 하나님, 주님, 사람, 그리스도, 아버지, 날, 숨, 아들, 형제, 말씀, 하늘, 제자, 땅, 신앙뿐이다. 물론 더 많이 쓰였다고 반드시 더 중요한 단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자주 쓰인 만큼 뜻깊은 단어임은 틀림없다.
이름이라는 단어는 거룩한 하나님의 이름을 함부로 부를 수 없다 하신 계명(출 20:7 신 5:11)을 제일 먼저 떠오르게 하지만, 계명을 주시기 훨씬 전에 나온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만드시고 사람도 지으시어 세상을 돌보게 하셨을 때, 사람은 짐승 하나하나에 이름을 붙였다.(창 2:19) 서로 처음이라 붙이는 이름으로 돌보는 이와 돌봄을 받는 존재의 관계가 시작했다.
태어났을 때 이야기를 담고 있는 이름도 있다. 물에서 건졌다(출 2장 10절) 하여 모세, 아이를 갖지 못했던 어머니 사라를 웃게 해줬다(창 21:6) 하여 이삭이다. 이삭과 리브가의 쌍둥이 아들 가운데 형의 발꿈치를 움켜쥐고(히브리어 표현으로 속인다는 뜻, 창 25:26) 태어났다 하여 야곱은 털이 많은(창 25:25) 형 에서와 아버지를 속인다. 포도주 양조장에서도 요즘은 포도주 이름에 이런 이야기를 담는 경우가 많다.
새로운 의미로 다시 붙이는 이름도 있다. 얍복 나루에서 혼자 있던 야곱과 싸워 도저히 이길 수 없었던 이는 야곱의 이름을 물었다. 그리고 하나님과도 사람과도 겨루어 이겼으니 이제 야곱은 이스라엘(하나님께서 겨루시다, 창 38:28)이라 했다. 얍복 나루도 야곱이 하나님을 만난 곳이니 이름이 브니엘(하나님의 얼굴)이 되었다. 갈릴리 호수에서 고기 낚던 시몬을 예수께서 교회의 베드로(반석, 마 16:18)로 삼으셨다. 예수의 제자들과 예수를 따르던 사람들을 지독하게 괴롭히던 사울은 회개한 뒤로는 전도 여행하며 히브리어 이름 사울이 아니라 로마 이방인에게도 쉽게 다가갈 수 있는 라틴어 이름 바울로 거듭난다.
시중에서 사는 포도주에는 생산지와 포도주 양조장 또는 만드는 사람 이름은 적혀있는데, 누가 그 포도를 일 년 내 가꾸었는지, 누가 수확했는지는 알 수 없다. 직간접으로 관여하고 있는 사람들이 수없이 많지만, 어마어마한 대규모 생산에는 수확에서 포도주를 만들어 병에 담고 운반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고 많은 일을 대부분 기계가 하는 까닭이다. 포도주의 이름을 아는 것만으로도 포도주가 각별한데, 포도주 한 병이 내 손에 들어오기까지 거치는 수많은 손과 보이지 않는 이들의 수많은 이름이 있음을 기억할 만하지 않을까.
박여라 위원
(예술목회연구원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