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장연군에는 세워진 교회는 어떤 교회인가?(5)
은행동교회에서 시무했던 김용국 목사는 누구인가? 김용국 목사는 6.25때 공산당들에게 몽둥이에 맞아 순교했다. 김용국 목사는 1903년 장연군 낙도면에서 김학수씨의 차남으로 출생했고, 한문공부를 하였으며, 붓글씨를 잘 썼다. 천재라는 소리를 들으며 숭실학교를 졸업하고 18세에 고향 지경동교회 주일학교 부장직을 맡아서 일할 때 백령도의 허간 전도사(후에 목사, 평신16기, 1922년 졸업 후 목사가 됨)에게 박탁되어 백령도에서 전도사로 사역했고, 1927년에 평양신학에 입학하였으나 농촌목회 때문에 14년 만에 졸업하고 1940년 35회 황해노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았다. 장연군 목감교회와 은행동교회를 14년간 시무하고 1949년 해주, 벽성지구 노회산하 가장 취약한 곳에 전도목사로 파송됐다. 그곳에서 교회를 크게 부흥시키는 중에 6.25전쟁이 일어났다. 어느날 공산당들이 김 목사 집으로 와서 김 목사를 처형장소로 끌고 갔다. 김용국 목사는 그곳에서 공산당들을 향하여 전도했다. “예수 믿고 천당 가시오. 예수 믿지 않으면 지옥 불에 들어갑니다.” 이 소리를 들은 공산당들은 김목사를 그냥 두지 않고 몽둥이로 때려서 죽게 만들었던 것이다. 아들 삼남, 김관중은 6.25때 아버지를 따라 순교했으며 남은 유족은 그 후 월남하여 장남 김항중은 선유중앙교회(파주) 장로로 장립되어 섬기며 6남 김귀중은 목사로 인천 인성교회 시무 목사로 사역했다. 김용국 목사님의 순교와 그의 가문은 한국교회에 귀한 보배이다.
열여섯째, 청계교회이다.
1908년 장연군 죽계리에 청계교회가 세워졌다. 교역자는 이근필, 이성권, 김종삼(평신8기, 1915년 졸업)목사가 시무했고, 문경석을 1917년 2월10일에 장로로 장립했다. 청계교회에서 시무한 김종삼 목사는 누구인가? 김종삼 목사는 1876년 황해도 장연군 용현면에서 출생했다. 일찍이 예수 믿고 고향 교회인 용현교회에서 열심히 봉사하던 중 1910년 평양신학 3기생으로 입학하여, 1915년 제8회로 졸업했다. 그리고 1915년 6월24일, 제8회 황해노회가 재령성경학교에서 회집되었을 때 황해도 출신 최승현, 유만섭, 유응식, 김덕회, 이승철, 김종삼이 함께 목사 안수를 받았다. 그 후 신화면 창몰교회(1923-), 백령도 중화동교회(1925-), 몽금포교회(1927-)에서 시무했고 1937년 이후에는 각 교회를 순회하면서 목회했다. 8.15해방 후 공산치하에서도 박해를 무릎쓰고 계속 목회 하다가, 월남할 기회가 있었으나 이를 거절하고 공산치하에 남아서 끝까지 교회를 지키다가 공산당에 의해 순교의 제물이 되었다. 김종삼 목사의 차남 김선경이 목사가 되어 충북 제천에서 목회하다가 소천했다. 김종삼 목사는 공산당과 타협없이 순교의 길을 걸어갔으며 오늘날 우리 목회자가 본받아야 할 분이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