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와 복음] 《미드 나잇 인 파리》 상상의 세계로 향하는 문은 어디에?
[영화와 복음] 《미드 나잇 인 파리》 상상의 세계로 향하는 문은 어디에?
  • 임명진 목사
  • 승인 2021.07.07 14: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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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나가는 할리우드 시나리오 작가 길 펜더(오언 윌슨)는 약혼녀 이네즈(레이첼 맥아담스) 가족과 함께 파리에 방문할 기회를 얻는다. 지인 폴 부부와 함께 파리 시내를 돌아보며 쇼핑과 관광을 즐기길 원하는 이네즈와 달리, 파리 자체가 가진 예술적 정취에 매료된 길 펜더는 혼자 파리의 거리를 걷다 길을 잃는다. 자정 무렵, 우연히 오래된 푸조 승용차를 얻어 타게 된 길은 도착한 곳에서 자신이 그토록 갈망해왔던 20세기 초 문화예술인들을 만나게 된다. 콜 포터(Cole Albert Porter)의 ‘Let’s do it’이 시인이자 극작가인 장 콕토(Jean Cocteau)를 위한 파티에서 흘러나온다. 우리에겐 그 이름만으로도 유명한 스콧 피츠제럴드 부부를 비롯하여 헤밍웨이, 거투르드 스타인, 주나 반스, T.S. 엘리엇과 같은 문인들뿐 아니라, 초현실주의 화가들인 살바도르 달리와 피카소, 그리고 모던시대를 이끌었던 대중문화의 개척자인 맨 레이, 루이스 부뉴엘 등을 만난다. 길의 상상과 꿈이 실현되는 순간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만이 꿈꾸는 이상향이 존재한다. 그것이 소문으로만 듣던 과거에 대한 향수든, 아직 경험해보지 못한 미래에 대한 기대든, 뭔가 열악하고 미흡하게 느끼는 현재와 비교하여 좀 더 나은 세계에 대한 갈망과 바람의 구현이다. 순수 창작소설을 쓰고 싶어 했던 길에게 그 이상향은 1920년대 파리였다. 비 오는 파리의 거리, 그곳은 따로 세트를 구성하거나 꾸미지 않아도 절로 예술이 되고 낭만이 흘러넘치는 세상이었다. 그곳에만 있으면 부족하고 보잘것없는 자신의 약점이 감춰지고, 마음껏 문학적 기질이 발휘될 것만 같다. 게다가, 당대 최고의 작가이자 비평가인 거투르드 스타인이 자신의 원고를 읽고 비평해주다니... 이는 더할 나위 없는 행복의 극치이자 최고의 선물이었다. 우연히 만난 세기의 연인 아드리아나(마리옹 꼬띠아르)는 낭만의 최정점이었다.

하지만 이상향과 상상의 세계가 가진 치명적인 단점이 있는데, 각 개인에 따라 지극히 주관적이라는 점이다. 영화에서 길 펜더에게 이상향은 1920년대였지만, 막상 그 1920년대를 사는 예술가 아드리아나에게는 1890년대가 꿈에 그리던 시기였다. 화가 툴루즈 로트렉이 살아있고 고갱, 드가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시대를 아드리아나는 머물고 싶어 했다. 길 펜더와 아드리아나가 영혼의 사귐과 정서적 공감을 느끼면서도 공존하지 못하는 이유이다. 길 펜더는 아드리아나가 사는 1920년대를 원했지만, 막상 아드리아나는 그 이전 시대인 1890년대에 남기를 원했다. 둘 다 현재보다는 명성이 자자했던 과거를 막연히 동경하고 있었던 셈이다.

상상의 세계가 있다면, 우리가 발 디디고 살아가야 하는 현실 세계 역시 존재한다. 2010년대를 사는 이네즈는 현실을 살아가는 여인이다. 세속적이라고 욕할지 모르지만, 그녀는 여유 있는 물질적 풍요와 문명의 이기를 마음껏 누리길 원한다. 적당히 구경도 하고, 아는 사람 만나 쇼핑도 하고, 명소와 명품으로 식사와 사치도 부린다. 사실, 일반인들이 원하는 삶이 바로 이것 아닐까? 고상한 척, 교양 있는 척하지만, 세속적 쾌락을 마음껏 누릴 수 있다면 그것이 진짜 욕망하는 삶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고, 누구도 그에 대해 비난할 수 없다.

어느 쪽이 더 실현 가능성이 있을까? 두말하면 잔소리다. 상상과 이상향은 그저 생각으로만 존재할 따름이다. 과학기술의 발달은 미래를 앞당기지만, 아직은 아니다. 타임머신이 없는 한 과거의 황금기로 찾아가는 건 불가능하다. 우리는 단지 과거를 지나 미래를 향해 현재를 살아갈 뿐이다. 다만, 삶에서 상상이라도 과거나 먼 미래로 향하는 탈출구 하나쯤은 필요할 듯싶다. 마치 호박이 멋진 마차로 변하여 신데렐라에게 다가왔듯이, 자정이 되면 어디선가 낡은 푸조 한 대가 찾아와 나를 싣고 바라고 원했던 그곳으로 데려가 주는 그런 장치 말이다. 이쯤해서 질문을 던져본다. 과거의 황금기가 아름다울까, 미래의 찬란함이 세련되어 보일까? 유대인들이 갈망한 것은 과거 다윗의 영화일까, 미래 하나님 나라의 실현일까? 우리에게 낡은 푸조는 무엇이며, 그 푸조가 향하는 곳은 어디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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