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의 샘물] 성경과 신문
[영혼의 샘물] 성경과 신문
  • 이성희 목사
  • 승인 2021.06.09 14: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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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누구나 지력을 향상시키기 위하여 배워야 한다. 더구나 ‘지식사회’를 살아가는 현대인에게는 지식은 생존수단이며 전략이다.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성경을 배우고 일반 학문을 배우고 세상을 배워야 하는 것이 필수이다. 리처드 포스터는 ‘영적 훈련과 성장’(Celebration of Discipline)에서 “묵상은 한 손에는 성경을, 한 손에는 신문을 가지고 있을 때 가장 잘할 수 있다”고 하였다. 칼 바르트도 “한 손에 성경, 한 손에 신문”이라고 하였다. 성경과 신문은 생명력 있는 그리스도인을 만드는 도구이다.

그래서 바울은 배우라고 하지 않고 배우고 확신하라고 한다. 확신하는 것은 신앙적 단계이며 정적인 요소를 충족시켜 주는 단계이다. 슐라이에르마허는 하나님의 현실을 이 세계의 구체적인 현실에서 인식하려는 문제의 해결을 인간의 종교적 절대의존의 감정에서 찾고자 하였다. 그에 의하면 종교의 본질은 직관과 감정에 있다. 이 감정은 지식도 행동도 아니며 오히려 감정이나 혹은 직접적 자기의식의 특수성인 종교적 경건성을 의미하였다.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는 인간의 직관으로부터 시작되는 절대의존의 감정을 의미한다.

인간은 지식만 가지고는 하나님을 알 수 없다. 전도서의 기자는 “지혜가 많으면 번뇌도 많으니 지식을 더하는 자는 근심을 더하느니라”(전 1:18)고 하였다. 지혜와 지식만 가지고는 온전한 신앙적 삶을 영위할 수 없는 것이다. 우리의 옛 말에도 식자우환(識字憂患)이란 말이 있다. 글자를 아는 것이 오히려 걱정을 끼친다는 말이다. 인간은 너무 많이 알기 때문에 쓸데없는 걱정도 그만큼 많아진다. 소동파의 시에도 “인생은 글자를 알 때부터 우환이 시작된다(人生識字憂患始)”라는 구절이 있다. 인간은 아는 것만 가지고는 부족한 것이다. 지식은 인간을 풍요하게 하지는 못한다.

모세는 하나님을 아는 사람이었고, 애굽의 궁중에서 성장했지만 히브리인의 교육을 받았다. 그리고 그는 히브리의 하나님을 믿었고 히브리인들을 사랑했다. 그러나 그의 지식은 살인을 낳게 되었다. 그의 첫 40년은 화려한 궁중의 왕자의 삶이었지만 살인으로 끝나고 말았다. 40년의 광야 생활에서 그는 하나님을 만나게 되었고 그의 지식과 하나님을 만나는 신앙이 하나가 될 때에 이스라엘을 인도하는 지도자가 된 것이다.

바울은 당시에 가장 걸출한 학자인 가말리엘의 문하에서 학습하였다. 그는 하나님을 알았고 풍부한 율법적, 철학적 지식의 소유자였다. 그러나 그의 지식은 예수님을 거부하고 신자들을 박해하는 도구였다. 그러나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서 예수님을 만난 다음 그의 지식은 신앙과 하나가 되었고 이전의 모든 것을 배설물과 같이 여겨 버렸다. 그리고 그의 신지식은 그로 하여금 이방인의 사도가 되었다. 지식은 신앙을 만나 하나가 되어야 비로소 온전한 지식이 된다.

수도사들의 수도원에서의 학습은 18년의 과정으로 이루어진다. 처음 6년은 자연과학을 공부하였고, 중간 6년은 인문과학을 공부하였고, 마지막 6년은 신학을 공부하였다. 지식을 통한 신앙, 신앙을 기초로 한 신앙을 목표로 하였다. 확고한 신앙은 지식을 겸비한 신앙이다. 확고한 지식은 신앙을 겸비한 지식이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엡 4:13)라고 하였다. 신앙과 지식이 하나가 되어야 온전한 사람을 이룬다. 지식이 신앙과 만나야 온전한 지식이 된다. 신앙은 지식과 만나야 온전한 신앙이 된다. 아인슈타인은 “종교 없는 과학은 위험하고 과학 없는 신앙은 맹목적이다”고 하였다. 신앙은 과학적이어야 하고, 과학은 신앙적이어야 한다. 신앙과 과학은 서로 보충적이어야 한다.

신앙과 지식의 관계에서 교대와 중세의 교부들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털툴리아누스는 “불합리하기 때문에 믿는다”고 하였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신앙이 지식의 조건이 된다”고 하였다. 안셀무스는 “신앙은 지식을 더 찾게 된다”고 하였다. 신앙과 지식은 전혀 무관한 것이 아니라 상호 연관성을 가진 것이다. 그러므로 신앙과 지식이란 보충적 관계를 유지해야 바른 신앙과 지식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성희 목사(연동교회 원로, 가스펠투데이 명예 이사장)
이성희 목사(연동교회 원로, 가스펠투데이 명예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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