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주일학교는 언제 생겼을까?
[기획특집] 주일학교는 언제 생겼을까?
  • 최상현 기자
  • 승인 2021.06.08 09: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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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우진 교수 특별기고
로버트 레이크스
로버트 레이크스(Robert Raikes, 1735-1811)

기득권층의 반대 속에서

주일학교의 창시자는 로버트 레이크스(Robert Raikes, 1735-1811)다. 그는 영국 글라우체스터에서 1780년 세계 최초로 주일학교를 설립했다.

당시 영국은 산업혁명이 한창이었고 사회는 극도로 혼란했다. 여러 가지 범죄가 범람해서 이름조차 붙이기 힘든 범죄(nameless Vices)가 넘쳐났다. 아이들은 제대로 교육받지 못했으며, 교육은 귀족들을 비롯한 극소수만 받을 수 있었다. 아이들은 대부분 산업현장에 내몰려 쉴 새 없이 일해야 했다. 너무나도 비위생적인 상황이었으므로 당시 영국인의 평균수명이 40세가 못되었다.

인쇄업을 하던 레이크스는 범죄인들을 교화하기 위해서 자신의 재산을 들여 25년간 교도소를 찾아다니며 노력하다가 자포자기하고 말았다. 결국 그는 무엇보다 범죄를 예방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고, 이것이 그가 주일학교를 설립하는 계기가 된다.

레이크스는 스톡크 목사와 함께 1780년 글라우체스터의 수티 엘리(Sooty Alley)라는 곳에서 킹 여사(Mrs. King)를 교사로 임명하여 주일학교를 시작한다. 그러나 학생들의 통학거리가 너무 멀어서, 그는 메레디스 여사(Mrs. Maredith)의 부엌으로 자리를 옮긴 후 메레디스 여사를 교사로 임명하였다. 하지만 그녀는 아이들의 질이 너무 나빠 곧 사표를 내고 그만두었다.

레이크스는 또다시 크리스츨리 부인(Mrs. Christchley)의 집으로 주일학교 장소를 옮기는데, 여기서 비로소 안정되기 시작했다. 주일학교는 오전 10-12시, 오후 1-5시에 이루어졌는데, 여기서 가르친 내용은 ‘글 읽기, 손 씻기, 얼굴 닦기, 머리 빗기’ 등을 비롯하여 성경을 가르쳤고 예배를 드렸다.

레이크스의 주일학교는 성공적이었다. 1783년 글라우체스터 신문에 소개되기도 했다. 사회적으로도 큰 반향을 일으켜서, 주일학교가 설립된 지 불과 5년 후인 1785년 각 교회의 주일학교에 등록한 학생 수가 영국에서만 25만 명에 이르게 되었다.

그러나 이 주일학교 운동은 영국의 교회와 사회로부터 부정적인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영국교회와 귀족사회는 주일학교를 “위험스럽고, 비도덕적이며, 악당의 조직이고 더 나아가 악마의 기구”라고 정죄했다. 당시 영국교회의 주교는 모든 사제들에게 통보하여 주일학교를 저지하도록 지시했고, 귀족과 부유층들은 주일학교야말로 자기들의 선량한 종들을 선동하여 임금상승을 부채질하는 나쁜 집단이라고 정의했다.

그러나 이러한 교회와 사회의 부정적인 반응에도 불구하고 주일학교는 설립된 지 5년 만에 학생 수가 25만 명에 이르렀고, 레이크스 사망 20주기인 1831년 레이크스의 동상을 제막하는 식전에서는 주일학교의 학생 수가 125만 명에 이른다고 보고됐다. 레이크스는 죽으면서 “나에게 작은 저금통장이 있는데 이 돈으로 아이들에게 빵을 사주십시요”라는 유언을 남겼다.

로버트 레이크스의 동상.

세계로 확대된 주일학교 운동

레이크스의 주일학교 운동은 곧 세계 각국으로 퍼져나갔다. 1851년 스웨덴에서는 7,000개의 주일학교와 32만 명의 주일학교 학생, 24,000명의 교사를 보유하게 되었고, 1865년 네덜란드에서는 2,000개의 주일학교, 21만 명의 주일학교 학생을, 1891년 독일에서는 9,000개의 주일학교와 95만 명의 주일학교 학생을 보유하게 되었다.

레이크스는 1803년 주일학교협회(Sunday School Society)를 설립했는데, 협회는 학생들을 가르칠 교재를 통일적으로 만들 필요성을 느껴서 ‘통일공과’를 발간했다. 약 100년 후 20세기에 들어오면서는 학생들의 학습을 수준별로 향상시키자는 취지에서 ‘계단공과’를 출간했다.

레이크스의 주일학교 운동은 미국으로 건너가면서 더욱 활발해졌다. 미국에서는 처음부터 교회가 이 운동을 주도적으로 이끌었다. 레이크스가 주일학교를 설립한지 불과 10년 후인 1790년, 당시 미국의 수도이자 중심지였던 필라델피아에서 처음으로 주일학교협회가 설립되었고, 이것을 필두로 각 주별로 주일학교협회가 설립된다. 그 후 1824년 주일학교연맹(Sunday School Union)이 설립, 이 연맹이 미국 전체의 주일학교를 관장했다.

1889년 런던에서 처음으로 제1차 세계주일학교대회가 개최됐고, 1907년 제5차 로마대회 때, 영국, 미국, 유럽대표들은 ‘세계주일학교협의회’를 발족했다.

한국의 주일학교는 1888년 1월 15일 스크랜턴 부인의 주도 하에 이화학당의 한 단칸방에서 어린이 12명, 부인 3명, 선교사 4명으로 시작됐다. 그리고 1905년 선교연합공의회 안에 주일학교위원회를 설치하면서 주일학교가 공식적으로 설립되는 계기를 맞는다.

1907년 로마에서 열린 제5차 세계주일학교대회의 보고에 의하면, 당시의 한국 주일학교 수는 전국에 613개였으며, 학생은 45,918, 1913년 제7차 대회에서는 한국 주일학교 수가 2,392개, 학생 수는 119,496명으로 보고됐다. 1913년 세계주일학교협의회 부회장인 하인즈가 내한했을때, 그를 환영하는 주일학교대회에는 14,000명이나 운집하기도 했다. 1921년 전국주일학교대회가 열렸는데, 2,0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남궁혁 박사가 초대 대회장으로 추대되었다.

우리나라의 주일학교는 1911년부터 미국의 통일공과를 번역하여 주일학교 교재로 채택하였으나, 1927년부터는 우리가 직접 계단공과를 만들어서 사용하였다. 1960년대 초반 미국 유학파들이 귀국하는 것을 계기로 각 신학교 별로 기독교교육학과가 신학과에서 분리되어 설립된다. 이들은 주로 루이스 쉐릴의 ‘만남의 기독교교육’에 영향을 받았는데, 이러한 영향은 우리에게 친숙했던 80년대의 <말씀과 삶> 시리즈나 2000년대부터 사용하고 있는 <하나님의 나라: 부르심과 응답> 시리즈에 배어있다.

현재 한국교회는 주일학교를 교회학교라고 부르고 있다. 이것은 1903년부터 1940년까지 주도적인 역할을 했던 종교적 진보학파(종교교육협회, R. E. A.)의 영향을 따른 것이다. 일반적인 공교육이 차츰 보편화되면서 이들과 구별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 종교적 진보학파는 단순히 요일을 가리키는 주일학교, 즉 Sunday School 보다, 이러한 교육을 제공하는 교육주체를 가리키는 교회가 포함된 교회학교라는 용어를 사용할 것을 주장하였고 이것이 받아들여졌다. 현재 한국교회에서도 초창기부터 줄곧 사용하던 주일학교라는 용어 대신에 대부분의 교단이 교회학교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로버트 레이크스와 학생. 삽화출처 라이프웨이리서치.
로버트 레이크스와 학생. 삽화출처 라이프웨이리서치.

교회학교를 살려야 할 시대적 사명

필자가 독일에서 유학하던 1990년대 후반에 독일 원로 신학자들에게 독일교회의 상황에 대해서 질문할 기회가 있었다.

“현재 독일교회에는 성도들이 없고 텅텅 비어있는데, 이렇게 된 원인이 무엇입니까?” 그들은 독일교회의 상황을 너무나도 안타까워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원래 독일교회에는 성도들이 넘쳐났었다. 특히 제1차, 제2차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거리마다 넘쳐나는 시체를 본 독일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교회로 몰려들었다. 교회마다 앉을 자리가 없을 정도로 사람들이 가득했다. 그런데 1970년대에 청바지, 통기타, 히피 등으로 상징되는 새로운 청년문화가 등장했다. 이때 교회에서 젊은 사람들이 대거 이탈했다는 것이다. 이들의 자녀도 함께 이탈하면서 교회학교가 대부분 문을 닫게 되었다고 한다.

이 문화가 처음 대두되었을 때는 워낙 불량스럽게 보여서 설마 이것이 교회를 위기에 처하게 하리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고 한다. 1970년대의 10여년에 불과한 짧은 기간 동안 두 세대가 한꺼번에 이탈하면서 교회는 결정적인 타격을 입었다. 지금은 이러한 이탈 세대의 부모 세대인 노인들만이 이미 텅비어버린 교회를 지키고 있다.

독일 교회의 원로들은 이것을 설명하면서, “만일 다시 그때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전 교회적으로 철저하게 대응했을 것”이라며 무척 아쉬워했다.

한국의 교회학교도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한때 한국교회 부흥의 견인 역할을 하였는데, 지금은 그 반대의 양상이 전개되고 있다. 소규모 교회의 경우 교회학교 부서가 아예 모이지 않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교회학교가 어려움을 겪게 된 원인으로는 저출산, 토요일 휴무, 놀이문화의 다양화 등 여러 가지가 지목되었다. 그런데 이러한 어려움을 미처 극복하기도 전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더 큰 위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코로나 19 사태는 그야말로 모든 것을 마비시킬 정도로 강력했다. 이 사태는 아직 종식되지도 않아서 그 영향이 어느 정도 될지 가늠하기도 힘들다. 코로나 19 사태는 한국교회는 물론 한국 사회 전체를 집어삼키고 말았다.

교회학교를 다시 살려야 하는 시대적 사명이 주어졌다. 이를 위해서 중요한 것은 주어진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신학자는 위기를 극복할 방안을 찾아내서 교회에 제시해야 한다. 연구에 연구를 거듭하여 반드시 방안을 찾아내야 한다. 목회자와 교회학교 교사들은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노력해야 한다.

하나님께 충성하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할 때 희망이 생겨날 수 있다. 암울했던 시기에 어린이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했던 로버트 레이크스, 그리고 빛도 없이 이름도 없이 충성을 다한 수많은 신앙의 선조들을 기억하자.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노력할 때, 주님께서 그러한 정성들을 모아 교회학교를 다시 살리실 것이다.

심우진 교수
연세대학교 신학과 학사 및 석사
장로회신학대학교 신대원
독일 하이델베르크대학교 신학박사
현 서울장신대학교 신학과 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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