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남은 ‘땅 끝’을 향해
마지막 남은 ‘땅 끝’을 향해
  • 최상현 기자
  • 승인 2021.06.04 12: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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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퍼우먼’이라 불린 여인 문용자 권사
눈물과 기도로 버틴 인고의 세월
북한을 향한 뜨거운 열정
(사)북아해사랑단 대표단장, (사)남북보건의료교육재단 이사장 문용자 권사.

문용자 권사는 인터뷰 도중 여러 번 눈물을 훔쳤다. 그녀의 긴 생애 속에는 눈물 없이 말할 수 없는 충만한 은혜가 흐르고 있었다.

문 권사는 소위 한국 사회의 엘리트층이다. 서울대학교 의학박사인 문 권사는 의사 가문에서 태어나 의사 남편을 만났고, 자녀들 또한 모두 일류대학을 졸업한 수재로 성장해 존경받는 의사, 변호사, 예술가, 목회자로 활동하고 있다.

문 권사는 곽선희 목사와 함께 소망교회를 개척했고, 많은 환자를 돌보며 미래 인재 양성을 위한 재단과 학교를 세우기도 했다. 그녀가 어떤 일을 했는지 일일이 나열할 수 없을 정도로 국가와 교회, 사회를 위해 수많은 사역을 감당했다.

“하나님은 상한 마음을 원하세요. 제가 아무리 많은 일을 해도, 하나님은 저의 상한 마음, 회개하는 마음을 원하십니다. 제게 이런 말씀을 하시는 것 같았어요. ‘내가 너에게 큰 물질을 원하더냐? 나는 너의 상한 마음을 원할 뿐이다’라고요.”

그녀는 하나님이 두려웠다. 혹여 자신의 교만이 하나님의 영광을 가릴까 늘 경계했다. 교회를 위해, 사회를 위해, 연약한 이들을 위해 선행을 베풀었던 것들이 ‘자신의 의’가 되지 않도록 틈만 나면 기도의 자리를 찾아가 무릎을 꿇었다.

주변에서 이제 그만 좀 해도 되지 않느냐고 말려도, 어떤 이들은 문 권사의 정신이 이상한 것 같다고 말해도, 그녀는 주님을 찾는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기도 없이는 언제든지 쓰러질 수밖에 없는 연약한 인간임을 그녀는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핍박 속에서 지켜낸 믿음

“교회 나가면 내 딸 아니다. 교회는 거지나 절뚝발이들이 다니는 곳이다!”

8살이었던 문용자는 아버지에게 꾸지람을 들으면서도 그저 교회가 좋았다. 부흥회가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꼭두 새벽부터 일어나 고무신을 신고 어머니를 따라나섰다. 옆집 아저씨가 운전하는 자전거를 타고 3시간을 달려 교회에 도착했다.

사람들은 작은 소녀가 예배당에 들어오자 “너 누구냐, 뭘 안다고 여길 왔느냐”며 “들어가면 안 되니 사찰방에 있으라”고 했다. 문용자는 사람들이 기도하고 있는 틈을 타 살금살금 강대상 위로 기어 올라갔다. 그리고 부흥사 이성봉 목사의 두루마기 밑에 숨었다.

기도가 끝나고 “아멘!”할 때 그녀도 덩달아 “아멘!”이라고 크게 외치자 그제서야 이성봉 목사는 작은 아이가 엎드려 있음을 발견했다. 깜짝 놀란 문용자는 “잘못했어요. 자리가 없어서 여기까지 왔어요”라며 눈물을 흘렸다. 그러자 이 목사는 “일어나라”고 말한 후 꾸중을 들을까봐 잔뜩 겁먹은 소녀의 머리에 손을 얹고 기도했다.

“하나님, 이 작은 아이가 멀리까지 찾아와 은혜 받고자 합니다. 이 아이를 축복해주옵소서.”

눈이 펄펄 날리는 추운 겨울날, 이성봉 목사의 기도는 평생 동안 가슴에 남을 뜨거운 기억으로 소녀 문용자의 가슴에 새겨졌다.

문 권사는 초등학생 나이에 마을 사람들에게 한글을 가르치는 영특함과, 어떤 일도 끝까지 해내고야 마는 뚝심이 있었다. 한국 전쟁 이후, 1960년대 우리 사회에서는 여성이 할 수 있는 일이 제한적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의대를 졸업한 후, 수많은 경쟁자를 물리치고 국립의료원에 들어갔다.

그곳에서 만난 남편 故신요철 박사는 유명한 제약회사의 장남이었고, 시댁에서는 문 권사가 교회에 다니는 것을 반대했다.

“네가 예수를 믿으면 새벽에 기도하러 가고, 평일에는 전도하고, 일요일에는 교회에 갈 것 아니냐? 그럼 애는 누가 키우고 남편은 누가 뒷바라지 할 것이냐? 이혼하든지, 예수님을 믿지 말거라.”

그렇게 갖은 핍박을 받으면서도 꿋꿋하게 신앙을 지킨 문 권사는 상가 2층에 공간을 얻어 곽선희 목사와 함께 소망교회를 개척했다. 그녀는 남편 신요철 박사를 하나님께 인도했고 이후 신 박사는 소망교회 장로로 섬기며 신실하게 교회에서 봉사했다.

포기하지 마라, 도전하고 또 도전하라!

문 권사는 청년들에게 “포기 하지 마라, 도전하라!”고 말해주고 싶다고 말했다. 인고의 세월을 거치면서 그녀는 어떤 상황에도 주저앉지 않았다. 불가능해 보이는 일들 앞에서 주눅 들기보다는 그 일을 해결하기 위해 밤낮없이 도전했다. ‘하나님의 자녀’라는 강력한 믿음과 확신 안에서 주님을 의지하며 모든 문제를 바라보았고, 불철주야 기도로 돌파구를 찾았다.

“상황이 어렵고 힘들지만 포기하면 안 됩니다. 세상에 불가능 한 일이란 건 없어요. 도전하고 또 도전해보세요.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나아가다보면 없던 길도 생깁니다. 미리 짐작하고 포기해버리는 걸 조심해야 합니다.”

실제로 그녀는 의대를 졸업 후 국립의료원 영어 면접을 앞두고 부족한 영어 실력을 단 기간에 끌어올리기 위해 당시 국회부의장이었던 황성수 박사를 찾아가 “영어 문제를 내달라”는 당돌한 부탁을 하기도 했다. 그 당당함에 감탄한 황 박사는 실제로 그녀의 영어 공부를 코칭해주었고 결국 문 권사는 치열한 경쟁률을 뚫고 채용될 수 있었다.

문 권사는 정계에도 몸을 담았다. 강남구 의사회 회장, 강남구의원, 서울시의원 등을 거쳤다. 처음에 정계 입문 제의를 받았을 때 그녀는 가장먼저 곽선희 목사에게 달려갔다. 그러자 곽 목사는 “할렐루야!”로 화답하며 지역을 위해 일해보라고 권했다.

지역 주민들은 병원 월세를 내기도 빠듯한 여의사가 가난한 사람들을 무료로 진료해주며 약을 지어준 지난 세월을 분명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문 권사는 시의원으로 활동하며 유명 인사들에게 좋은 제의를 받기도 했지만 거절했다. 정계에서 더 많은 힘과 권력을 누리는 것보다 주님이 맡기신 사역들을 감당하는 것이 더 중요했기 때문이었다.

“주님이 맡기신 사역을 감당하면서, 사실 저는 자신이 없었어요. 북한을 섬기고 싶은 마음은 강했지만 그 일을 할 수 있는 역량이 부족하다고 느꼈습니다. 여러 조건과 상황을 검토했지만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았어요. 하지만 기도 가운데 일을 시작하자 전국에서 돕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북한을 위한 재단과 학교를 설립하게 됐죠.”

북한 평양과기대에서 받은 감사패.

그녀에게도 시험과 유혹이 많았다. 중국 최고위 간부들과 함께하는 일정, 청와대의 초청을 받기도 했지만 선교나 교회 사역과 겹치면 그녀는 어김없이 하나님의 일을 택했다.

“저도 사람인데 그런 기회를 얼마나 잡고 싶겠습니까? 이런 시험을 이기는 방법은 ‘기도’밖에 없습니다. 정말 피눈물 나게 기도해야 해요. 주님을 보면 수천 명을 먹이신 후 바로 배를 타고 기도하러 가시잖아요. 틈만 나면 기도하셨지요. 우리 주님도 그러셨는데 하물며 우리는 얼마나 더 기도해야 하겠습니까? 몸과 마음, 뜻과 정성을 다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마지막 남은 ‘땅 끝’을 향해

사람들이 볼 때는 화려한 경력과 커리어, 능력을 가진 문용자 박사였으나 그녀는 남몰래 참 많은 눈물을 흘렸다고 회고했다.

“기도하며 눈물을 쏟고 있는데 하나님이 제게 그만 울라는 감동을 주셨습니다. ‘알았다, 그만하면 됐다. 네가 나를 경외하고 내 말을 지켰으니 네 자손에게 복을 내리겠다’고 하시며 위로해주셨죠.”

문 권사는 하나님의 은혜를 간증하며 여러번 눈시울을 붉혔다.

역경과 시련 속에서도 꿋꿋하게 말씀에 순종했던 그녀의 자녀와 손자들은 현재 법조, 의료, 예술, 재계, 목회지로 뻗어나가 왕성한 활동과 선교 사역을 펼치며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

“제 나이 85세, 성경에 보면 강건하면 우리 연수가 칠십이요 건강하면 팔십,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라고 했습니다. 돌아보면 참 많은 슬픔을 경험한 것 같아요. 가지고 있던 많은 것들을 내려놓아야 했던 순간들, 하지만 오늘 이 순간, 하루하루 일분일초가 새롭습니다. 사실 잠자고 밥 먹는 시간도 아까워요. 한 순간이라도 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싶습니다.”

문 권사는 아직 자신이 할 일이 남았다면 빨리 깨닫고 싶다고 말했다.

“혹시 제가 할 일이 남았는데 못하면 하나님께 꾸중을 듣지 않겠어요? 이제 남은 날이 많지 않으니 해야 할 일을 빨리 알게 해달라고 기도하곤 합니다.”

그녀는 평생을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기 위해 애써왔다. 의료 봉사, 각종 지원과 교육, 복지를 위해 지구 반대편을 오갔다. 그리고 오늘, 그녀는 새로운 땅 끝을 발견했다고 고백한다.

“세계의 오지를 다니며 주님의 사랑을 전했습니다. 그런데 최근 깨닫게 됐어요. 땅 끝은 바로 우리 곁에 있었습니다. 바로 ‘북한’입니다. 그곳이 저의 땅 끝입니다. 사도바울처럼 마지막 주님 앞에 가는 날까지 선교하다가 부름 받는 것이 제 마지막 소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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