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8호] 아름다운 봄과 슬픈 봄
[118호] 아름다운 봄과 슬픈 봄
  • 이창연 장로
  • 승인 2021.05.27 07: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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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천득의 ‘오월’이란 시를 읊는다. ‘나이를 세어 무엇하리. 나는 오월 속에 있다. 연한 녹색은 나날이 번져가고 있다. 어느덧 짙어지고 말 것이다. 머문 듯 가는 것이 세월인 것을 유월이 되면 원숙한 여인같이 녹음이 우거지리라. 그리고 태양은 정열을 퍼붓기 시작할 것이다. 밝고 맑고 순결한 오월은 지금가고 있다.’ 꽃이 피었다 진자리에 돋아난 연초록 나뭇잎은 꽃보다 아름답다. 이렇게 봄은 꽃이 피면 핀대로 지면 진대로 아름다운 시간의 향연이다. 자연과 인간이 동일한 시간의 레일위에 서 있지만 자연에게 봄의 시간은 소생으로, 인간에게는 사멸의 연속일 뿐이다. 내게 주어진 시간은 다시 소생될 수 없다는 운명, 그러므로 자연과 나는 함께 갈 수 없다는데서 봄이 되면 철저히 소외되고 쓸쓸하다. 봄은 사랑스런 계절이지만 봄이라고 세상에는 사랑스런 일만 일어나지 않는다. 오히려 봄이 되면 잔인하리만큼 사랑의 반대되는 사건이 더 많이 발생했다.

봄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한국의 봄은 처절할 만큼 잔인했다. 4월은 독재에 항거하며 학생들이 길거리에 피를 뿌리게 했고, 5월은 광주시민들이 신군부정권에 항거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 6월은 동족상잔의 피비린내 나는 전쟁으로 수백만이 목숨을 잃었고 국토는 폐허가 되었다. 그래서 봄은 우리에겐 슬픔이다. ‘님을 위한 행진곡’을 들을 때마다 눈물이 난다.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한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 동지는 간데없고 깃발만 나부껴, 새날이 올 때까지 흔들리지 말자. 세월은 흘러가도 산천은 안다. 깨어나서 외치는 뜨거운 함성, 앞서서 나가니 산자여 따르라. 앞서서 나가니 산자여 따르라. 세월은 흘러가도 산천은 안다. 깨어나서 외치는 뜨거운 함성, 앞서서 나가니 산자여 따르라. 앞서서 나가니 산자여 따르라.”

광주민주화운동이 터진 1980년 5월 18일은 공교롭게도 주일이었다. 광주계림교회의 당시 일지에는 ‘주일 오전 예배가 막 시작될 때 청년들이 교회 안으로 들어와 급박한 소식을 전했다’는 기록으로 봐 상황이 다급했음을 알 수 있다. 남광교회를 비롯한 광주 교회 다수가 시민과 학생을 숨겨주기 위해 문을 열어두고 은신처를 제공했다. 항쟁 기간에 교회는 폭력과 부정의 현장에서 침묵하거나 방관하지 않고 항쟁에 개입하는 등 자신의 역할을 묵묵히 수행하며 조용히 ‘우는 자’와 동행했다.

같은 해 ‘전원일기’는 1980년 10월 21일 ‘박수칠 때 떠나라’가 첫 회가 방영되었다. 2002년 12월 29일 ‘박수할 때 떠나려 해도’까지 무려 1088회 방송된 롱런(long-run)드라마다. ‘전원일기’가 내 이웃들의 이야기처럼 다정하게 다가와 마음 둘 곳 없던 광주 시민들이 상처를 치유하는데 조금이라도 위안을 받았다면 좋았겠다고 생각했다. ‘전원일기’를 보고 있노라면 시골 마을에서 벌어지는 보통사람들의 삶이 살갑게 다가온다. 이제는 흔치 않지만, 삼대가 한집에서 살면서 빚어내는 부모 자식 간 효도와 자애, 부부 간, 또 고부 간, 갈등과 애정, 이웃 간의 넉넉한 인심, 시골과 도시 아파트의 대조적인 삶, 늘 부족해도 그냥 만족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들. 사연들이 요즘 드라마와는 달리 대화가 질박하면서도 품위가 있다. 최불암, 김혜자, 김수미, 김용건, 고두심, 유인촌, 박은수, 이계인 등 일급 연기자들의 젊은 날 모습을 들여다보는 것도 쏠쏠한 재미다.

필자는 농촌 출신이기에 1960-70년대의 농촌 이야기가 가슴에 와 닿아 아련한 향수를 불러온다. 어쩌면 우리 사회가 너무 빨리 미래로 와버렸기에 느리게 돌아가던 그 시절을 반추해보는 데서 큰 의미를 찾고 있다. 지금은 꽃이 졌지만 개나리와 아카시아 만발한 응봉산과 서울 숲이 집 앞에 있으니 우리 집 정원 같다. 필자는 이 신록(新綠)의 시간을 제일 좋아한다. 새로운 생명들이 세상의 빛을 보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매년 이즈음 꽃들이 피고 지는 걸 보며 기쁨 속에서도 허망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고추, 가지, 호박을 조금씩이라도 기를 수 있는 텃밭이 있으면 좋겠다고 아내는 푸념이다. 텃밭이 있는 농촌으로 이사 가는 게 꿈이다. 몇 년 만 더 젊었으면 하는 아쉬움이다.

이 글을 쓰면서도 세상을 아름답게 창조하신 하나님의 위대하심은 말로써, 글로써 다 표현할 수 없으니 안타깝다. 하루빨리 코로나19가 사라져 정상적인 예배를 드릴 수 있었으면 좋겠다. 코로나 백신도 맞아야하는데 뉴스가 마음을 불안하게 만든다. 화이자와 아스트라제네카의 차이, 오! 하나님! 어찌 하오리까.

 

이창연 장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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