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칼럼] 낯섦 가운데 등장하시는 하나님
[전문가 칼럼] 낯섦 가운데 등장하시는 하나님
  • 박혁순 교수
  • 승인 2021.05.21 07: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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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오래간 의지해온
하나님은 미쁘고 익숙한 분이시지만,
동시에 낯선 분이시다."

주어진 생애를 걸으며 세계를 마주하여 시를 짓는 시인들은 빼어난 절경이나 매력적인 소재를 접한 후에 시를 쓰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시인들이 시를 쓰도록 만드는 동기는 시인 내면으로부터 나타난다. 이점에 대해서 일반인들 혹은 시작법(詩作法)을 익히는 지망생들이 쉽게 간과하곤 한다. 말하자면 우리들은 계절의 변화, 풋풋한 연정, 특별히 기쁘고 슬픈 일, 빼어난 절경, 비범한 사건 등이 우리로 하여금 용이하게 시를 쓰게 만든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사실인즉 그렇지 않다. 능숙한 시인 또는 참된 시심은 반복되는 일상, 평범한 소재, 소소한 사건에 대면하여 깊은 통찰과 혜안, 그리고 문학적 상상력과 표현으로 시를 창작해 내기 때문이다. 단적으로 말하자면 시는 우리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있다.

근대 문학이론 가운데 이른바 ‘낯설게 하기’(defamiliarization)의 개념이 있다. 20세기초 러시아 형식주의자들이 문학의 본질로서 지목한 것이며 언어가 예술성을 획득하게 되는 근본적인 기법이기도 한데, 형식적으로 일상적 언어를 ‘낯설게’ 함으로서 심미적 요소나 문학적 장치를 구축하는 방법이라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시 문학은 평범한 언어로부터 벗어나 리듬, 비유, 상징, 반어, 역설 등을 구사하고, 소설 문학은 순차적 사건을 토막 내어 순서를 뒤섞는 플롯을 구성한다. 바로 이러한 방식들로 낯설지만 흥미롭고 매력적인 문예를 이루어내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낯설게 하기’는 비단 언어형식이나 문학의 구조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다.

보다 중요한 것은 평범한 일들과 흔한 사물에 대해 ‘낯섦’을 느끼는 우리의 마음이다. 무엇인가에 대해 ‘낯섦’을 느낄 때에야 예술이 시작된다. 아니, 더 나아가 낯섦을 느낌으로써 신앙의 각성, 종교적 통찰, 영성의 성장이 이루어진다. 뇌과학에 의하면, 인간의 의식은 반복되는 것을 점차 ‘없는 것’으로 가정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동에서 해가 뜨고 서로 해가 지는 것, 저녁을 차리는 엄마의 분주함, 틀에 박힌 출퇴근길이나 통학길, 남편의 코 고는 소리 등등. 이 모든 것들이 시나브로 있어도 없는 것으로 간주된다. 역설적이게도 이것들이 갑자기 중지되거나 사라질 때에서야 그 존재성을 뼈저리게 느끼게 된다.

시의 위대함, 소설의 위대함, 문학의 위대함, 아니 예술 전반의 위대함은 바로 반복되고 흔한 일들에 깃들인 존재성과 고유성에 심각한 경외감을 일으키는 데에 있다. 비단 이것은 창작자에만 국한될 일이 아니다. 시를 쓸 줄 몰라도, 우선 일상적인 것에 ‘낯섦’을 느끼는 것 자체가 예술과 영성의 초입에 들어갔다는 신호가 된다. 분주하게 저녁밥을 차리는 어머니의 뒷모습에문득 세월의 무상함을 느낀다면, 등교하는 아들의 어깨가 오늘따라 든든하게 느껴진다면, 시내버스 운전기사가 건낸 인사가 반갑게 느껴진다면, 보도블럭 사이에 얼굴을 내민 민들레가 가상하다고 느낀다면 이미 당신은 불현듯 시인의 마음, 영성가의 마음을 갖기 시작한 것이다.

우리의 신앙의 질과 수준도 마찬가지이다. 하나님의 기적사건이나 급작스러운 기도응답에 직면하여서야 하나님의 존재와 능력을 느끼는 것은 유아적이고 위험스럽기까지 한 일이다. 무엇보다 이에 관해 예수님이 경고하셨다.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한다”고(마 12:39), 반면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다”고(요 20:29). 그러니까 참된 믿음 혹은 하나님을 발견하는 일은 외적 사물의 기이함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 내면의 신실과 긍정에서 오는 것이다. 말하자면 매일 바라보는 하늘과 산하가 창조주의 걸작이고, 내가 숨 쉬고 사는 일상 자체가 성령의 역사이고, 당신과 내가 마주하는 이 세상이 기적임을 깨달아야 할 일이다. 

우리가 오래간 의지해온 하나님은 미쁘고 익숙한 분이시지만, 동시에 낯선 분이시다. 그리고 하나님이 펼쳐 놓으신 이 창조세계도 평범해 보이지만 매우 신비로운 공간이다. 이 사실에 관해 물론 문학이 밝히고 있지만, 또 우주물리학 역시 증언하고 있다. 정작 판에 박힌 일상성에 매몰된 대중들만 모르거나 외면하고 살고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마지막으로 우리에게 허락된 일상 가운데, 혹은 흐릿해진 옛 기억 가운데 ‘낯섦’을 느껴 아름다운 작품들을 남긴 기형도 님의 시 한 편 읽는 것으로 마치겠다. 

엄마 걱정

기형도(1960~1989)

열무 삼십 단을 이고
시장에 간 우리 엄마
안 오시네, 해는 시든 지 오래
나는 찬밥처럼 방에 담겨
아무리 천천히 숙제를 해도
엄마 안 오시네, 배추잎 같은 발소리 타박타박
안 들리네, 어둡고 무서워
금 간 창틈으로 고요히 빗소리
빈방에 혼자 엎드려 훌쩍거리던

아주 먼 옛날
지금도 내 눈시울을 뜨겁게 하는
그 시절, 내 유년의 윗목

 

박혁순 목사

(창신교회 담임, 조직신학자, 한일장신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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